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또한 지나가리라.
쌓인 발자국들은 결국 가장 단단한 길을 만든다.
삶은 단 한 번도 완성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 적이 없다. 늘 어딘가 불완전하고, 어딘가 비어 있는 듯한 느낌이 자주 든다.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무언가를 시작하고, 점점 쌓아 올려가거나 때로는 사람을 붙잡기도 한다.
그렇게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간다고 느끼지만, 우리 삶은 100m 달리기가 아니기 때문에 가다가 멈추고 무너지는 순간도 분명 찾아온다.
그리고 그 순간을 실패라 부른다.
완벽한 삶을 가진 사람은 없다. 완벽해 보이는 삶만 있을 뿐. 시작부터 불완전했기에 꿈꾸는 완벽한 삶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도전한다.
실패는 그렇게 무언가를 해보려 한 사람에게만 찾아온다. 넘어지는 것도 단 한 번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려 한 사람에게만 허락된다. 그래서 실패는 남이 함부로 정의 내릴 수 없다. 무엇으로 받아들이느냐는 오직 자신의 몫이다.
도전은 대개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사람과 돈을 목표로 삼고, 잘 나가는 저 사람처럼 살기 위해 시작되는 도전.
그리고 누구도 대신해 주지 못하는, 먼저 걸어본 사람조차 없는 외로운 길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하는 도전.
전자는 스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조차 잃어버린 채 따라가는 경우가 많고, 후자는 스스로의 길을 더 선명히 만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타인을 향한 열등감으로 시작한 도전은 자주 내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의미 없는 실패의 반복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실패는 더 깊은 고통과 더 큰 공허만을 남긴다.
닦여진 길이 없는 도전은 시작부터 너무 외롭다. 애초에 길이 없으니 성공보다는 실패가 더 가까이 보이는 것 같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그냥 걸어간다. 왜냐하면 그러한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자신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끝이 보이지 않아도, 가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본능 같은 확신에 인생을 거는 것이다.
이것이 타인의 길을 따라가는 삶과 스스로 길을 만들어가는 삶의 차이다.
성공을 꿈꾸는 사람치고 한 번도 실패를 겪지 않은 사람은 없다. 각자 받아들이는 의미가 다를 뿐, 누구나 한 번쯤 실패를 겪는다. 다만, 그 실패 앞에서 자신을 어떻게 다루었는가. 그것이 삶이 깊이를 결정짓는다.
나의 일부로 받아들여 계속해서 나를 완성해 갈지, 아니면 끝까지 외면하고, 밀어내어 같은 기억을 되풀이할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려있다.
사람은 고통을 피하고 싶어 하면서도, 그 고통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사람이 가장 많이 바뀌는 순간은, 자기 자신이 너무 아플 때다.
넘어지지 않았다면 다시 일어설 이유도 없듯이, 성장을 위한 전제 조건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 성장은 단지 더 나은 결과를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결과만을 좇은 성장은 또 다른 실패 앞에서 다시 무너질 때, 지난 실패의 기억까지 되짚어와 그 무게를 더 무겁게 만든다.
그래서 성장은 다시 흔들려도 스스로를 일으킬 수 있는 힘을 기르는 데 있어야 한다.
알면서도 또다시 넘어지지 않기 위해 우리는 늘 실패를 설명하고, 분석하려 하지만 인생의 모든 실패에는 설명되지 않는 여백이 있다.
최선을 다했음에도 허무하게 끝나버린 일들. 의도하지 않았지만 결과가 되어버린 것들.
그리고 운이라 부를 수밖에 없는 모든 변수들.
그 어떤 결과도 예고하지 않고, 아무 의미도 설명해주지 않은 채, 그저 삶의 한 장면처럼 당연하게.
전부 예측할 수 없고, 무엇보다 피할 수 없다.
그것이 실패가 가진 가장 잔인한 면모이자, 동시에 가장 인간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사실 실패가 두려운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누구에게나 같은 모습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각자가 느끼는 실패의 무게는 다르고, 그 무게를 짊어진 방식 또한 다르다.
많이 가진 이의 실패는 잃어버린 것의 크기만큼만 무겁지만, 가진 것 없이 시작한 이에게 실패는, 바람 부는 절벽 위에서 그 밑을 내려다보는 것과 같다.
다시 시작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닌, 이대로 절벽 밑으로 떨어지느냐, 마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떨어지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그 자리에서 뒤돌아 다시 길을 걸어갈 용기다.
그 자리로부터 물러서는 그 결심에는 상당히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무너진 삶을 다시 붙잡기 위한 마음을 먹었다면, 당장 눈앞에 닥친 하루부터 살아내는 것이다.
하루를 견디는 연습이 필요하다. 숨을 쉬고, 밥을 먹고, 몸을 일으켜 그저 하루를 무탈히 건너는 것.
그 단순한 하루가 다시 삶을 이어가는 첫 장이 된다.
성공은 사람을 설득하려 하지만, 실패는 사람에게 묻는다.
삶이 하나의 여정이라면, 그 여정에서 실패는 마치 지도와도 같다.
단순히 방향을 바꾸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묻게 만든다.
때로는 길을 잃어야만 내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제대로 알게 되는 순간이 있는 것처럼.
이래도 계속 걸어갈 수 있는지, 이다음엔 어디로 갈 것인지, 그래서 결국 무엇으로 남을 것인지를 물어온다.
그렇게 길 위에서 방황하다 보면 지난 실패가 내게 무엇을 주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타인을 향한 시선을 부드럽게 만들고, 세상을 향한 판단을 멈추게 하며, 그로 인해 자신을 향한 연민을 가르쳐준다. 말로 가르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삶은 실패를 통해 가르쳐준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한때는 그 말이 너무나도 가벼워 보였다.
모든 고통을 대충 덮어두는 말 같았다. 누군가가 진심으로 무너지는 순간, 그저 '지나갈 거야'라고 말하는 것은 고통을 외면한 사람의 언어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안다. 그 말은 고통을 부정하는 말이 아니라, 고통조차 시간 속에서 움직인다는 가장 냉정한 사실이라는 것을. 고통이 지나간다는 말은 지금 이 순간의 아픔이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다.
그저, 그 아픔이 나를 영원히 정의하진 않는다는 뜻이다.
지금의 나도, 이전의 나도, 모두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 시간들이, 언젠가 나의 일부가 되어 조금은 더 단단한 얼굴로 나를 남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은 절망의 끝에서 쓰는 희망이 아니다. 그건 오히려 삶이 흘러가는 방식에 대한 깊은 깨달음이다. 시간은 모든 것을 덮진 않지만, 모든 것을 흐르게는 만든다. 그리고 그 흐름은, 멈춰 있는 고통에 미세한 생명을 불어넣는다. 그러니 그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다. 그건 오히려, 삶이 고통 속에서도 계속 움직이고 있다는, 지독할 정도로 현실적인 고백이다.
실패는 끝이 아닌 가능성을 넓혀가는 과정이다.
그렇게 쌓인 발자국들은 결국 가장 단단한 길을 만든다.
그리고 그 길은, 또 다른 누군가의 희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