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02
나는 ‘공씨아저씨네’라는 온라인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과일 장수다. 이 땅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농산물의 외모지상주의를 깨뜨리기 위해, '크기'와 '모양' 중심이 아닌 과일 본연의 '맛'과 '향' 중심의 조금 다른 과일 유통을 시작한 지 11년 차에 접어든다. 먼 훗날 의미 있는 자료로 남길 바라는 마음으로 SNS를 통해서 일기처럼 썼던 과일과 농업 그리고 농산물 유통에 관한 이야기를 이곳에 아카이빙하기로 했다. 다소 거칠고 투박한 글이지만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생각했다. 과거의 이야기들은 이미 썼던 내용이기에 실제로 글을 썼던 날짜를 별도로 기록한다. (글의 발행일과 시간차가 발생할 수 있음)
저에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에 하나가 새로운 농가를 만나는 일입니다. 새로운 인연을 맺는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고 한번 맺은 인연은 뒤통수를 맞기 전까지는 절대 먼저 놓지 않는 제 성격 탓일 겁니다. 장사하기 참 힘든 성격입니다. 이런 성격으로 어떻게 10년 넘게 장사를 하고 있는지 저도 가끔 신기할 때가 있습니다.
최근 2년간 공씨아저씨네와 협력해오던 농민들 중에 건강상의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이별을 한 농가들이 생겼습니다. 사실 언제든지 생길 수 있는 일이긴 하지만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라 아직까지 쉽사리 받아들여지지가 않습니다.
새로운 감귤 농가를 찾기 위한 자료 조사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유기농 인증이 있는 감귤 중에서 찾을 예정이고 차선책으로 무농약 감귤 까지라는 대 전제를 세워놓은 터라 제주도내 친환경 인증(무농약 인증, 유기농 인증) 감귤 농가를 먼저 리스트업 해보았습니다. 친환경 인증 감귤 농가 206곳. 이중 유기 인증 82곳, 무농약 인증 124곳. 참 적은 숫자입니다. 만감류는 전체 품목을 통틀어 무농약과 유기농 합쳐 32곳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 정도 숫자면 없는 것과 다름없는 숫자입니다. 새삼 친환경 인증 농가들이 소중함을 느낍니다.
기존에 온라인 거래처가 있는 농가들은 컨택하지 않는 것이 저의 제1원칙입니다. 코로나 이후 온라인 시장이 급속도로 확장되는 상황으로 변모하다 보니 한번 필터링을 하고 나니 남아있는 농가의 수는 더 얼마 없습니다. 이 원칙을 앞으로 계속 지킬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지는 요즘입니다. 어느 정도의 선에서 적절한 타협이 필요해 보이기도 합니다.
농민과 유통인의 상도와 직업윤리를 목숨처럼 중요하게 여기다 보니 새로운 농가 하나 발굴하는 것이 정말 너무너무 어렵습니다. 제 도덕적 기준이 너무 높다고 주변에서 많이들 이야기하시지만 저는 잘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보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더 중요한 사람입니다. 좋은 사람들과 호흡을 맞추며 함께 성장하는 것이 이 일을 하면서 세운 오래된 원칙이고 이 일을 하는 의미와 보람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대한민국 과일 가게 중에서 파는 과일 종류가 가장 적은 과일가게가 저희가 아닐까 싶습니다. 파는 기간보다 안 파는 기간이 더 많은 과게인지라 가끔은 과일가게라고 부르기도 부끄럽지만 그래도 제 소신을 버리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올해의 감귤은 판매를 할 수도 있고 판매를 못할 수도 있습니다. 만감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저 역시 생계에 지장이 있기 때문에 죽을힘을 다해 최대한 열심히 찾아보긴 하겠으나 장담은 못 드리겠습니다. 조만간 기약 없는 일정으로 제주에 내려갑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세 다리만 걸치면 다 아는 사람이라는 말이 떠올라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글을 남깁니다. 제주도에서 유기농으로(무농약도 괜찮고 방치된 감귤 밭도 좋습니다) 감귤 농사를 짓는 농가 중에 저희랑 잘 맞을 것 같아서 소개해주고 싶은 농가가 있으시다면 댓글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