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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 박 Apr 03. 2020

[임신과 출산] 반갑지 않은 예고편

17.12.2-18.12.29 맘스홀릭 베이비 카페 엄마 칼럼니스트

"어머, 애가 곧 나오겠어요. “


'어쩐지 숨쉬기가 되게 편하더니 애가 내려올 만큼 내려왔구나.‘


33주에 정기검진을 받으러 주말에 산부인과를 갔다가 그 날 바로 입원을 해야 했다. 주말에 병원을 간다고 했던 애가 갑자기 회사에 출산휴가를 내버렸다.


나도 놀라고, 가족들도 놀라고, 회사도 깜짝 놀랐다.


결국 병원에서 열흘 정도 입원해 있었는데, 나는 입원비가 아까워 개인병실을 쓰지 않고, 종합 병실을 썼다. 벽도 없이 나와 다른 환자의 공간을 구분해주는 것은 커튼뿐이었다.


그래서인지 난 출산 전에 이미 여러 번의 출산을 경험할 수가 있었다.


출산 전 대기하러 온 임산부들이나 출산 후 막 아기를 낳고 온 산모들이 나의 양 옆 커튼을 사이에 두고 하는 이야기를 쉬지 않고 들어야 했다.


"엄마! 나 똥꾸멍이 너무 아파. 왜 그래?" 정말 궁금했다.


분명 배로 낳는데, 왜 똥꾸멍이 아픈 것일까?


한 번은 외국인 여자가 늦은 밤 아기를 낳고 왔는데, 국적 불명의 "쉐페따뤠@#$%~~~"를 쉴 새 없이 지껄여가며 남편과 친구 포함 대략 외국인 서너 명으로 추측되는 인간들과 함께 자축파티를 벌이기도 하였다. 내가 좋아하는 치킨까지 사 와서 말이다.


'정말 외국인들은 애 낳아도 찬물로 샤워한다던데, 왜 치킨만 시켜먹냐! 맥주도 먹어라 이것들아!'


만약 그들이 나에게 닭다리 하나라도 커튼 밑으로 슬며시 건네주었다면 나도 같이 "콩그레츄레이션!" 해줬을 텐데,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딱 30분만 참고서는 병원 데스크에 가서 조용히 시켜달라고 부탁했다.



이처럼 열흘 정도 입원해 있는 동안 난 별의별 사람들, 상황들을 겪으며 지냈다.


'싼 게 비지떡이지. 하루에 병원비 몇 천원이 어디야! 버텨야 해!‘


병원에 있는 동안 침대에만 누워 지내자니 갑갑하기도 했고, 애가 언제 나올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컸다.


하물며 화장실에서 큰일 보는 것도 정말 무서웠다.


'아 이거 힘주다가 애가 갑자기 확 나와서 변기에 빠지지는 않겠지?'라는 생각이 매번 들고는 했다.


매일 밤 뜬 눈으로 지새우며, ‘오늘 하루만 더 보내고 내일만 돼서 낳아도 좋겠다.’라는 그런 간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이제는 집에서 조심하면서 지내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정기 검진하러 왔다가 갑자기 병원에 입원하게 되어 그렇게 열흘을 보내고서 오랜만에 나온 세상은 벌써 가을의 끝자락에 다다라 있었다.


병원에서 친정으로 가는 길에 곱게 물들어 있는 나뭇잎들이 얼마나 근사해 보였는지 모른다.


'고생했어. 나도, 뱃속에 우리 아가도,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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