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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씨아저씨 May 01. 2018

농촌 체험이란 이름의 약탈

땅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가지고 가자

나는 ‘공씨아저씨네’라는 온라인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과일 장수다. 농사의 농자도 모르는 채 이 일을 시작한 지 벌써 7년 차에 접어든다. 막상 일을 시작해 보니 농산물 유통구조는 나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것 투성이었다. 사회에 만연해 있는 '외모 지상주의'가 농산물 시장에서도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큰 충격이었다. 그래서 나는 '크기'와 '모양' 중심이 아닌 과일 본연의 '맛'과 '향' 중심의 조금 다른 과일 유통을 시작했다.



와!!! 딸기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딸기 밭으로 들어간다. 500g 플라스틱 빈 용기를 하나씩 들고 들어가서는 무지막지하게 딸기를 입속으로 넣는다. 누가 누가 더 많이 먹나 내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그리고 더 이상 배가 불러서 딸기를 못 먹게 되면 용기를 채우기 시작한다.


딸기밭에서 직접 수확한 딸기 반짝 반짝 광이 난다


딸기 수확 체험장의 모습이다. 그 체험 비용이라고 해봤자 고작 1인당 1만 원을 받는다. 단체로 올 경우 더 싸다. 이것도 비싸다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있다. 오직 마트에서 판매하는 500g 딸기 한 팩의 가격만 떠올리고 최소한 본전은 뽑아야겠다는 굳은 각오를 하고 딸기 밭으로 들어가게 된다. 우리가 농장에서 직접 딸기를 수확해 볼 수 있는 그 소중한 경험에 대한 비용을 고려해주시는 소비자는 많지 않다. 


밭에 들어가기 전에 '뚜껑이 닫힐 정도로만 따 가지고 오세요'라고 웃으면서 안내를 하지만 뚜껑을 열어서 나오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눈살이 찌푸려지는 장면들을 많이 보게 된다. 딸기 하우스 안의 온도가 높은 탓에 밭에 그렇게 오래 있지도 못하는 게 딸기 수확체험의 특징이다. 그렇게 20분 정도가 지나면 한 무리의 사람들이 밭에서 나오고 또 다른 약탈의 무리들이 밭으로 침투한다. 


이것이 우리가 딸기 수확체험이라고 부르는 현장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20분이라는 시간 동안에 우리는 농촌을 경험했다는 자뻑에 빠지곤 한다. 족집게, 요점정리, 진액(엑기스), 패키지여행 등 늘 압축으로 무엇을 경험하려고 하는 우리의 습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체험이라 쓰고 약탈이라 읽는다


봄이 오면 농촌 체험이 본격화된다. 수확 체험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농촌체험. 개인단위, 가족단위 체험객도 있지만 주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초등학교에서 교육의 일환으로 단체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내가 이 일을 처음 시작하면서 손님들과 뭔가 함께 하는 그런 활동들이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에 '농촌 체험'이라고 불리는 행사들을 찾아다녔다. 공부하는 마음으로... 


그러나 체험의 횟수가 계속될수록 나에게 남는 건 허탈함 뿐이었다. 이런 것이 진짜 체험인가? 이건 오로지 도시 소비자들의 하루 자위 거리밖에 되지 않겠구나 싶었다. 농촌의 살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라고는 전혀 없었다. 그 체험을 통해 농촌을 이해하고 농부를 이해했을 리 만무하다. 


아이들과 학생들이 주 고객층인 딸기 수확체험이 인기가 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딸기 수확에는 별다른 도구가 필요 없다는 점이다. 두 손가락만 있으면 '뽁'소리가 나며 떨어지는 딸기의 느낌은 경험해본 사람만이 안다. 그리고 딸기밭의 좁은 고랑을 걸어 다니기에 성인보다는 아이들의 체형이 최적화되어있다.


딸기 수확 체험을 하고 있는 아이들


물론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대부분인 요즘 이런 경험을 통해 농촌을 직접 보고 오는 것만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겠냐고 반문을 할 수는 있겠으나 나는 단연코 NO라고 말하고 싶다. 


농민들에게는 농촌은 삶의 현장이다. 일터이자 생활공간이고 또한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 자연환경을 보존하는 막중한 임무 또한 주어진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그곳을 방문하는 마음가짐은 어떠한가? 난 손님이고 당연히 대접받아야 하며 나는 즐거워야 한다. 거기에 농촌에 대한 그리고 농부에 대한 배려는 잠시 잊은 듯 보인다. 


가장 이상적인 체험은 씨를 뿌리고 풀을 뽑고 내가 심은 작물이 잘 자라는지 진심으로 걱정하며 수확까지 함께 참여하는 모든 과정이 담겨있어야 한다.  최소한 한 농장에 일 년에 4회 이상은 방문해서 땀을 흘려야 진짜 체험이 가능하다. 그러나 나 역시 이러한 체험은 아직 머릿속에만 있지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다. 


