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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리 Feb 22. 2020

꽃의 온기

바이러스 신문에 둘러싸인 꽃이 아이러니 하다.


오랜만에 남대문 꽃시장에 갔다. 



꽃꽂이를 위해 꽃시장을  갈 땐 하나의 스케줄이 되는 데, 요즘처럼 바쁠 때 꽃 시장은 지나다 잠시 들리는 하나의 이벤트로 다가온다. 2월은 '꽃시장의 꽃'으로 모든 졸업식과 입학식 시즌이 가득했던 예전이지만 요즘은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으로 모두 힘든 시간을 버텨내고 있다.  꽃 시장에 들어가면 꽃이 풍기는 향기와 물 비린내가 섞여 꽃 시장 고유의 온도를 만든다. 후각을 자극하는 이 향기를 위해 마스크를 잠시 벗을지 말지 고민한다. 


노란 꽃을 좋아하는 나는 싱그럽게 퍼진 버터플라이에 오늘도 마음을 뺏긴다. 볼 때마다 예쁜 걸 보면 좋아하는 꽃 목록에 넣어도 무방할 것이다. 남대문 꽃시장은 서울에 있는 다른 꽃시장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가끔씩 들려 한 두 단씩 구매해 사무실이나 책상, 방 안에 꽂아 두기 좋다. 한 바퀴 돌며 어떤 꽃이 싱싱한 지, 시세는 어떤 지 먼저 찬찬히 살핀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가던 집으로 간다. 이 가게는 (내 생각에) 남대문 꽃시장에서 가장 싱싱한 버터플라이를 파는 집이다. 버터플라이 한 단과 같이 어우러질 수 있는 이파리를 구매해 버스를 기다린다. 바이러스 때문일까 아니면 애매한 시간 때문일까. 버스가 한산하다. 오늘 버스 기사님과 함께 동행할 승객은 나 포함 3명이다. 내 앞에 아주머니는 마스크의 갑갑함과 하루 종일 씨름해야 하는 기사님에게 간식을 전한다. 내 뒤에 앉은 아주머니는 나에게 말을 건다. 바이러스 확산으로 길거리에서 불특정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게 조금 꺼려졌는데 오늘 이 대화로 나는 다시 사람의 온기를 느낀다. 꽃의 온기다. 


"꽃이 예쁘네. 이 꽃은 이름이 뭔가요. 아가씨는 꽃 하는 사람인가 봐요."


꽃을 사고 버스를 타면 종종 주변에서 말을 건다. 아기가 있는 부모가 또래 아이를 만날 때마다 "이 아이는 몇 개월인가요" "성별은 뭔가요" 하며 한마디 말을 섞다 뜻밖에 육아 정보도 공유하며 소통하는 장면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그 대화거리가 아이일수록 사람들은 경계심을 푼다. 그래서 나에게 꽃은 아기 같은 존재다. 꽃 이름을 알려주고 이 꽃은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내가 아는 짧은 지식이 전해지면 상대방은 더 흥미로운 이야기를 나에게 해준다. 오늘 이 아주머니는 냉장고에 붙이는 자석 도자기를 알려주셨다. 사진도 보여주셨는데 작은 도자기 자석에 물을 넣고 자투리 꽃을 넣으니 훌륭한 인테리어 소품이 됐다. 오늘도 이렇게 꽃 덕분에 또 다른 재미를 배운다. 


바이러스가 주는 불안감, 지나치게 과장된 공포심이 인간 사이의 소통을 막고 보이지 않는 국경을 쌓아 모든 걸 닫아버린다. 바이러스는 어떻게든 살아남아 인간의 세포 속에 들어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활개 치는데 이런 바이러스 앞에 온기를 막고 살아간다면 결국 바이러스에 굴복하는 게 아닐까.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은 바이러스와 그 확산이지 인간이 온기가 아니다. 나에게 풍족한 마스크는 조금씩 나누고 휴교로 발이 묶인 아이들은 이웃끼리 서로 보듬어 주며 이 긴긴 싸움에서 이겨내는 지혜를 터득해야 한다.  


신종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이제 시작이다. 인간의 욕심으로 지구가 신음하는 동안 인류는 너무 많은 불편한 진실을 외면해왔다. 일은 이미 벌어졌고 앞으로 어떤 바이러스가 생길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지금 이 상황에서 우리는 선례를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정부와 당국이  국민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보여주며 국가와 국민 사이에 신뢰를 쌓고, 이 싸움에서 이기적이지 않게 이겨나가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 공생하는 방법을 알려주어야 한다. 다시 나에게 사람의 온기를 되찾아 준 것도 결국 자연, 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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