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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리 Aug 04. 2020

너의 애씀과 나의 인내가 만나

마이 아보카도 다이어리 my avocado diary



아보카도를 식자재료로써 처음 산 건 올 4월이었다. 



아보카도가 환경파괴 주범이라는 기사를 몇 년 전 본 이후로 마트에서 아보카도에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막상  외식할 때 분위기 좋은 식당에 가면 꼭 아보카도 들어간 샐러드나 햄버거를 먹으면서 식재료로써 사지 않는 아이러니는 뭐였을까. 아보카도는 고급 샐러드 가게 혹은 분위기 좋은 음식점에서 건강한 메뉴로 볼 수 있는 식재료라는 인상을 준다. 서브웨이만 가도 아보카도 추가는 저렴하지 않은 것처럼. 이 과일은 환경에 유해하다는 꼬리표와는 다르게 먹는 동시에 입맛도 기분도 업그레이드되는 기분을 주었다. 


그런데 코로나바이러스 이후 먹거리와 비건 채식 키토 등 다양한 형태의 식단을 검색해보면서 아보카도가 필수 식자재처럼 눈에 계속 띄기 시작했다. 요즘 육고기 소비도 줄이고 있는 마당에 영양소가 부족하지 않을까 싶어 호기심에 세일하는 아보카도를 기다렸다. 가장 잘 나갈 때 사는 것보다 철 지나고 시들해져서 값이 저렴해질 때 사는 게 환경파괴에 덜 기여할 거 같은 합리화를 해대며. 사실 아보카도는 대부분 수입산이다. 특히 중남미에서 많이 생산되어 우리나라로 수출되는데, 철 지나 팔리지 않는 아보카도가 넘쳐나면 결국 영세농민인 생산자에게 손해가 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합리적인 소비는 언제나 어렵다. 아보카도는 하나 사고 싶고 환경파괴엔 일조하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도 많은 합리화와 생각을 하며 그렇게 힘겹게 아보카도가 장바구니에게로 왔다. 


아보카도를 나름 가장 싱싱하다고 생각한 놈으로 골라 요리할 생각에 신이 났다. 집에 오자마자 칼로 껍질을 바뀌었는데 너무 딱딱해서 못 먹을 듯싶었다. 부랴부랴 검색하니 후숙이라는 걸 해야 한단다. 결국 생밤 같은 아보카도를 먹는 둥 마는 둥 씹어 삼켰고 그 씨만 덩그러니 남았다. 사실은 이 씨앗이 궁금했다. 아보카도 발아를 바로 검색했다. 


테이크아웃용 플라스틱 커피잔에 아보카도 발아 작업을 시작했다. 환경파괴 주범이라는 네 꼬리표도 조금 떼어 주고 나의 죄책감도 덜고 싶은 마음에 재활용했다. 그리고 눈에 띌 때마다 물을 갈아 주고 이 물로 다시 다른 화분에 물을 주었다. 물을 많이 먹어 환경에 좋지 않다는 너를 또 조금이나마 좋게 봐주고 싶어서.  일주일 한 달 두 달 그냥 버릴까 말까 할 정도로 요지부동이었다. 아무런 움직임도 포착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뭔가 씨앗이 갈라졌고 그 속에서 애타게 기다리던 싹이 나왔다. 4월 초에 물에 담근 씨앗이 뿌리를 내리기까지 약 2~3개월이 걸린 셈이다. 한편으로 기특하고 감동스럽기까지 하다. 저 씨앗 하나 내리자고 그 속에서 부단히 애썼을 생각 하니 고마웠다. 싹을 내리자마자 무섭게 성장했고 화분에 옮겨 심으니 날마다 쑥쑥 성장하는 진기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애씀



또 그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자꾸만 아보카도에 감정이입을 한다. 식물에 감정이입을 하는 것은 양날의 검과도 같다. 잘 자라면 내 생활에도 활력을 주고 생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 주지만 행여나 시들거나 말라버리면 마치 내 생활도 저리 될까 봐 속상하고 우울하다. 어느 대상에 대한 나의 관심은 감정이입에서 시작되며 이 감정이입이 이토록 무서운 것임을 지난 겨울 동백나무와 올 여름 아보카도를 키우며 깨달았다. 여태 나를 흔들던 수많은 이별은 나의 감정이입에서 시작되었구나. 나는 누군지 간에 어느 대상을 좋아해 버리면 감정이입을 하고 있었구나. 


앞으로 어떻게 클지 어디까지 클지는 모르겠다. 다만 내 관심이 줄어 아보카도를 방치하면 곧 죽을 거라는 사실만 알고 있다. 네 운명이 내 손에 달렸다는 책임감과 동시에 너를 처음 키워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막연함이 밀려온다. 마치 부모가 처음 아이를 키우듯. 알 수 없는 나의 미래인 양 자꾸만 네게 감정 이입하고 있지만 나는 네 덕에 끝이 보이지 않는 2020년 여름 기나긴 장마를 버텼다. 마치 엄마가 장마를 뚫고 나를 키웠듯이. 너의 애씀과 나의 인내가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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