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노을 Feb 26. 2021

개, 같이 살자

두 번째 임보다. 강아지를 워낙 좋아하는 아내 덕에 안락사 위기에 처한 유기견을 임시 보호하게 됐다. 아주 어린 새끼 강아지를 키운다는 일이 보통 손이 많이 가는 게 아니지만, 아무런 생각이 없는 댕청미의 매력에 우리 부부는 다시 한번 손을 내밀었다.


사실 우리나라만큼 반려견에 관심이 많으면서도 반려견에 대한 바른 태도를 가지고 있지 못한 나라도 드물다. 반려동물이 이미 가족의 일부가 되어버린 선진국에 비하면 우리는 아직도 갈 길이 한참 멀다. 몇십 년 전만 하더라도 개는 가족 혹은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기 이전에 누군가의 부족한 영양을 채워주는 '식품'에 불과했으니.


어쨌든 우리는 한 생명을 구한다는 생각으로 유기견을 임시보호할 수 있는 단체에 연락을 하고 이제 태어난 지 갓 두 달된 작은 '시고르자브종'을 임보 하게 되었다. 이름은 '야드'. 생김새와 성향을 보아하니 진도와 리트리버의 혼합종인 것 같은데, 외모는 진돗개를 닮은듯 하면서도 작은 강아지가 가지고 있는 성향은 영락없는 리트리버였다. 어찌나 사람을 좋아하는지 한 발을 내딛을 때마다 발에 밟힐 정도로 꼭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


야드가 잠자믄 모습은 천사같다


뿐만 아니다. 녀석의 혀는 얼마나 낼름 거리는지 손이고 발이고 얼굴 근처에 보이기만 하면 일단 핥고 본다. 축축해지는 손의 촉감이 그리 유쾌하지는 않으나,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만 같은 눈망울로 살포시 쳐다보며 핥을 때면 이내 마음이 사르르 녹아진다.


자네, 뭘 보나?


첫 번째 임보를 했던 '짜요' 때는 우리도 초보라 너무 어리숙하게 다루었다. 간식을 주는 것도, 놀아주는 것도, 사람의 생각에 맞춰 좋다고 생각하면 그대로 해주었다. 생각지 못했던 시점에 아내의 몸이 급속도로 안 좋아져 더 이상 임시 보호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짜요는 해외 입양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초보 임보자로서 경험이 없었던 우리 부부 때문에 짜요는 훈련소에 들어가 몇 달을 보내야만 했다. 그리고 지금은 좋은 입양자를 만나 캐나다로 건너갔다. 오히려 어린 시절 잘해준다는 명목으로 일방적인 사랑을 퍼주었던 우리 가정보다 훨씬 더 좋은 곳에서 말 그대로 '개 호강'을 누리며 살고 있다. 지금도 가끔 올라오는 짜요의 사진을 보면, 부러워서 샘이 날 정도랄까?


첫 번째 강아지 임시보호에 대한 개인적인 실패 때문에 두 번째 임시보호를 하게 된 '야드'는 조금 더 신경을 써서 정성스레 기르고 있다. 좋아하는 것들을 그대로 다 하게 내버려 두지 않고, 절제된 행동 속에서 충분한 사랑을 주고 있다. 엄마와 떨어져 분리불안을 느끼는 작은 아이 곁을 쉽사리 떠나지 않으며 차근차근 주인이 없어도 괜찮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훈련을 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두 달 밖에 되지 않은 이 작은 강아지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야드'는 먼저 주인을 바라보는 자세와 눈빛이 너무도 사랑스럽다. 자기가 밥을 먹는 순간임을 알아챌 때는 두 말할 것도 없고, 평소에도 가만히 앉아 말똥말똥한 눈으로 나를 가만히 올려다본다. 어디로 움직이든 꼭 따라다니며 그곳에서도 내 살갗과 어떻게든 접촉을 하기 위해 찰싹 붙어 있다. 나는 이처럼 사랑해본 적이 있었는가? 개가 주인을 바라듯 나는 그렇게 끈질기게 사랑해 본 적이 있었던가? 괜시리 아내를 한 번 더 보게 된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사랑한다고 약속하고 한 이불을 덮기 시작했는데, 그때보다 사랑이 익숙함이 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았다. '야드' 덕분에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아내를 더 사랑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야드' 때문에 새롭게 발견한 점 중에 하나는,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잘 깨지 않는 아내가 야드의 낑낑거리는 작은 신음소리에 새벽 2시고, 3시고 상관없이 벌떡 벌떡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저녁잠이 많은 나와 달리 아내는 아침잠이 많다. 그래서 나름 아침형 인간으로 살아가는 나는 아내를 아침에 깨우는 일에 이골이 났다. 거의 포기상태에 이르렀다. 물론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고 삶의 체질이 다르기에 무조건 일찍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지난 몇 년의 시간을 통해 보았을 때 아내는 '참 깨우기 어렵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새벽에 배가 고파 낑낑대는 이 작은 댕댕이 덕분에 아내는 마치 로봇처럼 눈을 뜬다. 그리고는 자연스레 개 사료를 그릇에 담아 밥을 주고 간단히 놀아준다. 그리고는 다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한다. 몇 년간 내가 할 수 없었던 일을 '야드'는 단 며칠 만에 이뤄냈다. 아마도 작은 강아지를 너무도 예뻐하고 사랑하는 아내의 마음이 30년의 습관조차도 이겨내게 만드는 힘이 있었는가 보다.


어쨌든 오늘도 '야드'를 바라보며 두 가지를 생각한다. 그의 장점을 보고 '개 같이'(live like a dog) 살아야겠다는 것과 그와의 즐거움을 누리며 사는 '개, 같이'(with dog) 살아야겠다는 점이다.


아야!

근데 이렇게 쌔게 발가락을 깨무는 건 못 참지. 너 이리 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