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리 Jul 31. 2020

불안이 나를 잠식할 때

개와 늑대의 시간

초조하고 불안하다. 


사실 엄밀히 따지면 이유 없는 불안도 아니고 그런 불안은 없었다. 요즘 불안의 주 이유는 막연한 미래다. 단순 바이러스 같은 역병이 창궐해서 그런 건 아니다. 이 바이러스는 인간의 불안함을 실체화하고 구체화하는데 '기여'했을 뿐 보이지 않는 막연함은 언제나 존재해왔다. 그렇다고 해서 10년이 지나면 모든 미래가 창창하고 확실해서 나의 삶은 안정될까? 미래에도 달라지지 않는다. 다만 미래엔 조금 더 단단한 내가 이 불안 앞에 맞서 버티고 있기를 바랄 뿐이다.  


요즘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일하고 힘들게 번 돈으로 밥을 먹고 소모품을 사면 또다시 돈을 벌어야 하고. 그럼 다들 그냥 이렇게 사는 건가? 계속 이렇게 굴러가는 게 인생일까? 아 이렇게 사는 건가'. 한 해 한 해 지나면 어느 날 갑자기 커리어우먼이 되거나, 어릴 적 드라마처럼 근사한 실장님이 고급 일식당에서 초밥을 포장해 야근에 지친 나를 위로해주거나 전망 좋은 집을 사 사랑하는 사람들과 와인 한 잔 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달콤한 꿈을 이루리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언제나 상상을 뛰어넘어 더욱 고되고 지친다.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오고 가는 인생의 굴레에 조금이나마 향기를 입히고 싶어 요즘 아침에 일어나서 항상 다지는 결심과 각오가 있다. 한 번 생각한다고 해서 에너지,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닌데 이 한마디가 주는 힘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오늘은 새로운 하루다.' 


어제의 지침과 애씀, 우울함과 불안, 짜증, 피로는 어제에 맡기고 무조건 일어나면 오늘은 새로운 하루다. 새로운 하루는 아무것도 없는 도화지 같다. 유년 시절만 투명한 도화지가 아니다. 매일매일 아침은 나의 새로운 도화지다. 물론 가끔은 과거의 얼룩을 메꾸거나 수정해서 오늘이라는 도화지를 다시 그려나가야 할 때도 있지만 적어도 오늘 하루는 내가 그릴 수 있다. 내가 주체가 되어 오늘 도화지를 어떻게 그리냐에 따라 내일 다시 흰 도화지가 될 수 도 있고  오늘 그린 밑그림 위에 내일은 조금 더 수월하게 시작할 수 있다. 


나는 왜 불필요하고 쓸데없는 곳에 귀한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하며 살았을까? 지나간 기회, 지나간 인연에 연연할 필요가 없었다. 오늘부터 새롭게 시작하면 미래의 기회, 미래의 인연이 어느새 다가오리라 믿고 싶다. 중요한 전제는 오늘부터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일상에 새로움이 더해져야 변화가 온다. 경험상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청소였다. 


청소도 3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먼저 주변 청소를 하면서 땀을 낸다. 간단한 정리를 넘어 지난 몇 년간 쓰지 않은 물건, 옷가지를 모두 버리고 정리한 뒤 공간을 확보하고 주변을 쓸고 닦는다. 몸을 움직여 땀을 낸 뒤 다음은 자연스럽게 내 몸을 청소한다. 평소보다 긴 시간을 투자해 공들여 씻는다. 목욕탕 또는 온천을 가서 땀을 빼는 게 가장 좋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긴 시간 따뜻한 물로 샤워한다. 평소에 귀찮아서 패스한 트리트먼트도 오래 하고 얼굴에 팩도 하고 향기 좋고 보습력 강한 로션을 바르며 근육을 풀고 마사지한다. 마지막 가장 중요한 청소는 머릿속에서 이루어진다. 술, 커피, 차, 생수, 아이스크림 등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음료를 음미하며 머릿속을 청소한다. 이 작업이 제일 중요하다. 이때 여태 나를 힘들게 한 것들, 그중 불필요한 것과 중요한 것을 구분해 적는다. 쓸데없는 것은 털어버리고 앞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한 일에만 집중한다. 



 전남친, 구여친, 직장상사, 직장동료, 친척, 진상손님, 갑질 하는 인간들 모두 어찌 보면 내 인생에 지나가는 조연이다. 이들이 내 인생에 주연이 되어선 안 된다. 조연은 조연답게 내 인생에 부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이들이 나를 스쳐 지나갈 수 있도록 한다. 이들은 나에게 중요한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이 중요하지도 않은 보잘것없는 것을 내 인생에 주연으로 만드는 것도 곧 나 자신이다. 개 같은 전애인에 왜 내 인생이 끝난 마냥 타로 보고 점보며 돈까지 허비했을까. 그 돈으로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 먹으며 하루를 즐겁게 마무리하는 것이 애쓰느라 고생한 나를 달래주는 위안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이것이 지난 시간, 시련 앞에 어찌해야 할지 몰랐던 너무 순수한 과거의 내가 오늘 나에게 주는 달콤 씁쓸한 교훈이다. 


오늘은 새로운 하루다. 내일도 새로운 하루다. 날마다 새롭고 날마다 단단해진다.  조금 더 단단한 내가 이유 있는 불안 앞에 맞서 버티길 바란다. 그러니 연약하고 소모적인 이파리로는 순간순간을 달래고 정말 중요한 뿌리를 내리는 데 에너지를 집중해야 한다. 연신 기상예보가 엇나가 기상청이 야속하기도 하지만  갑자기 소나기 내리고 갑자기 넘어지는 게 인생이다. 그 소나기 속에서 우산이 없어 울든 춤을 추든 선택도 나의 몫이다. 









작가의 이전글 날마다 이별하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