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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언 Nov 27. 2022

지나면 알게 돼

11/17 명상 일기

내 인생의 장면들이 지나갔다. 햇빛 아래 맨발로 따뜻함과 포근함을 느끼는 장면, 내가 좋아하는 카페에서 가장 밝은 자리에 앉아있는 장면, 거기서 첫째와 이야기하는 정면, 자는 둘째 아이를 안고 뽀뽀하는 장면, 남편의 얼굴, 우리 강아지 깨비가 나를 쳐다보는 모습, 집에만 들어가 있는 삐삐, 내 인생에 행복한 순간이 많구나… 느끼며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 생각했다. 나는 참 투자일을 오래 했는데 돈에 관한 건 하나도 나오지 않는구나 자각도 있었다.


푸른 옷을 입은 마법사가 내 손을 잡고 뛰었다. 나는 중세시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에메랄드빛 짙은 청록의 숲을 마구 달렸다. 앞에 높디높은 성이 있었다. 그 성에 들어갔다. 순간 사방의 문이 철컹철컹 모두 닫혔다. 놀라 보니 마법사는 사라졌다. 그 닫힌 공간이 지하 속으로 쭉 떨어지기 시작했다. 깊고 깊은 속으로 떨어졌다.


문이 열려 앞으로 걸어 나갔다. 허공이었다. 하늘 위 같기도 했다. 나는 다리 위에 서 있었다. 걷다가 꿀렁이는 느낌이어서 보니 다리가 아니라 지네였다. 지네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떨어질까 봐 지네를 붙잡았다. 지네가 세차게 흔들어 결국 나는 퉁겨져 나갔다. 날아가다 뭔가에 부딪혀 다시 튀어올랐는데 나는 새가 되었다. 빛이 찬란하고 반짝이는 아름다운 새였다. 나는 훌쩍 날아 큰 세상을 터치했다. 빛과 어둠의 경계에 반짝임을 흩뿌리며 날았다. 물 위를 날며 찰방거리고 살짝 담갔다 나왔다 반복하기도 했다.


마스터님과 손을 맞잡고 서 있었다. 함께 아래를 쾅하고 내리찍었다. 공간에 온통 금이 가 쩌적 갈라졌다. 그 안에서 지구만큼 큰 푸른 용이 나왔다. 용이 나에게 무얼 원하냐고 물었다. 나는 “성장”이라 답했다. 뭔가 내가 완성되고 깨달음에 도달했는데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또 다른 시작이라 느꼈고 답을 얻고 싶었다. 내 대답을 들은 용은 나보고 타라 몸짓했다. 용을 타니 날아가기 시작했고 가다가 속도가 쏜살같이 빨라지며 새로 변했다.


새로 변한 용은 를 아이에게 데려다주었다. 어린 나였다. 나에게 뭐라 뭐라 얘기하는데 어린 나는 잘 듣지 못했다. 약간 느낄 뿐이었다. 내 성장과정의 장면 장면들이 보였다.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겪는 일들은 필연적인 과정이야. 지나면 알게 돼. 부디 잘 버티고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


미래의 나와도 접속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래의 나는 내가 최고의 자리에 올라간 것을 보여주었다. 마스터님과 함께 세계 최고의 의식 지도자들과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다.



토마토가 있었다. 탐스럽고 단단하며 빨갛게 잘 익은 토마토였다. 토마토 열매 위에 꼭지가 달렸는데 거기에 풀이 무성했다. 그 풀에 작은 애벌레가 있었다. 귀여워서 손에 올려 바라보았다. 통에 넣어 관찰했다. 애벌레는 번데기가 되었고 이윽고 무당벌레가 나왔다. 그런데 꽁지에 빛이 있었다. 반딧불이인지 무당벌레인지 헷갈렸다. 자세히 다시 봐도 무당벌레였다. 빨간 날개에 검은 얼룩이 귀여웠다. 무당벌레가 나에게 빛을 선물해 주었다. 작고 귀여운 빛덩어리였는데 순간 그게 토끼로 변했다. 잠시 후에는 으로 변했다. 그 빛은 내가 원하는 대로 형태를 바꾸는 마법의 선물이었다. 무당벌레에게 고마웠다.



욕조에 앉아있는 내가 보였다. 또한 나는 책을 읽고 있었다. 그리고 글을 썼다. 그리고 그 글을 사람들에게 나누었다. 이 모습을 보며 나의 가장 이상적인 하루구나 생각이 들었다. 나는 평소 새벽에 일어나 욕조에서 반신욕 하며 잠을 깬다. 새벽 명상 전 책을 읽고 글을 쓰곤 한다. 이 루틴을 갈고닦아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어린 내가 이루지 못했던 꿈이 떠올랐다. 나는 어릴 때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 그림 그리고 꾸미는 걸 좋아했다. 글 쓰고 모임 이끌고 가르치고 사실 못하는 게 거의 없는데, 요거 하나 채워보아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영상 제작에 신경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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