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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 박 Apr 04. 2021

혼자 노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

글을 쓴다는 것과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나를 만나게 되는 과정임을 다시 깨닫게 되는 요즘이다.


우연한 기회로 가지게 된 새로운 취미 역시 


어린 시절부터 혼자 노는 것을 좋아했던 나에게 맞는 것이었다.


외향적이고, 활발하고, 대범하고, 건방져 보이지만


실제로는 내성적이고, 조용하고, 소심하고, 자신감이 없는 나였다.


어쩌면 둘다를 가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놀이터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게임을 하는 것도 싫어했다.


룰을 잘 이해하지 못했고, 내가 지는 것이 분명했다.


다른 아이들 앞에서 부끄럽고, 민망한 상황이 노출되는 것이 두려웠다.


사실 시도를 해본 적도 없었다.


해보지 않아도 나는 확실히 질 사람이었고, 나의 부족한 면만 드러날 뿐이었다.


그리고 굳이 아이들과 어울리지 않아도, 


나에게는 시간을 함께 보낼 친구들이 내 방 안에 많이 존재하고 있었다.


인형, 보드게임 등


"엄마 내 인형 어디 갔어?"


"버렸다."


"버리면 어떻게 해?"


"네가 몇 살인 줄 알아? 대체 언제까지 가지고 놀 거야?"


"안돼!"


나의 완벽하고도 완전했던 세상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였을 것이다.


벽장 앞에서 인형들을 가지고 혼잣말하면서 노는 딸이 걱정되는 마음에


엄마는 내가 학교를 간 사이에 인형들을 다 버려버렸다.


어릴 적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해 주었던 인형들과 작별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우리의 관계는 그렇게 끝이 나 버렸다.


부루마블도 좋아했다.


작은 보드판에서 전 세계로 여행을 다니면서 호텔도 짓고, 빌딩도 짓고 근사했다.


이 게임 역시 혼자 하는 것을 좋아했다.


비록 말을 4개를 가지고 하다 보면 자주 헷갈리고,


내 위주로 게임을 해서인지 매번 나만 이겨서 조금 시시하기도 했지만,


절대 내가 손해를 보지도, 억울할 일도 없어서 좋았다.


인형놀이도 부루마블도 


내가 주인공인 나 중심인 세상이었다.


나는 누군가의 눈치를 볼 필요도, 누군가와 타협할 필요도 없었다.


그곳에서는 내 생각이 전부인


내가 정한 질서만이 존재하는, 물론 그 질서는 매 순간 바뀌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그런 세계였다.


나는 외롭지 않았고, 불안하지 않았다.


편안하고, 안도감을 느꼈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도, 마음을 헤아릴 필요도 없었다.


상처받을 일도 상처를 줄 일도 없었다.


......


그리웠다. 한 번씩


아니 사실은 자주


성인이 되고 나에게 주어지는 삶의 무게는 


제길 무거워 죽겠고,


할 수 있을 거라며


게임 단계가 업그레이드되는 것처럼


짐이 계속 얹어질 때마다


잠시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공간으로 가서


제발 걱정 좀 없이 쉬고 싶었다.


술이고, 사람이었다.


어른이 되고 오랜 시간 동안 나에게 안식처는


물론 지금도 그런 편이지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것도 헛헛했다.


물론 술과 사람에 취했을 때는 황홀했지만,


몸에서 알코올이 빠져나가고, 내 주변에 사람들이 다 사라졌을 때에는


오히려 허무함이 밀려오고, 우울한 기분이 들 때가 많았다.


그리하여 이리하여 저리 하여


혼자 노는 것을 좋아했던 아이가 


어렵사리 아직 찾지 못한 다른 사람들보다는 빨리


찾은 놀이가 글을 쓰는 것과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다.


어떤 세상이 될지 어떻게 만들어질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행복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어릴 적 내가 만들었던 나의 작은 세상처럼 말이다.


내 기억에 의하면,


놀이는 의무감에 하는 것도 아니었고, 하고 싶을 때 하는 것이었다.


잘할 필요도 없었고, 못해도 내가 즐거우면 되는 것이었다.


앞으로 나는 


벽장문을 열고 싶을 때 열고, 기분에 따라 마음에 드는 인형들을 골라 가지고 놀았던 


어린 시절의 나처럼


글을 쓰고 싶을 때나 그림을 그리고 싶을 때 


브런치를 통해 마음껏 자유롭게 표현해보려고 한다.


누구를 위함이 아닌 나만을 위한


목적은 본디 그러하였지만, 결과적으로는 당신을 위한 글과 그림이 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조금은 품어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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