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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진 Sep 24. 2016

내 사랑 따파쓰, 세비야

  스페인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는 음식이다. 스페인에서 먹은 모든 음식들이 맛있다 못해 사랑스러웠다. 스페인 중에서도 안달루시아 지방, 그중에서도 세비야는 스페인 음식을 맛보기에 아주 적절한 도시다. 800여 년의 오랜 이슬람 지배로 고수, 샤프란 같은 다양한 향신료가 일찌감치 식탁에 올랐고 이슬람 세력이 물러간 이후에는 신대륙과의 교역을 독점했던 곳답게 토마토, 피망, 옥수수, 감자 같은 풍부한 식재료가 전해졌기 때문이다. 물가도 저렴해서 바르셀로나보다 훨씬 싼 가격에 맛있는 스페인 음식을 즐길 수 있다.

칼라마리가 들어간 보카디요

  스페인의 식문화에는 몇 가지 독특한 점이 있는데 먼저 식사시간이다. 우리처럼 세 끼가 아니라 다섯 끼로 나누어 음식을 먹는다. 데사유노라고 불리는 아침은 간단하다. 우유를 탄 커피인 카페 콘 레체와 기름에 튀긴 밀가루 반죽인 추로스를 함께 먹는다. 우리가 롯데월드에서나 보던 츄로가 바로 스페인 음식인데 막 튀겨낸 추로스에 초콜릿을 곁들여 파는 모습을 거리 어딜 가나 볼 수 있다. 오전 11시쯤이 되면 간식을 먹는다. 알무에르소라고 하는데, 바게트 안에 하몬, 햄, 치즈 등의 재료를 넣어먹는 스페인식 샌드위치 보카디요가 대표적이다. 호기심에 바삭바삭하게 튀겨진 칼라마리가 들어간 보카디요를 시켜봤다. 우리나라처럼 여러 소스가 들어가지 않고 빵과 칼라마리뿐이었다. 뭔가 심심한 듯했지만 덕분에 재료 고유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스페인 사람들은 신선한 재료의 맛을 그대로 살린 요리를 좋아한다고 한다. 점심은 코미다라고 불리는데 스페인 사람들이 가장 중시하는 식사다. 보통 2시부터 시작해 애피타이저와 메인, 디저트 순의 코스요리를 먹는다. 우리가 저녁식사를 할 즈음인 6-7시 즘에는 간단한 음료와 타파스를 즐기는 데 이를 메리엔다라고 한다. 그렇다면 저녁은?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스페인 사람들은 늦은 9시, 10시가 되어서야 저녁을 먹기 시작한다고 한다. 늦게 먹고 자면 속이 더부룩하진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온 가족이 밖에서 충분한 개인생활을 하고도 다 함께 모여서 저녁을 먹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늦은 저녁을 먹는다고 한다.

    또 한 가지 특이한 문화는 타파스다. 타파스는 손바닥 만한 작은 접시에 한입, 두입 맛볼 수 있을 만큼의 적은 양으로 다양한 음식을 파는 것이다. 작은 빵에 해산물이나 하몽을 올린 한입 요리뿐 아니라 파스타나 스테이크, 리소토 같은 요리도 덜어서 판다. 타파스의 상대적 개념으로는 큰 접시인 라시온이 있다. 라시온의 반만 주는 1/2라시온도 있다. 입이 짧은 사람이나 다양한 음식을 맛보기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최적이다.

  

다양한 타파스들

  식문화뿐 아니라 스페인을 대표하는 고유의 음식 역시 매력적이다. 파에야는 한국 사람들의 입맛에도 잘 맞는다. 채소와 고기 또는 해산물을 쌀과 함께 볶아 낸 스페인식 볶음밥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의 주식인 쌀이 들어가서 그런지 친숙한 맛이다. 검은색의 먹물로 맛을 낸 먹물 빠에야도 별미고 고기와 해산물이 함께 들어간 빠에야 믹스타도 맛있다. 우리처럼 이미 지은 밥으로 요리하는 것이 아니라 생쌀과 다른 재료를 동시에 요리하기 때문에 주문을 한 뒤 3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빨리빨리를 생활화한 한국인으로서 처음엔 30분이라는 시간 안내에 당황했지만 나중에 빠에야 요리법을 알게 되고 난 뒤에는 느긋하게 기다릴 수 있었다.

빠에야

   돼지의 다리를 소금에 절여서 만든 햄이라고 볼 수 있는 하몽 역시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스페인의 대표음식이다. 쫄깃쫄깃하면서도 짭조름한 하몽이 처음에는 낯설어도 상큼한 멜론 한 조각과 함께라면 무더운 여름 여독을 풀어주는 최고의 맥주 안주다. 마트 어디에서나 먹기 쉽게 포장된 하몽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하몽에 맥주 한 잔?

 

    음식과 곁들일 수 있는 음료도 종류가 다양하다. 맥주와 와인 모두 유명할 뿐 아니라 이 둘을 응용한 음료도 발달해 있다. 와인에 각종 과일과 오렌지 주스, 탄산음료 등을 넣고 발효시킨 상그리아는 달콤하면서도 와인의 풍미가 느껴져서 입맛을 돋운다. 맥주에 환타를 섞어 파는 클라라는 이름만큼 상큼한 맛이다. 술을 마시기는 부담스럽고, 음료수를 마시기에는 아쉬운 마음을 100% 채워주는 사랑스러운 음료들은 한여름 스페인 더위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주기 충분했다.

낮맥이 일상인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역의 인심은 얼마나 후한지 음료를 시키면 꼭 타파스를 함께 준다. 스페인에서 먹는 한 끼, 한 끼가 모두 기대되고 즐거운 식사였다. 맥주와 와인을 이용한 사랑스러운 음료들과 언제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타파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는 스페인 사람들. 맛있는 음식을 풍족하게 즐기기에 스페인보다 적절한 나라가 있을까? 무언가를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베어 나오는 음식문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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