최소한 농촌 체험의 목적이 우리가 먹는 농산물의 가치와 농부들의 수고로움에 대한 경험이라는 교육적 효과를 기대한다면 응당 노동을 해야 한다. 그러나 소비자는 노동을 싫어한다. 처음 10분 20분은 재밌다고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허리는 아프고 땀은 삐질 삐질.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듀스의 노래 가사가 절로 떠오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은 결정적으로 폼이 안 난다. 사진을 찍어서 인스타에 올릴 각은 더더욱...


현재의 일반화된 농촌체험은 '과정'은 철저히 무시하고 '결과'에 초점을 맞춘 정확히 말하면 결과물만 취하겠다는 지극히 이기적인 체험이 대부분이다. 일 년 내 농부가 열심히 키워놓은 농산물을 하루 와서 수확만 해가는 것에서 소비자는 무엇을 느낄 수 있는가? 아이들은 무엇을 배워서 가겠는가? 조금 냉정하게 말해서 수확이 아닌 약탈이라고 부르는 게 맞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조금 다른 체험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체험과 약탈 사이


농부의 농사 이야기를 듣고 있는 체험객들의 모습


2016년 4월. 이 일을 하면서 진행한 첫 체험 행사였다. 손님들과 함께 유기농 딸기 생산지인 충남 홍성 '세아유'농장으로 향했다. 내가 진행하는 체험은 어떻게 차별화를 둘 것인가에 대한 고민 끝에 우선 모집 대상을 반드시 세아유 농장의 딸기를 먹어본 사람으로만 한정했다. 홍보의 목적보다는 함께 연대하고자 하는 목적이 컸다.


체험농장도 함께 운영하고 있는 세아유 농장에는 1년에 1,500명 정도의 체험객이 다녀간다. 농장주 임영택 농부는 체험을 오는 체험객들을 대상으로 꼭 30분간의 강의를 먼저 한다, 농부의 입장에서 소비자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다. 체험을 계속 진행하는 이유 역시 수익 창출을 위해서가 아닌 지속적인 소비자 교육이라는 의식으로 말이다. 지금은 많이 퇴색되었지만 생협이 원래 추구하려고 했던 그러한 공동체를 만들고자 함이었다.


최소한 농부의 이야기는 들어야


그동안 본인들이 먹었던 딸기를 재배하는 농부를 직접 만나서 딸기 농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경험은 분명 의미가 있었다. 단순히 내 돈 내고 사 먹었던 딸기에서 내가 아는 농부가 재배한 믿을 수 있는 딸기로 변했다. 이날 체험을 하고 가신 분들은 그 이듬해에도 세아유의 가족으로 남아주셨고 이제는 딸기의 맛이라는 게 다양하게 변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세아유 농장과 함께 진행한 딸기밭 여행


체험이란 그런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는 것. 연대를 만드는 것. 이듬해에도 손님들의 요청으로 딸기밭 체험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손님들과의 끈끈한 연대감 덕분에 '세아유와 친구들'이라는 이름의 정기배송 딸기 배송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었다.



땀을 흘려야 한다


내가 직접 수확활동에 참여했던 단양산이슬 농원 양광 수확하던 날


과일 장수인 나는 판매하는 과일 농장에 최소 일 년에 2~3회 이상 방문한다. 꽃이 피고 열매를 맺기까지의 전 과정을 함께 하기 위해서이다. 사과 수확을 할 때의 노동의 강도를 경험하고 싶어 새벽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직접 수확에 참여한 적도 있다. 도시에서 주로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하던 사람이 몸을 쓰는 노동을 하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었다. 수확을 다 마치고 나니 허리가 끊어질 것처럼 몸은 고되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좀 더 강도가 높은 체험을 기획했다. 일명 '사과 수확 극한체험' (부제 : 허리가 뽀사질 때까지). 그냥 사과 밭에 잠시 스쳐가면서 사과 몇 개 따고 가는 그런 약탈이 아닌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하루 종일 사과 수확 현장에 직접 참여하는 체험 삶의 현장이었다. 


체험객 모집 포스터


야심 차게 체험객을 모집했지만 기대했던 것보다는 사람들이 많이 모집되지는 않았다. 내가 너무 미리 겁을 줘서인가? 극한 노동보다는 아무래도 소풍을 가고 싶은 사람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10여 명의 적은 인원이지만 우리는 2016년 10월 21일 단양사과 협동조합 조합원인 이운영 농부의 사과 밭에 모였다. 


직접 사과를 따는 과정을 경험을 해본 사람이라면 사과 표면의 작은 흠집 그리고 약간 멍들어 있는 것들이 왜 그런 것인지 몸으로 느꼈기에 사과를 구매할 때도 그러한 부분에 있어서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힘들어야 안다


체험이 시작되기 직전까지 비가 내린 탓에 땅은 질퍽질퍽 장화가 필요한 그런 날씨였다. 대부분 운동화를 신고 온 손님들의 신발은 흠뻑 젖었다. 그러나 그런 것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과를 수확하고 수확한 바구니를 옮기고 꼭지를 다듬는 마무리 작업까지. 아침부터 시작된 작업은 저녁 5시까지 계속되었다. 농부님은 바비큐 파티로 손님들의 노고에 대한 보답을 해주었다. 


