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8.22
會者定離去者必返
만남에는 헤어짐이 정해져 있고 떠남이 있으면 반드시 돌아옴이 있다고 하지만 언제 돌아온다는 약속도 없는 갑작스러운 헤어짐이 그저 야속하기만 합니다.
많은 일들이 있었던 뜨거웠던 여름도 서서히 저물어 갑니다.
여름 과일들은 수확을 모두 마무리했습니다. 속내를 다 말씀드릴 수 없지만 우여곡절 끝에 3년 만에 다시 시작한 복숭아가 내내 마음을 편치 않게 했던 여름이기도 했습니다.
올해는 지독한 가뭄과 폭염 그리고 8월의 폭우로 이어지는 고약한 날씨로 여름 과일들과 밭작물들이 몹시 힘든 해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올여름은 전국을 강타한 탄저병 때문에 돌아버릴 지경이었습니다. 오해도 많이 받고 욕도 많이 먹었습니다. 여러분들께 다 말씀드리지 못한 고민과 고통으로 가득한 여름이었습니다.
내년 걱정을 하며 달력을 보니 나니 추석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습니다. 올해는 조금 이른 추석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명절이 과일을 망치고 있다'는 저의 브런치 글은 수확의 기준이 제철과 적기가 아니고 명절이라는 대목에 맞춰져 있는 현재의 유통 시스템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 글입니다. 결국 피해자는 소비자가 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아주 심플한 문제라고 생각을 합니다. 원래 추석이 지나고 수확해야 제철인 과일들이라면 추석이 지나고 수확을 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간단한 논리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자본의 흐름이라는 것이 꼭 자연스러운 방향으로만 흘러가지는 않으니까요.
제 맛이 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추석 대목을 위해 수확을 서두르다 보니 농업의 현장에서는 부자연스러운 행위들이 수반되기도 합니다. 소비자는 맛없는 과일을 먹어야 하는 고통을 감수해야 하기도 하고요.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이것이 당연하지 않은 시장이다 보니 또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가급적 말을 아끼자는 다짐은 오늘도 공염불이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 굳어진 시장의 흐름에 정면으로 저항한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꼭 추석에 맞춰서 과일을 먹어야 하나? 에서 시작된 저의 의문은 명절과 관계없이 과일이 유통되는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오랜 시간 노력해오고 있지만 바깥세상은 아직 그대로인 듯합니다.
그러나 너무나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이기도 합니다.
농촌 사회학자 정은정 님이 한겨레 21(제1424호)에서 '생명이고 상품이면서 생존, 고기는 복잡하다'는 글에서 "결국 육식과 채식의 문제를 옳고 그름의 문제로 가두면 기르고 잡고 먹는 이들은 ‘그른 사람’이 돼버리기 때문이다."라고 이야기한 한 대목은 뼈를 때리는 명문이면서도 저희 문제에도 똑같이 적용이 됩니다.
명절 대목을 위한 재배와 유통의 문제를 옳고 그름의 잣대로 평가하게 되면 결국 (올해처럼 추석이 빠른 해에는) 명절 전에 조기 수확하고 유통하는 사람들을 그름의 영역으로 집어넣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분들도 생계를 걸고 밥벌이를 하는 일이기에 이 이야기는 이분법적 논리로 결론 내리기에는 너무나 복잡합니다.
올해는 아무것도 수확하지 않는 과일가게로 조용히 추석을 보내게 생겼습니다. 이 모습이 어색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공씨아저씨네에서는 이번 추석에 먹을 수 있는 과일이 뭔가요?라는 질문에 아무것도 없습니다라는 답변을 하면서 왜 아무것도 없는지에 대한 해명을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었으면 합니다.
글을 쓰다 보니 결국 올 추석은 잠시 쉬어갈 것 같다는 이야기에 대한 구차한 변명이 되어버린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합니다. 저희 사과 협력 농가인 경북 영주 이재식 농민의 아리수는 올해는 추석 지나서 수확을 하려고 합니다.
이 일을 하며 지키고 싶은 3가지 다짐을 사이트 배너에 새겨놓고 잊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그 첫 번째는 다음과 같습니다.
맛있는 과일의 비법은 없습니다.
잘 익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수확하는
상식을 지킬 뿐입니다.
추석에 먹는 사과보다는 제 철에 먹는 사과가 상식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