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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씨아저씨 Feb 12. 2019

명절이 과일을 망치고 있다

우리가 맛없는 과일을 먹어야 하는 이유

나는 ‘공씨아저씨네’라는 온라인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과일 장수다. 농사의 농자도 모르는 채 이 일을 시작한 지 벌써 7년 차에 접어든다. 막상 일을 시작해 보니 농산물 유통구조는 나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것 투성이었다. 사회에 만연해 있는 '외모 지상주의'가 농산물 시장에서도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큰 충격이었다. 그래서 나는 '크기'와 '모양' 중심이 아닌 과일 본연의 '맛'과 '향' 중심의 조금 다른 과일 유통을 시작했다.


한라봉


설날이 끝나고 난 뒤


SNS를 통해서 무엇인가를 8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삶을 좀 살아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남들처럼 맛집 사진이나 올리고 여행 사진이나 올리면서 폼나게 말입니다. 장사꾼 주제에 너무 거창한 꿈일까요?


이 일을 하면서 제가 가장 어려운 시기는 명절 직후입니다. 채널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식품을 판매하는 생산/유통업에서는 다들 힘든 시기입니다. 명절 직후에는 보통 집에 먹을게 많고 명절 전에 지출이 컸던 관계로 소비가 극감 하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과일이라는 단일 품목군으로만 장사를 하는 저로서는 더 어려운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명절 직후에 유통업체에서 가장 많이 하는 판촉 활동은 '세일'입니다. 매출을 내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물량을 빼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는 유통업체의 입장에서는 불가피하게 행해야 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구조를 나쁘다고만 할 수 없겠지만 '농산물'의 영역으로 한정해서 보았을 때 개선의 여지는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명절이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천혜향


명절이 제발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과거 농경 사회에서 명절이 갖는 의미는 특별했습니다. 명절이 갖는 고유의 의미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지만 그 방식은 조금 달라져야 할 때도 된 것 같습니다.


일 년을 명절 덕분에 먹고사는 분들도 계십니다. 사실 그런 분들에게 이 글은 조금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지금의 농산물 유통 구조는 정상은 아닌듯하여 오늘은 명절로 인해 농산물 시장이 어떻게 뒤틀어지고 있는지 몇 가지 과일의 예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이 문제에는 '농민'과 '유통인' 그리고 '소비자' 모두가 얽혀있습니다. 저는 이 세 집단은 서로 공생하는 관계여야 한다고 늘 주장합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풀어가는 주체 역시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천혜향


대목과 제철 사이


명절 특수로 경제적인 이득을 보는 농민들이 있습니다. 꽤 많습니다. 아직까지 설과 추석은 '대목'으로 여겨집니다. 배와 사과 등 제수용으로 쓰이는 과일을 생산하는 농민들은 명절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사실이기도 합니다. 특히 배는 제수용 과일로 치부되어 갈수록 평상시에 소비자들이 잘 먹지 않는 과일이기도 합니다. 크기는 크고 껍질을 까야한다는 2중의 불편함(?)을 소비자들에게 안기기 때문이죠. 


반대로 명절 직후에 수확해서 단기간에 판매해야 하는 작물을 재배하는 농가의 입장에서는 명절이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명절 직후는 판매도 부진하고 가격적인 우위를 점할 수도 없는 시장 상황 때문입니다. 당장 팔지 않으면 안 되는 1차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민 그리고 그것을 시장에서 소비시켜야 하는 유통인들이 이 시기를 관통하는 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입니다. 


많은 농민이 '재배'의 방법과 '수확'시기를 '설'과 '추석'에 맞추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 지점이 제가 명절이 농산물 시장을 뒤틀어 버리는 주범이라고 주장하는 이유입니다. 아직까지 크고 예뻐야 좋은 가격을 받고 소비자들도 좋아하는 시장 분위기가 만연해 있기 때문에 농민들은 크고 예쁘게 과일을 만들기 위한 재배 방식에 포커싱이 되어있고, 제철이 아닌 명절에 맞춰 돌아가는 유통 시스템은 '조기 수확'이라는 문제를 야기시켜 제대로 맛이 들지 않은 과일이 시중에 유통되는 문제를 발생시키기도 합니다.


제철 과일의 의미


레드향


저희 사무실은 코워킹 스페이스에 입주해있는데요, 옆 회사 직원이 설 연휴 직후에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설 때 선물을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XXX마트에 가서 천혜향을 샀는데 너무 맛이 없었다고요. 아울러 설 때 선물로 들어와서 먹은 레드향은 밍밍해서 도저히 못 먹겠다고 말이죠. 제가 판매하는 과일 맛과 너무 비교된다며... (광고 아닙니다. 브런치 글은 제가 판매의 목적으로 쓰는 글이 아닙니다.) 이건 XXX마트에서 파는 과일의 퀄리티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만은 아닐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수확 시기'와 '판매 시기'의 문제


올 설에 여러분들은 어떤 과일을 드셨나요? 설 때 많이 만나보셨을 만감류(레드향, 한라봉, 천혜향)로 이야기를 좁혀보겠습니다. 


단언컨대

설이 없다면

여러분들은 지금보다 더 맛있는

레드향, 한라봉, 천혜향을 드실 수 있습니다.


레드향 / 한라봉 / 천혜향


레드향, 한라봉, 천혜향 등의 과일을 만감류라고 합니다. 늦을 만(晩) 자를 써서요. 보통 겨울철 가장 흔하게 드실 수 있는 감귤(온주밀감) 보다 늦게 생산되는 감귤류를 통칭해서 부릅니다. 나무에서 다 익도록 두었다가 늦게 수확하는 감귤 정도로 사전적 의미를 풀어볼 수 있습니다. 