사과밭에서 구워먹는 고기


힘든 노동이었지만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았다. 인건비를 받을 정도로 열심히 일한 손님들은 오히려 참가비를 내고 수확 체험에 참여했다. 사과 수확 체험을 통해 덕을 본 것은 농부가 아닌 소비자라는 것을 그들에게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 3킬로 사과 한 박스씩을 안겨 드렸다. 본인의 손으로 직접 수확한 사과 3킬로는 기존에 먹던 사과와는 분명 다르게 다가왔다. 내가 직접 수확한 사과. 이렇게 우리는 점점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자연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2016년 6월에는 조금 색다른 체험 프로그램도 만들어 보았다. 제목은 "조금은 불편한 여름소풍@숲속농장"이었다. 충남 금산 김동호 농부님의 '숲속농장'행을 기획했다.


어떤 정해진 프로그램도 없이 산속에서 자연을 느끼는 취지로 진행한 황매실 수학 체험. 숲 속에 위치하고 있는 이 농장에 손님들을 초대해 자연에서 잠시 쉬었다 가게 하는 것이 이 행사의 목적이었다. 진짜 힐링을 하게 해드리고 싶었다. 황매실 수확은 사실 그냥 핑계에 불과했다. 물론 체험비는 받았다. 무료로 진행하면 소비자들이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어 모든 체험에는 체험비를 받는다. 


농부는 손님들에게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고,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자연 속에 풀어놓으면 알아서 적응한다. 옷에 흙좀 묻어도 되고, 벌레에 좀 물려도 되고, 무르팍 좀 까지면 어떠한가? 화장실도 수세식이 아닌 생태 화장실이었다. 


아울러 체험객을 모집할 때 몇 가지를 전제 조건으로 내걸었다. 


1. 숲에 대한, 자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가지고 오실 것.

2. 매실을 1킬로라도 더 가져가려는 욕심은 버리고 오실 것.

3. 자연을 배려하고, 내 옆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오실 것.

4. 긴팔, 긴바지를 입고 오실 것.

- 산에는 벌레가 많기 때문에 반팔, 핫팬츠 차림으로 오면 팔에는 화상을 입을지도 모르고 다리에는 모기가 수십 방 물지도 모르기에 반드시 긴팔에 긴 바지를 입어야 한다. 아울러 신발도 최소한 운동화 내지는 등산화를 신고 와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연을 느끼자


여름철 농부들의 복장은 본 적이 있는가? 반팔을 입은 모습은 잘 보지 못할 것이다. 무더운 한 여름에도 긴팔을 입고 있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조건이 너무 까다로운가? 그러나 그래야만 했다. 그것이 진정 자연을 느끼고 자연에 대한 겸손을 배우고 농부들의 삶을 배울 수 있는 최소한의 전제조건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스무 명 정도가 참여를 해주었다. 



손님들은 즐거워 보였다. 숲 속 자연이 만들어준 꽃밭에서 자유로운 시간도 즐기고, 산속에서 자연에서 자란 잘 익은 황매실도 수확하고 양봉을 하는 과정도 직접 경험했다. 억지로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농부님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손님들이 그냥 하루 잘 쉬다갔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부탁의 말씀


농장에 갈때 나는 꼭 등산화에 등산바지를 입는다


내가 농장에 방문할 때는 절대 하지 않는 것 중에 하나가 흰색의 옷을 입거나 흙이 묻으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신발을 신고 가는 것이다. 그래서 보통 등산 바지에 등산화를 신고 다닌다. 풀을 밟으며 농장을 돌아다니다 보면 바지에 흙이 묻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비가 와서 땅이 젖어있기라도 하면 신발은 금세 젖게 마련이다. 


체험을 진행하다 보면 가끔 샤랄라 복장에 하얀 운동화를 신고 오는 분들이 있다. '나는 땅은 절대 밟지 않겠다'라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농부의 눈으로 본다면 세상에 이보다 더한 갑질은 없을 것이다. 최소한 땅과 함께 살아가는 농부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는 지켰으면 한다.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분 혹은 자녀들이 농촌 체험을 간다고 한다면 최소한의 복장은 챙겨주길 부탁한다. 최소한 땅을 밟을 준비는 하고 가자. 더러워진 신발은 빨면 그만이다. 그것이 약탈자인 우리가 땅을 대하는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아울러 양손을 무겁게해서 돌아오겠다는 마음보다 자연을 느끼겠다는 마음으로 가자.


나는 이 땅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농산물의 외모지상주의를 깨뜨리기 위해, 아울러 농부들의 수고스러움에 대한 ‘가치’를 ‘같이’할 수 있도록 농부의 마음으로 농산물을 판매하려고 한다. ‘농사 안 짓는 농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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