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감동의 도가니탕

2021.07.02

by 공씨아저씨
나는 ‘공씨아저씨네’라는 온라인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과일 장수다. 이 땅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농산물의 외모지상주의를 깨뜨리기 위해, '크기'와 '모양' 중심이 아닌 과일 본연의 '맛'과 '향' 중심의 조금 다른 과일 유통을 시작한 지 11년 차에 접어든다. 먼 훗날 의미 있는 자료로 남길 바라는 마음으로 SNS를 통해서 일기처럼 썼던 과일과 농업 그리고 농산물 유통에 관한 이야기를 이곳에 아카이빙하기로 했다. 다소 거칠고 투박한 글이지만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생각했다. 과거의 이야기들은 이미 썼던 내용이기에 실제로 글을 썼던 날짜를 별도로 기록한다. (글의 발행일과 시간차가 발생할 수 있음)




203109505_10219233073086640_3094007300713449906_n.jpg

과거 생협과는 또 다른 형태의 생산자-판매자-소비자 연대를 만들어 보고 싶은 게 사실 제가 이 일을 하면서 도착하고 싶은 종착역입니다.


과거 운동의 형태는 아니지만 운동적인 요소를 소비자들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녹여내어 과일을 팔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시선에서 보면 굉장히 불편하고 납득할 수 없는 방식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회원님들과 함께 농가도 방문해서 농민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현장 견학 프로그램도 예전에는 꽤 여러 번 만들기도 했습니다.


소비자는 소비자일 뿐 그런 건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었고 저 역시 나의 망상이었구나 싶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10년쯤 지나고 나니 헛된 망상만은 아니겠구나 싶은 느낌을 요즘은 좀 자주 받는 편입니다. 2021년 현재 시점에서의 성적표에 스스로 점수를 매긴다면 절반의 성공 정도이라고 자평해봅니다.


제가 얼마 전에 잠깐 말씀드린 적 있는데 저희 회원님들 중에 처음에 과일 소매업 하시는 줄 제가 오해했던 그분. 거제에 계신 부모님 댁으로 늘 과일을 보내시는데요. 이번에 복숭아 소식을 들으시고 과일 계속 드시던 회원님의 어머님이 공씨아저씨네 주소를 계속 물으시더래요. 너무 강경하게 여쭤보셔서 알려드렸더니 어제 거제에서 병어가 한 박스 올라왔습니다. 저 먹고 힘내라고 보내주신 것 같습니다. 집에 와서 병어를 손질하는데 어찌나 죄송하고 감사하던지... 사실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다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환불에 대한 정확한 팩트를 말씀드려야 했기에 이야기를 꺼낸 것이었는데 갑자기 신파가 되었습니다.


밤에 이런 글이 1:1 문의에 올라왔습니다. 제가 이 일하면서 이런 내용이 1:1 문의에 올라오는 날도 있네요. 보통 C/S 건드리라 1:1 문의에 글이 올라오면 늘 긴장을 하는데요. 글을 읽는 내내 얼마나 감사하던지요. 그냥 빈말로 건네신 게 아니라는 그 마음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농활대 조직해서 함께 가자고 이야기해주시는 분들이 정말 많으십니다.


그 마음 백번 천 번 감사합니다. 제가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농활대를 조직하지는 못할 겁니다. 저라고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고 요 며칠 같은 고민을 쭈욱 했었으나 현실적으로 좀 어렵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자면 또 반나절은 흘러갈 듯하여 세세하게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대신 혹시라도 회원님들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할 때는 제가 주저하지 않고 도움의 손길을 요청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과일 장수하면서 이런 행복감을 누리는 것은 아마 대한민국에 저 하나밖에 없을 겁니다.


고맙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사람이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