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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씨아저씨 Feb 11. 2022

외로운 잿빛 신사

2022. 2.11

오늘도 탐조인 아빠의 삶은 분주합니다. 


주중에 다녀온 답사로 왜가리, 쇠백로, 중대백로가 성북천에 서식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오늘은 드디어 탐조인을 모시고 왔습니다. 오늘은 작년부터 사진 촬영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그래서 별명이 렌즈(lens)입니다) 첫째 녀석도 함께 했습니다. 


두 녀석이 도감 보면서 새에 대해 서로 설명하면 무슨 새인지 알아맞히는 퀴즈를 하더니 렌즈도 새에 대한 관심이 커진 듯합니다. 렌즈가 앞으로 본인도 탐조인이라고 불러달라고 하는데... 오늘은 마음껏 사진 찍으라고 제 DSLR 카메라를 건넸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렌즈가 촬영한 사진으로만 탐조 다이어리를 쓸까 합니다. 


제발 오늘은 만나야 할 텐데요. 활짝 웃는 탐조인의 얼굴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길 바랍니다. 


그래도 출발이 좋습니다. 산책 후 10분 만에 쇠백로와 중대백로를 만났습니다. 쇠백로는 굉장히 슬림하고 크기가 좀 작은 편입니다. 반면에 중대백로는 크기가 제법 큽니다. 둘이 같이 있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사이가 꽤 좋은 녀석들인 것 같습니다. 


중대백로 © lens
쇠백로 © lens
쇠백로와 중대백로 © lens


조금 더 내려오니 흰뺨검둥오리도 있네요. 탐조인의 말씀에 따르면 청둥오리와 달리 흰뺨검둥오리는 텃새라고 합니다. 


흰뺨검둥오리 © lens


그런데 탐조인의 표정이 그리 밝지 못합니다. 아빠 둥절? 그런데 이내 알게 되었죠. 탐조인께서 진짜 보고 싶은 것은 왜가리였다는 것을요. 


아빠를 뒤로하고 탐조인은 왜가리를 찾아 계속 걸어갑니다. 그런데 지난번에 제가 왜가리를 봤던 곳을 한참 지나쳤는데도 왜가리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어느새 탐조인이 제 시야에서 사라졌습니다. 오직 왜가리를 찾겠다는 신념 하나로 끝없이 앞으로 전진합니다. 왜가리를 만나기 위해서는 걸어서 하늘까지도 가실 것 같은 결의에 찬 모습입니다.


성북구를 넘어 동대문구까지 왔습니다. 저 멀리 다시 이쪽으로 되돌아오는 탐조인의 모습을 봅니다. 얼굴 표정을 보니 왜가리는 만나지 못한 모양입니다. 처음 출발할 때 우리 혹시라도 왜가리를 만나지 못하더라도 실망하지 않기로 약속을 하고 출발을 했으나 사람 마음이 어디 그런가요? 실망한 모습이 가득합니다. 


오늘따라 나타나라는 왜가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뒷산 직박구리만큼 흔한 새인 양 쇠백로만 눈에 띄입니다. 다리가 너무 아파 잠시 앉아서 쉬며 쇠백로만 하염없이 보고 있습니다.  


쇠백로 © lens




그런데 바로 이때 영화 같은 장면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저 멀리서 새 한 마리가 날아옵니다. 네 그렇습니다.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왜가리입니다. 그리워하면 언젠간 만나게 된다는 아빠의 아재 개그가 현실이 되었습니다. 날아오는 자태도 어쩜 이리도 멋있을까요? 탐조인과 렌즈는 하이파이브를 하며 기쁨을 감추지 않습니다. 


왜가리 © lens



자 그럼 이제부터 왜가리의 아름다운 자태를 감상하시겠습니다. 


왜가리 © lens
왜가리 © lens



왜가리가 노는 냇가에 갑자기 등장한 귀염둥이 논병아리. 논병아리도 겨울철새인데 일부는 텃새가 되었다고 탐조인이 귀띔을 해주었습니다. 논병아리는 정말 작고 귀여운데 움직임은 엄청 날렵합니다. 얼핏 새끼오리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논병아리 © lens



왜가리 © lens
왜가리 © lens
왜가리 © lens



왜가리만 30분 정도 본듯합니다. 왜가리를 만나고 기분이 좋아진 탐조인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쇠백로와 중대백로도 멋지고 아름다운데 왜 특별히 왜가리를 좋아하냐고 말이죠. 탐조인은 이런 대답을 합니다. 


물가에 혼자 서서 움직이지 않고 눈으로 살피면서 먹이를 찾는 습성 때문에 왜가리는 '외로운 잿빛 신사'라는 별명을 가졌는데 점잖은 성격 그리고 잿빛의 빛깔이 너무 멋지다고 합니다. 왜가리를 본 30분 동안 정말로 왜가리는 크게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탐조인의 말을 듣고 나니 왜가리가 더 멋있어 보이더군요.


사진 촬영에 몰두한 렌즈와 여유 있게 관찰 중인 탐조인


새의 성격과 습성까지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는 탐조인에게 아빠는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멋지다 우리 아들. 그리고 특별히 오늘 멋진 사진을 남겨준 첫째 lens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앗! 그리고 탐조인과 렌즈가 제가 이곳에 새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ㅎㅎ


탐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며칠 전 주문한 쌍안경 스마트폰 어댑터가 도착해있습니다. 이제 조금 더 편안한 촬영이 될 수 있겠습니다. 오늘 촬영한 사진을 보면서 저녁 내내 새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탐조인과 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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