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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씨아저씨 Oct 19. 2022

아빠라는 직업

2022.10.19

A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올해부터 비인가 대안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아무한테도 이야기한 적이 없는데 녀석이 중학교 3학년 때 학교에서 친구들 문제로 좀 힘듦이 있었습니다. 왕따라고 해야 할지 은따라고 해야 할지... 주동자가 꼬맹이 시절부터 나와도 같이 야구했던 한 동네 살던 녀석이어서 더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렇게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이 상태로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면 동네에서 갈 수 있는 학교가 뻔하기에 A가 무척 힘들어할 것 같아서 조금 다른 방식의 학교에 가면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에 두고 있던 학교가 하나 있었는데 A한테 슬쩍 물어봤습니다. 


당시로서는 별로 탐탁지 않아했습니다. 어떤 것도 받아드릴 마음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그때야 본인 인생 최대의 암흑기였을 때니까요. 본인이 원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저도 보낼 생각이 없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대안학교는 등록금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저로서도 나름 큰 결심을 해야 했습니다. 입학설명회나 한번 들어보라고 했더니 그러겠다고 하더군요. 입학설명회를 듣고 학교에 가서 면담도 하고 학교에 조금 관심이 생겼는지 이것저것 찾아보더니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고 해서 입학을 지원했고 합격을 했습니다. 


무엇이든 학생들이 주도로 이뤄나가는 학교인지라 저희 집에서 가장 바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일반 고등학생들처럼 수능 준비를 위한 공부를 하지는 않지만 매일매일 나름 알찬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올봄에 그때 이 학교 제안해주시고 학교 보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그러더군요. 


이 학교는 팀을 짜서 그 팀으로 졸업을 할 때까지 한 가지 주제로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A가 속한 팀이 정한 주제는 청각장애인들의 삶에 도움을 주는 프로젝트입니다. 왜 청각장애인이냐고 물었더니 예전에 수업 중에 학생들의 과도한 이어폰 사용으로 청력을 잃어서 청각장애인이 되는 케이스를 접했는데 그때 우리도 누구나 청각장애인이 될 수도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관심을 가졌다고 합니다. 


본인이 힘든 시기를 겪어서인지 사회적 약자, 소수자 문제에 대해서 관심이 많습니다. 


어제는 광진구 소재 복지관에 청각장애인들의 행사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고 왔다고 합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수어가 너무나 아름다운 하나의 예술처럼 느껴졌다고 대답합니다. 


수어 서비스나 문자통역서비스의 현실 그리고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영화나 드라마의 자막 서비스 문제까지 알게 되었습니다. 청인(청각장애인들이 비 장애인들을 부를 때)들이 최신 영화 극장에서 볼 때 그들 농인(청각장애인들이 그들을 호칭할 때)들도 똑같은 시기에 영화를 볼 수 있는 문화생활을 간절히 원한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중간중간에 피티 자료 만들면서 한번 봐달라고 저한테 가져오기도 하는데요. 마지막 졸업할 때 어떤 결과물로 발전을 시킬지 저도 몹시 궁금합니다. 그것이 반드시 수익을 내는 비즈니스와 연결이 되지 않아도 충분히 가치 있는 시간을 보낼 거라 생각합니다. 이번 학기 끝나면 아빠한테도 그동안 진행했던 내용들 좀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저도 전혀 모르는 분야라 배워야 할게 많더라고요.


아이는 부모의 스승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저는 B덕분에 새에 대해 알게 되었고 A덕분에 청각장애인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었을 때 밥벌이를 어찌할지에 대한 문제가 남아있지만 그 어떤 것도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2-3년 정도를 온전히 쏟아붓는 것은 인생에 있어 훌륭한 경험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아이들이 성장하고 있습니다. 저도 성장을 해야 할 텐데 몸만 늙어가고 있는 거 같네요. 커피 한잔과 어제 온 시나노골드 한 알을 온전히 즐기며 평온한 아침을 맞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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