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27
나는 ‘공씨아저씨네’라는 온라인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과일 장수다. 이 땅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농산물의 외모지상주의를 깨뜨리기 위해, '크기'와 '모양' 중심이 아닌 과일 본연의 '맛'과 '향' 중심의 조금 다른 과일 유통을 시작한 지 11년 차에 접어든다. 먼 훗날 의미 있는 자료로 남길 바라는 마음으로 SNS를 통해서 일기처럼 썼던 과일과 농업 그리고 농산물 유통에 관한 이야기를 이곳에 아카이빙하기로 했다. 다소 거칠고 투박한 글이지만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생각했다. 과거의 이야기들은 이미 썼던 내용이기에 실제로 글을 썼던 날짜를 별도로 기록한다. (글의 발행일과 시간차가 발생할 수 있음)
집에 단감이 한 박스 도착했습니다. 경산 김종대 농민이 보내주셨네요. 농촌에 가면 집에 감나무 한 두 그루씩은 흔히 있었는데 요즘은 감이 시장에서 갈수록 인기가 없어집니다. 어르신들의 과일이 되어가고 있어요.
우리나라에 단감이 들어온 것은 1910년 일제 강점기였습니다. 처음 우리나라에 단감이 들어올 때 경남지역에는 부유(富有) 품종이 자리를 잡았고, 전남 쪽에는 차랑(次郞) 품종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기후적인 원인입니다. 제가 단감을 판매했던 몇 해 전 자료 조사를 할 때만 해도 우리나라 단감 재배면적은 만생종 ‘부유’가 82.5%, ‘차랑’이 9.5%, 조생종 ‘서촌조생’이 3.5%, 기타 4.5%로 부유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부유 품종이 처음 나왔을 때 향후 100년간 부유보다 더 나은 품종의 단감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할 정도로 부유의 기세는 대단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100년이 지난 지금은 단감 전체의 소비량이 줄고 있고 재배 면적 또한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나마 신품종 태추(太秋)가 소비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으며 단감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듯합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과일 품종들이 점점 사라지고 새로운 품종들이 이를 대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사과는 국광이었지만 그 국광이 지금은 모두 후지(부사)로 바뀌었습니다. 최근 들어 홍옥도 다시 각광받고 있지만 저장성이 나쁘고 신맛보다는 단맛을 선호하는 쪽으로 변화하는 소비자의 입맛은 홍옥을 시장에서 찾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과일 시장이 유행을 따라가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겁니다. 뭐 하나가 반응이 좋다 싶으면 너도나도 달려듭니다. 소비자뿐 아니라 농민들도 마찬가지죠. 동일한 재배면적에 동일한 노동력을 투입했을 때 더 많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작물이 당연히 더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을 겁니다. 세상은 점점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로 진화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오히려 세상은 더 획일화되어가고 있는 듯도 싶습니다.
소비자의 트렌드에 맞춰 생산과 유통이 변화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다분히 의도적인 유행을 만들고 과일 시장 전체를 고려하지 않는 일부 농업인들의 비정상적인 행태는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
최근 몇 년간의 과일 트렌드를 보면 몇 개의 품종이 시장을 점령하는 듯한 분위기를 느낍니다. 마치 우리나라에 포도는 샤인 머스캣밖에 없는 것처럼 보이죠. 샤인 머스캣은 원래 씨가 없는 포도라고 알고 계신 분들도 많을 것이고. 왜 한입에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크기로 자라고 마치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 같은 외형을 보이는지에 대해서는 모르시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시장에서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찾아내서 판매하는 것이 유통의 본질이라고 보았을 때 저는 분명 능력 있는 유통인과 사업가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조금 더 건강한 과일 시장을 지켜내기 위해서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있는 과일장수로 남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