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20
나는 ‘공씨아저씨네’라는 온라인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과일 장수다. 이 땅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농산물의 외모지상주의를 깨뜨리기 위해, '크기'와 '모양' 중심이 아닌 과일 본연의 '맛'과 '향' 중심의 조금 다른 과일 유통을 시작한 지 11년 차에 접어든다. 먼 훗날 의미 있는 자료로 남길 바라는 마음으로 SNS를 통해서 일기처럼 썼던 과일과 농업 그리고 농산물 유통에 관한 이야기를 이곳에 아카이빙하기로 했다. 다소 거칠고 투박한 글이지만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생각했다. 과거의 이야기들은 이미 썼던 내용이기에 실제로 글을 썼던 날짜를 별도로 기록한다. (글의 발행일과 시간차가 발생할 수 있음)
혹시 나의 인내심은 어디까지인지 시험해보신 적 있으세요?
저는 지난 일 년 동안 이 무모한 시험을 진행했습니다. 올해 6월까지는 절대 이 복숭아 병조림 뚜껑을 열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버텼습니다.
저의 두 아들 녀석들이 '아빠 복숭아 병조림 언제 따요?'라고 물어볼 때마다 잠깐 흔들릴 뻔했지만 올해 6월에 딸 거야라고 강건하게 대답했습니다. 오늘 낮에 점심으로 비빔면을 먹고 가족들을 소집해서 중대 발표를 했습니다. '오늘 복숭아 병조림을 개봉하겠습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환호성입니다.
뚜껑을 열고 배분을 했습니다. 눈치도 없게 이 병은 13조각이 들어있는 병이네요. 3조각씩 4그릇에 배분하고 1개가 남았습니다. 1개가 남을 때는 가위바위보가 국룰이죠. 저희 막내 녀석이 마지막 한 조각을 가져가는 영광을 차지했습니다.
고백컨데 작년에 복숭아를 판매하지 못하게 되면서 생계를 위해 판매를 시작하게 된 경북 영덕의 복숭아 병조림입니다. 그런데 반응이 너무 좋아서 올해도 3,000병만(1,000박스) 만들어 달라고 오다를 넣어놓았습니다.
여러분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올해 코로나로 외국인 노동자들의 국내 입국이 많이 제한되면서 농촌의 인건비가 너무 많이 올랐습니다. 복숭아 병조림은 100% 사람이 수작업으로 만드는 거라 산지에서 인건비 부담을 좀 많이 느끼고 계시길래 인건비 상승으로 인상 원가 상승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니 괜찮으니 그냥 만들어 다라고 거듭 확인 오다 드렸습니다.
세상 모든 가격이 올라도 농산물 가격은 오르지 않는다고 농민들은 이야기합니다. 저는 생산비가 오르면 공급가도 오르고 소비자 가격도 오르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물가 핑계 대고 농산물 가격 후려치는 정부의 태도에 늘 화가 납니다. 그래서 시장의 저항이 어떠하든 저는 산지 상황에 따라 농민들에게 가격을 조금씩이라도 인상해드리는 방식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농민만 늘 참고 손해 볼 수는 없잖아요. 물론 이것은 소비자 가격에도 당연히 반영을 합니다.
청도의 복숭아도 지난 4년간 가격 동결했었는데요. 올해는 우체국 택배 계약도 못하게 되어 택배비 상승에 인건비 상승 반영하여 소폭 인상했습니다. 가격 따위는 눈에도 안 들어오셨는지도 모르겠지만 소비자 가격 천 원 인상하는 것도 저희는 무척 힘들고 조심스럽답니다.
복숭아 병조림은 올해도 아마 추석 이후에 판매하게 될 거예요. 병조림에 들어갈 복숭아들 무사히 잘 자라게 마음 모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