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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hn May 07. 2016

백석과 자야

“밤이 깊었네요. 여름의 문턱에 있는 이런 밤엔, 마음도 산책을 하듯 자꾸만 먼 길을 나섭니다. 요즘 제 마음은 줄곧 만주의 벌판에 서 있습니다.

그곳은 지금, 어떤 바람이 불까요? 그 때 만주로 떠나자는 당신을 따라 나섰더라면, 걷고 걷다가 둘이서 문득 같은 맘으로 손을 꼭 붙잡게 되는 곳에 집을 짓고 살았더라면… 우리의 삶은 달라졌을까요.
당신을, 그리 잃지 않아도 되었을까요.
선택하지 않았으니 짐작할 수 없는 삶을, 나는 몇 번이고 다시 삽니다.

그곳에 가지 않은 것이 당신을 위한 길인 줄로만 알았던 시절, 당신을 원하는 것보다 당신을 위하는 것이 사랑인 줄 알았던 그 시절…, 끝내 저는 아니 가고 그리하여 당신 생에 우물처럼 외로운 시간을 돌이킬 수 없이 파버린 것 한평생을 후회했습니다.
모든 후회는 너무 늦지요.
행복할 수 있는 기회를, 우리는 어찌 그리 쉽게 놓쳐버리는 걸까요. 이정표를 미처 보지 못해 들어섰어야 하는 길을 지나쳐버리듯 말이에요.

세월은 마지막에 다다라 뒤돌아보기 전까지는 내려설 수 없는 것인 것을… 하지만 이제 홀로 걷던 그 길도 끝이 보이는 듯합니다. 그리고 그 너머엔 당신과 내가 더 이상 서로를 외롭게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있겠지요. 어쩌면 우리가 이생에 함께 살지 못한 집이 지어져 있을지도 모르구요.

여행을 떠나듯 하루하루 조금씩 짐을 꾸립니다.
걱정말아요, 내 사랑. 이번 여행에선 돌아오지 않을 작정입니다. 우리가 살아낸 이번 생이 여행일 뿐, 돌아가야 할 우리 집은 저 너머에 있으니까요.”

백석에게, 당신의 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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