오지 않은 내일, 지워낸 오늘.

가능성 중독 (미완의 상태로 사는 법)

by 유영
우리는 가끔,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준비하다가 오늘을 놓친다.




가능성이라는 말을 내뱉는 순간, 눈앞에는 무한한 미래가 열린다. 그 대부분은 영광의 빛으로만 가득하지만.

믿음과 중독은 한 끗 차이다. 때문에 단어 안에 갇힌 삶은 언제나 '될지도 모른다'는 상상에 머물며, 실제로 '살아가는 일'은 미루게 만든다.

그리고 우리는 결국 아직 시작되지 않은 상태인, 흔히 가능성의 상태에 놓인 것을 꿈이라 부른다.


언젠가, 언젠가는 꼭.

그러한 유예의 시간 속에 희미해져 간 건, 꿈이 아니라 나였다.


원래 다정하고 부드러운 말 안에는 확신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을 소모하고, 내일을 믿는 방식으로 현재를 살아가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느 날 주어진 모든 내일이 사라지고 더는 남은 게 없다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는 것만큼, 숨 막히게 잔인한 일이 또 있을까.


특히 완벽주의 성향을 가진 사람일수록, 그 가능성에 더 오래 머문다.

작가가 되겠다고 말하지만, 글은 쓰지 않는 사람.

결국 실행되지 않을 수십 개의 사업 계획서만 반복하여 쓰는 사람.

사랑을 원하면서도,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말로 관계를 미루는 사람.

그들 대부분이 아직은, 언젠가, 때가 되면 할 거라는 말로 오늘을 놓치고, 계속해서 내일로 미루어가지만 그 심리 안에는 공통적으로 불안과 두려움이 깔려 있다.

완벽하지 않아서 실패할까 봐, 그래서 상처받을까 봐.

그리하여 모든 상황이 완벽히 자리 잡고 완성되어야만, 시작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모든 생명의 시작은 늘 불완전함에 있다.

그래서 두렵지만, 우리는 사실 그 불완전함을 더 사랑할지도 모른다. 살면서 쉴 새 없이 쉼표는 찍어가면서도, 마침표는 잘 찍지 못하는 것처럼.

끝이 두려운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내가 끝을 맺지 않아도, 언젠가는 누군가 그것을 대신 정리해 준다.

때로는 내가 남의 인생에 마침표를 찍어주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그 아무도 내 삶의 마침표를 찍어주지 못할지도 모른다.

우리 삶은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클라이맥스 없이 끝나기도 하고, 이야기는 나 없이 결말을 맺을 수도 있다.

그래서 삶은 애초에 미완의 상태로 살아갈 용기가 필요하다.









이 사회는 가능성에 중독된 사람들을 양성한다.

광고는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 새로운 가능성을 팔고, 성공팔이는 오직 미래를 위한 인재만을 요구한다.

꿈꾸는 법은 알려줘도, 그 누구도 먼저 꿈을 꾸지 않고 그냥 살아가는 법은 알려주지 않는다.

사실 꿈은 눈에 보이지 않는 허상이지만, 그걸 진짜 미래처럼 여기게 만든다. 그래서 당장 현실에 발붙이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늘 가능성이라는 단어에 속아 넘어간다.

그래서 대부분은 어렵게 꿈을 꿔도 결국 다시 접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꿈은 현실이 아니라 가능성이기에, 그래서 책임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책임지지 않는 사회는 사람들을 나태하게 만든다. 그중, 가능성은 나태의 이유로 가장 좋은 핑곗거리다. 아직 시작하지 않은 사람에게, 책임질 필요가 없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묻지 않으니, 그 자체로 무죄를 선고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특별한 존재입니다."

그러니 이런 거짓된 말을 숭고하게 내뱉어도 무책임하다 느낄 새도 없다.

난 특별한 사람이니까, 난 뭐든 될 수 있어. 내가 안 해서 그렇지, 막상 하면 잘해.

아니. 우린 전혀 특별할 것 없다. 무엇이든 쉽게 될 수 없다.

특별하다는 그 말 하나가, 너는 남들과 다르다는 그 말 하나가 사람을 계속 제자리에 묶어 놓는다.

실패를 피하기 위해 애초에 도전조차 하지 않게 만든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면서, 실패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그러나 삶은 역설적이다. 도전하지 않으면 실패하지 않지만, 실패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실패는 우리 삶의 일부이며, 가능성은 실패 이후의 문을 여는 단서다.

가능성을 먼저 꿈꾼 다음, 실패를 따지는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지는 시작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모든 용기는 내가 특별하지 않음을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생긴다.

원하는 미래는 미루기만 하면 영원히 찾아오지 않고, 그러다 더 이상 가능성조차 찾을 수 없는 시기는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럼 이제 나는 그대로인데 세상만 변했다고 느끼면서 좌절감에 빠지게 된다.

계속 기다리기만 하면, 결국 지나온 시간 어디에서도 자신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 채 과거에 남겨지고 만다.

왜냐면, 내가 그랬으니까.









그래서 꿈을 이룬다는 건, 결국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의 작은 일부터 찾아내는 것이다.

현실의 벽은 생각보다 높고, 발판 하나 제대로 놓여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계단은커녕, 그 밑에 깔 볏짚 한 줌조차 없는 상태에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럴 땐, 꿈이 아니라 지금의 발바닥부터 들여다봐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개 젊음이란 건, 그런 발바닥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 젊음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바로 '오늘' 안에 있다. 그러니 당신에게 오늘이 아직 남아 있다면, 준비되지 않아도 괜찮다. 시작할 수 있다.


변화는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온다.

몇 년을 맴돌던 생각이 어느 날 문득 행동으로 바뀌는 것처럼.

원래 계산이 늘어나면 생각만 많아지고 잡음이 생기는 법이다. 시작은 결국 몰라서 가능한 일이고, 그래서 무지의 상태가 가장 용감한 것이다. 그러니까 진짜 변화가 필요한 일이라면, 일단 움직이고 생각은 그다음에 하는 것이다. 어차피 완벽한 계획, 완벽한 타이밍이란 건 없으니까 말이다.


불안과 망설임은 현실처럼 보이지만, 결국 그것도 또 다른 허상이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이유는 없다. 그렇다고 지금이 아닌 이유도 사실 없다.

우리는 뭔가 되기 위해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가운데 무언가가 되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삶은 선택이고, 선택은 책임이며, 책임은 지금을 살아내는 일이다.

책임은 무겁지만, 동시에 단순하다. 살아내기만 하면 된다.

씨앗을 심었다면 물을 주고 햇빛을 쬐게 하고, 그냥 버티면 된다. 자랄지 말지는 나중 문제다.

일단 뭐든 살아내야 결과가 나온다.


그래서 가능성이란 것도 결국, 살아내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다.

한 줄도 끝내지 못한 문장을 붙들고 고쳐 나가는 일.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용기.

그리고 그러한 미완의 상태를 견디는 끈기.

그 안에 분명 가능성과 꿈도 존재하지만, 사실 그보다 먼저 이 모든 건 그냥 단순히 살아내는 일에 가깝다.


꿈은 결말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결말 이후의 삶도 살아가야 한다. 그 결말이 오든, 오지 않든.

그러니 미완의 상태로 살아갈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은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될 수 있다.

우리는 계속해서 살아내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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