그럼 레드향, 한라봉, 천혜향의 최적 수확 시기는 언제일까요? 이 세 과일의 제철은 과연 언제인지 알고 계시나요? 한라봉, 천혜향, 레드향의 제철에 대한 자료를 보면 굉장히 뭉뚱그려 표기해놓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정답은 없습니다. 만감류는 음력으로 계산하는 ‘설’이 언제 있느냐에 따라서 수확 시기를 설 대목에 맞춰서 재배를 조절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명절 전에 판매를 하는 것과 명절 후에 판매를 하는 것은 가격적인 면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농민과 유통업체에서는 명절 전에 판매를 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겁니다. 


과일마다 특성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레드향은 산미가 빨리 빠지는 특성이 있는 반면에 한라봉은 산미가 아주 천천히 빠지는 특성이 있습니다.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는 성질입니다. 레드향은 보통 12월 말에서 1월 사이에 수확해서 유통되는 것이 정상입니다. 올해 같은 경우 레드향이 설 명절에 풀리는 것은 그리 좋은 그림은 아니었습니다. 반면 한라봉의 경우 시장에 너무 빨리 풀리면 신맛 때문에 소비자들에게 외면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재배와 저장 기술의 발전으로 설 때 레드향을 만나보는 것이 가능하기도 했지만, 시중에 풀린 모든 레드향이 최적의 당산비를 내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올 설 명절 기간 중에 드셨던 레드향이 최상의 맛이었다고 느끼신 분들 계시면 손 들어주세요. 올해는 1월 중순 이전에 드셨어야 제일 맛있게 드셨을 과일이 레드향입니다. 제가 판단하는 맛있는 레드향을 먹을 수 있는 기간은 일 년에 2주 길어야 3주입니다. 올 설은 맛있는 레드향을 먹기에는 너무 늦은 시기였습니다.


레드향


맛있는 과일을 먹고 싶다


설에 드셨던 만감류가 맛이 없다고 느끼셨다면 가장 큰 이유는 제철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조기 수확을 했거나 수확한 지 너무 오래돼서 고유의 맛과 향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러한 과일을 맛 본 소비자들은 해당 과일에 대한 이미지가 안 좋게 자리 잡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후 시장 전체의 소비량을 보았을 때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때가 많습니다. 농산물 시장에서는 비단 명절 때가 아니더라도 반복되는 패턴입니다. 그러나 그 중심에는 명절이라는 것이 크게 한몫하고 있음에는 분명합니다.


다양한 품종의 만감류들이 단기간에 쏟아져 나오는 시기인 설은 소비자도 혼란스럽고 생산자도 버겁습니다. 한라봉, 천혜향, 레드향을 모두 재배하는 농가를 예로 들어볼게요. 보름에서 3주 정도의 시차를 두고 정상적인 수확을 해서 시장에 나오면 소비자는 가장 맛있을 때 3가지 과일을 다 맛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3가지 과일이 한 시기에 쏟아져 나오면 소비자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감류의 가격이 감귤처럼 싸지 않기 때문에 3가지 과일을 동시에 구매하기에는 경제적인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그러나 설이 모든 만감류의 맛이 제일 좋을 때는 아닐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제철이 아닌 과일들이 명절 특수를 보기 위해 시장에 같이 흘러나옵니다. 반복해서 말씀드리지만 생산 농민의 입장에서 설 이전에 파는 것과 설 이후에 파는 것 사이의 시장 가격의 격차가 크다 보니 무리(조기 수확)를 해서라도 설 이전에 다 소비를 하려고 안간힘을 쓰게 되어있습니다. 


자멸(自滅)


한라봉


설전에 모든 과일을 다 판매하는 것과 설과 관계없이 그 과일이 제일 맛있는 제철에 과일을 소비하는 것, 과연 어느 쪽이 과일 소비량에 더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지에 대해서는 확답드리기 어려울 것입니다. 아마도 후자 쪽으로 모험을 하기에는 너무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에 생산자와 유통업체에서는 전통적으로 전자의 방식으로 과일을 소비시키는 관행을 깨고 있지 못한 것은 아닐까요?


그러나 만감류들이 명절 특수를 피한다면 지금보다 가격은 더 내려갈 수 있을 것이고, 우리는 다양한 맛있는 과일을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길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선택의 기회조차 없는 상황인 것이죠. 냉정하게 생각하면 농민과 유통업체 스스로 자멸하는 구덩이를 더 깊게 파고 있는 꼴입니다.


지금이 딱 그런 상황입니다.


설 때 유통업체에서 끌어안은 물량도 다 소비하는 못한 데가 산지에서도 물량이 또 올라와야 되는 이중고가 겹치다 보니 뒤늦게 시장에 출하는 만감류의 가격이 폭락하는 사태가 발생을 하게 되는 것이죠. 제때에 수확하지 않는 과일들의 맛은 좋을 리가 없습니다. 설 전에 이미 소비자들에게 외면받은 현실에서 남은 것은 가격 폭락과 세일 뿐입니다.


결국 우리는 그 과일이 제일 맛있을 때 먹는 것이 아니고 유통 시장의 편의에 맞게 과일을 소비하고 있는 것이 냉정한 현실입니다. 선택권 조차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힘들게 농사지은 농부의 과일이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고 시장에 유통되는 것. 소비자는 맛있는 과일을 제 철에 먹을 수 있는 것. 제가 말하고자하는 '상식'인데 어려운 일일까요?


나는 이 땅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농산물의 외모지상주의를 깨뜨리기 위해, 아울러 농부들의 수고스러움에 대한 ‘가치’를 ‘같이’할 수 있도록 농부의 마음으로 농산물을 판매하려고 한다. ‘농사 안 짓는 농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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