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03
나는 ‘공씨아저씨네’라는 온라인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과일 장수다. 이 땅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농산물의 외모지상주의를 깨뜨리기 위해, '크기'와 '모양' 중심이 아닌 과일 본연의 '맛'과 '향' 중심의 조금 다른 과일 유통을 시작한 지 11년 차에 접어든다. 먼 훗날 의미 있는 자료로 남길 바라는 마음으로 SNS를 통해서 일기처럼 썼던 과일과 농업 그리고 농산물 유통에 관한 이야기를 이곳에 아카이빙하기로 했다. 다소 거칠고 투박한 글이지만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생각했다. 과거의 이야기들은 이미 썼던 내용이기에 실제로 글을 썼던 날짜를 별도로 기록한다. (글의 발행일과 시간차가 발생할 수 있음)
오전에 가평 포토밭에 다녀왔다.
운악산 중턱에 있는 포도밭. 2륜 구동 차로는 올라갈 수 없는 트럭 한 대 딱 다닐 수 있는 좁고 울퉁불퉁한 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야 한다. 군사지역 인근이라 가끔 인근 부대 사격훈련이라도 하면 통제돼서 갈 수도 없는 곳이다.
하우스 비닐 절반이 날아가 하늘이 훤히 보이는 상태로 보낸 지 벌써 6년째. 형태는 비가림으로 되어있는데 노지재배와 다름없다. 보수하려면 천오백 정도가 들어가는데 이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참 해결되지 않는 문제인데 투자를 한다고 소득이 크게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농가에 자본이 없다.
그러다 보니 수확량은 해마다 줄고 있다. 팔아도 고민 안 팔아도 고민인 상황으로 6년째 계속 끌고 오고 있다. 경제의 논리대로라면 하루빨리 정리해야 할 농가이지만 사람일이라는 게 어찌 그런가? 팔아도 돈도 안 되는 굉장히 귀찮고 번거로운 일을 나는 올해도 이어간다.
솔직하게 말해서 '이제 포도 농사 그만 지어야겠어요'라는 말이 농민의 입에서 먼저 나오기를 작년부터 내심 기다렸다. 그래야 나도 부담 없이 다른 농가 찾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오히려 다른 일 해서 돈 벌어가지고 하우스 보수하고 포도 품종 갱신하고 싶다는 농부의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지만 이분 농사 인생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해드리기 위해 마지막까지 옆을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나는 올해도 이곳에 다녀왔다. 오늘 우리는 서로 미안하다는 말만 계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