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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노을 Feb 22. 2021

에어팟을 잃어버렸습니다

"뭐? 얼마라고? 이어폰이 20만 원이라고? 미쳤어?"


'에어팟'을 사겠다고 아내에게 공개 선언을 한 이후 처음 들은 말이다.


2016년 겨울, 애플사의 블루투스 이어폰 '에어팟'이 처음 세상에 등장했다. 애플사의 제품들은 하나같이 그들만의 고유한 감성이 배어있었다. 음악을 듣거나 통화에 사용되는 이어폰도 나름의 감성이 있었는데, 귀에 꽂았을 때 흔히 말하는 핏(fit)감이 너무 좋아 잘 빠지지 않는 점이 우선이었고, 귀에서 중간쯤 내려와 턱 주변에 위치한 볼륨 컨트롤러와 마이크 역시 섬세함과 동시에 구매자들의 애플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이런 애플만의 감성을 뭔가 가위로 싹둑 잘라버리듯 이어폰의 줄을 잘라내고 '콩나물 대가리'만 달랑 작은 케이스에 넣어서 파는 느낌을 주는 '에어팟'은 많은 애플 유저들의 반감을 사기에 충분했다. 얼리 어답터들이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애플 제품이라면 구매하는 자들을 제외하고는 이 블루투스 이어폰인 '에어팟'을 접하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에어팟이 대유행을 한 시점이 그로부터 1-2년 시점이 지난 시간이었으니, 애플의 에어팟 감성 공략이 초반에는 부진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아내도 제정신이냐고 물었으니, 정말 말 그대로 볼품이 없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말이다. 미쳤다는 말을 들었어도 그 우스꽝스러운 콩나물 대가리가 갖고 싶어 졌다. 남들이 다 사니 나도 사고 싶다는 생각은 아니었지만, 나도 그렇게 편리하고 좋다는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워보고 싶었다.


그리고 oo쇼핑몰에서 특별 할인가로 물건이 나왔을 때,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콩나물 대가리를 구할 수 있었다. 어색함도 잠시. 그렇게 편하고 좋을 수가 없었다. 운동을 할 때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사람이 많은 곳을 지날 때에도 이어폰 줄이 사람들의 소지품에 걸리지 않는 간결함과 여유로움이란 어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매력적이었다. 처음에는 부정적이었던 애플사의 그 감성에 나도 모르게 다시 한번 빠져들었다.


그렇게 신이 나게 에어팟을 잘 사용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아무리 깨끗하고 소중히 다루어 잘 사용한다 할지라도 생각보다 빠르게 소진되는 배터리 문제는 나의 노력과 정성과는 별개로 순식간에 이슈로 떠올랐다. 어찌 되었건 나는 에어팟과 자연스레 물아일체가 되어 외출 시 첫 번째로 챙기는 가장 소중한 소지품이 되었다.


그리고 며칠 전, 항상 가지고 다니던 에어팟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둘러보고 찾아보아도 눈에 띄지 않았다. 외투를 다 뒤져보아도, 방 책상과 사무실의 책상에도 결코 보이지 않던 에어팟. 그렇게 이틀, 사흘을 찾다 포기해버리고 말았다. 여전히 음악을 듣던 영상을 보던 이어폰은 반드시 필요하기에 아내의 책상에 가지런히 말려있는 유선 이어폰을 꺼내 들었다. 한 때는 참 감성 있고 느낌이 너무 좋았던 유선 이어폰이었는데, 그날따라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가슴쯤에 축 꼬여서 늘어진 선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소지품을 꺼내거나 손을 움직일 때 여간 걸리적거리는 게 아니었다.



더군다나 이제 버스나 지하철을 타다 보면 유선 이어폰으로 듣는 사람은 눈 씻고 찾아야 겨우 한 두 사람 정도이다. 그러다 보니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움직이기라도 한다면 뽈록 나온 내 배 앞을 그네 타듯 좌우로 흔들리는 이어폰 줄을 모두가 다 쳐다보는 것만 같은 생각도 들었다. 사실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관심 가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한 때 그렇게 좋아하고 열광하던 감성들도 편리함 앞에서는 무용지물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바쁘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찾는 '레트로'한 것들이나, 80-90년대의 추억을 되살리는 이벤트들이 있다. 나는 잃어버린 에어팟 덕분에 잠시지만 추억의 감성을 생각하고 맛볼 수 있었다. 오늘은 또 어떤 곳에서 나의 잃어버린 감성을 찾아서 느낄 수 있을까?


"오빠! 장난해? 그때 입은 잠바 속에 에어팟 있잖아! 자꾸 제대로 안 찾아볼 거야?"


"그치? 거기 있었지? 그래, 그럴 줄 알았어.

내가 잃어버릴 리가 없지."


감성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사이,

오랜만에 한 번 입었던 잠바 속에서 아내는 내가 잃어버린 에어팟을 발견했다.


내일부터 외출할 때 감성은 잠시 내려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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