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등단할 때 느꼈던 감정을 여러분과 나누려고 합니 다.
아마도 2020년 5월경 시인으로 등단한 것 같다,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하니 큰일이다.
내가 등단한 출판사는 전통 있는 문학 출판사다.
주로 시선집과 시집 그리고 수필을 출간하는 출판사의
전국 공모전에서 등단의 꿈을 이루었다.
그랬다! 분명 꿈이었다.....,
그것이 현실이 되기까지 33년을 돌아왔다, 아니 어쩌면 축척의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중학교 때부터 글 쓰는 것을 좋아한 것 같다, 그렇다고 일기를 매일매일 쓴 것도 아닌데, 그냥 끄적이는 것을 즐겨했던 것 같다.
백일장에 나가 상을 타거나 글솜씨가 좋다고 칭찬을 들을 만한 사건도 나에겐 없었다.
그냥, 혼자 사색하고 혼자 끄적이는 내성적인 아이였던 것 같다.
학창 시절, 그리고 불안전한 청년의 때를 지나면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그야말로 꿈도 못 꾸고 살아왔다.
그만큼 시인이라는 꿈은 정말 꿈이 되어 가고 있었다.
결혼을 하고부터는 정말이지 정신없었다.
대부분 그렇겠지만 인간 본연에 근본적인 질문들을 하는 것도 나에겐 사치처럼 느끼고 살아왔다.
난 그때 내 인생에 질문을 잃어버렸는지 모른다.
그러다 이이가 태어났고 현실은 그냥 무겁고 버거운 짐이 되어 있었다.
그러다 한 가지 사건을 통하여 난 심한 조울증에 빠지게 되었고 공황장애를 겪게 되었다.
어쩔 땐 한 달 정도를 집 밖을 나가지 않은 적도 있었다.
그때 난 사람이 이렇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고 실제로 내가 살고 있는 14층이 별로 높아 보이거나 두려워할 만큼 높아 보이지 않았다.
새벽을 뜬 눈으로 새우고 해가 중천에 떴을 때 잠들기를 몇 개월을 반복한 것 같다.
어둠이 짙게 깔린 거실에 홀로 멍하니 서있을 때면 심장이 뚫고 나올 것처럼 두근거렸고 곧 식은땀이 흐르기 일쑤였다.
그렇게 몇 달이 흐른 어느 새벽, 나는 그날을 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때가 어둠의 긴 터널에서 빠져나오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어두운 거실 바닥에 앉아 생각했다, 이렇게 인생이 끝나 버린다면 얼마나 허무한 걸까, 지금 보다는 나은 삶이 분명히 존재할 텐데 이대로 끝난 다면 너무나 나 자신에게 미안한다는 행각이 들었다.
아마도 그때 나도 모르는 무의식 속에서 살고 싶다 정말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어둠 속에서 소리치고 있었던 것 같다.
무엇을 하면 될까? 뭘 해야 내가 행복할까?
이 질문을 계속해서 던졌다, 그리고 난 작은 실마리를 찾았다.
잃어버린 꿈, 아니 스스로 내 팽개치고 기억조차 하지 않았던 꿈을 다시 꾸자.
그리고 그때의 감정 들을 글로 승화시켰다.
매일 밤을 두려워 떨던 장소는 어느새 꿈을 꾸는 자리가 되었다.
지나온 시간들이 느낌이 되고 힘들고 고단했던 삶이 경험이 되어 나의 꿈을 응원하고 있었다.
그때 알게 된 것이 하나 있다, 그 누구의 경험도 결코 헛 된 것은 없다, 다만 자신의 선택에는 반드시 결과가 존재할 뿐.
후회도 소용없고 자랑도 필요 없으며 오직 선택에 대한 책임이 따른다는 것.
난 나의 꿈을 방관한 어쩔 수 없는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했고 더욱 고뇌했으며 더욱 많은 생각을 해야 했다.
그 생각에 대한 책임이 등단에 대한 소망이 되었고 소망은 나에게 기쁨이 되었다,
다시 글을 쓴다는 것이 너무나 기뻤다.
그리고 그 기쁨의 시간은 상상 치도 못한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어쩌면 그 힘든 시간을 처절하게 버텨낸 것에 대한 삶에 보상은 아닐까.
그래서 포기하면 안 되는 건가 보다.
나 또한 남들과 다르지 않은 일상의 보편 적인 삶을 산다고만 생각했지 이런 특별한 경험을 할 것이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 일수도 있다, 시인도 넘쳐나고 글을 너무나 진솔하게 잘 쓰는 분들도 너무 많으니까.
그러나 나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벼랑 끝에서 만난 어마어마한 독수리의 날개에 올라 탄 것과 같다.
어떻게든 날아올라 어두운 터널을 벗어나고 싶었다.
어둠의 고통은 날카로운 사자의 이빨에 짓눌린 들짐승의 두려움과 다를 것이 없다.
어떻게든 벗어나지 못하면 죽는다, 사자의 이빨을 부수고 나의 한 부분을 잃고서라도 끔찍한 어둠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나에게 그런 것이다, 현실에 대한 도피가 아니라 상상하고, 질문하고, 돌아볼 수 있는 깊음의 시간이었다.
그렇게 나는 내 인생 최악이라 할 수 있는 시간을 한 자 한 자 써 내려가며 이겨냈다.
등단 패 와 등단 증서 그리고 공모전에 출품했던 시가 담긴 시선집을 손에 들었을 때 내가 한 말을 지금도 기억한다.
와~~~33년 걸렸구나......
나는 또다시 어둠에 갇히지 않기 위해 날마다 글을 쓴다.
에세이도 좋고, 시도 좋고, 그냥 메모도 괜찮다.
그러다 보니 긴 글을 쓰는 일에도 도전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시인으로 등단한 지 일 년 후에 수필가로 등단
했다.
글을 쓰는 일은 목표를 정하고 새로운 도전을 계속해서 할 수 있도록 하는 촉매제와 같다.
성장이 멈춘 나무는 섞어 꺾이기 마련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썩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일.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고 누구나 소설가 가 될 수 있다.
절망과 어둠의 시간은 결코 길지 않다, 영원하지 않다.
그리고 그 시간을 이겨낸 자에게 신은 반드시 대가를 지불해 주실 것이다.
우리의 삶에 진정으로 값진 선물은 고난 뒤에 주어지는 새로운 생명으로 산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 절벽 위에 선 새끼 독수리와 같을 지라도 명심해야 할 것은 쉬지 않고 새끼를 지켜보는 어미 독수리가 있다는 것이다.
두려워하지 않으면 날 수 있다, 그리고 곧 또 새끼를 지키는 어미 독수리가 될 것이다.
바로......
지금......
당신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