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한평 베란다에 희망이 싹튼다
봄맞이 새 식구가 들어왔다
몇 년 동안 제대로 정리하지 않아 이것저것 쌓여있던 베란다를 청소했다. 뭔가 속이 후련하다. 나는 이 공간을 너무 방치해왔구나. 마치 나 자신 같다. 쓸고 닦은 것만으로 나에게 뭔가 좋은 일을 한 것 같아 뿌듯하다. 작은 공간이지만 나에겐 충분하다. 나름 새 아이디어로 공간을 활용해보고 싶다. 이제 간단한 준비는 끝났고 새 식구를 들일 때다. 꽃시장에 가고 싶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자제하였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씨앗들이 도착했다.
둘째 아이를 재우고 첫째 아이와 밤에 채소 씨앗을 심었다. 씨앗을 심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일부러 둘째를 먼저 재우고 종종 이런 시간을 갖는다. 너무 피곤해 둘 다 빨리 재워 쉬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동생 생겨 힘들어하던 우리 첫째의 정서를 지켜주고 엄마와의 관계를 유지해준 중요한 시간이다. 나이 들어서도 이런 시간을 자주 갖자고 혼자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내 마음을 읽은 건지 딸아이가 갑자기 나를 보며 씩 웃는다. 엄마가 너무 즐거워하니 신기해하는 것 같기도 하다. 앞으로 힘들고 지친 모습 말고, 이런 모습 자주 보여줄게.
둘째 일어나서는 구근들을 심었다. 둘째는 동그란 모든 것을 '공'이라 부르며 좋아한다. 둘째는 우리가 공을 흙에 넣어 덮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자기도 삽으로 흙을 퍼서 여기저기 담는다. 모든 베란다 자연놀이가 22개월 둘째와 함께하면 흙놀이로 끝난다.
파종 며칠 만에 채소들 싹이 올라왔다. 생명력에 감동해 내 심장이 두근두근. 가만 바라보니 떡잎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 어떤 힘으로 흙을 밀어내고 올라왔을까. 나도 그 생명력을 닮고 싶다. 새싹은 항상 옳다. 다음 주에는 먹지 않는 관상용 식물들을 들일 계획이다. 사다리 선반 작은 것을 하나 더 사다 붙여야겠다. 나는 분명 세로토닌 극민감 유전자일 거야. 햇빛을 받고 흙냄새를 맡으면 기분의 질이 너무너무 올라가는 걸 보니 말이야. 너무 즐겁다, 베란다 자연놀이 :)
튤립 구근이 정말 실하다튤립은 작년에 심었었는데 실패했었다. 너무 일찍 추운데 심어서인지 따뜻한 봄이 되어도 싹이 올라오지 않았다. 올해는 잘 자라야할 텐데. 성공 경험이 없어 확신이 없는 상태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 건지 아주 실한 구근들이 도착했다. 녹색 싹이 쏘옥 나와있는 것이, 알도 통통 아주 실해 보인다. 흙 위에 뾰족 싹이 나오도록 아이들과 함께 심었다. 이 구근같이 탐스러운 튤립 꽃이 올라왔으면 좋겠다.
아이들에게 최고 인기, 큰 싹의 히야신스히야신스는 처음이다. 이 유명한 히야신스를 처음 심어보다니. 사진들 보면 동그란 구근이 살짝 보이게 심던데 나는 아이랑 하다 보니 흙에 파묻혀버렸다. 아이가 너무너무 좋아한다. 일단 싹이 금방 올라온다. 자라는 모습 관찰이 쉽다. 싹이 크고 탐스러워 보는 즐거움이 있다. 꽃도 엄청 탐스럽고 실할 것이다. 내가 주문한 히야신스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보라색 꽃을 피울테다. 아이가 좋아하는 분홍색, 남편의 빨간색, 고민하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보라색을 골랐다. 엄마도 앞으로 엄마 좋아하는 것 좀 할게.
야밤 파종놀이로 첫째아이와의 관계를 돈독히하다채소 씨앗 파종. 봉투 화분을 주문했다. 자리를 많이 차지하지 않는 데다 깊어 작은 베란다에 좋다. 송곳으로 뒷부분을 뚫어 물구멍을 낸다. 물을 주어 흙을 가라앉힌다. 숟가락으로 콕콕, 씨앗을 심었다. 먼저 루꼴라, 청상추, 꽃상추, 깻잎이다. 루꼴라로 샐러드를 만들어 먹으면 얼마나 근사할까? 피자에 올리기만 해도 이태리 식당에 온 기분일 듯하다. 청상추와 꽃상추는 사실 슈퍼에 가면 한 봉다리 1000원에 잔뜩 살 수 있다. 하지만 내가 키운 상추는 남다른 맛과 영양일 테다. 깻잎은 사 오면 항상 한두 장만 쓰고 남아 버릴 때가 많았는데, 필요할 때만 뜯어먹으면 좋을 것 같다. 벌써 깻잎 향기가 나는 것 같다. 또한 베란다에서 심기 좋은 열매인 피클 오이와 앉은뱅이 토마토. 아이들은 열매를 참 좋아한다. 노지처럼 많이 열리진 않겠지만 즐거운 자연 놀이가 될 것이다.
파심기는 쓰레기 줄이고 돈 안드는 베란다 놀이 아이디어다대파 한 단을 사다 먹고 뿌리 잘라놓은 것을 심었다. 요걸로 급할 때 써야지. 파를 심으니 진짜 텃밭이 된 것 같다. 환기도 더 자주 시켜줄 테다. 그 옆엔 부추를 심어야겠다.
나의 진짜, 다육이들육아기간 식물을 다 정리하며, 너무 아쉬워 들인 다육이들. 내 기대에 부응하였는지 5년 동안 물도 제대로 안 주고 방치했는데 너무 잘 살아줬다. 나는 먹을 수 없고 화려하지 않아 원래 다육이를 많이 좋아하지 않았었다. 한데 이렇게 내 마음을 5년간 위로해주다니. 가장 힘들 때 남는 사람이 진짜라더라. 정말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한 마음의 벗 다육이들. 보답하고자 새 흙을 담은 새 집에 옮겨주었다.
분위기가 흉흉한 요즘. 우리 집 베란다에 있으면 이 모든 걱정들이 사라지는 기분이다. 햇빛과 흙과 새싹들이 나에게 봄이 왔다는 것을 매일같이 알려준다. 힘차게 올라온 새싹들이 나에게 딛고 일어나는 생명력을 전해준다. 나의 소중한 공간 한평 베란다에 이렇게 희망이 싹튼다. 아이들과 함께 누리는 이 시간이 찬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