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고 행동으로만 보여주는 선생님
나는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했다.
어릴 적부터 워낙 운동을 좋아하고 잘하는 편이어서 체육 관련 학과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큰 고민이나 어려움은 없었다. 문제는 체육교육학과가 단순히 몸으로 운동만을 하는 학과가 아니라 '교육'이라는 방법론적인 학문을 병행해야 한다는데 있었다. 교육학은 생각보다 어려운 학문이었다.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것이 단순히 몇 가지 툭 던져놓고 알아서 하라고 한다거나, 기분 내키는 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당신이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을 떠올리며 '어? 내가 만난 선생님들은 그런 고민 없이 사시는 것 같았는데?'라는 생각이 떠올랐다면 아마도 교사로서의 사명감보다는 직업적 만족도에 의해 선생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다른 과목에 비해 몸을 많이 쓰지만 교육학을 전공한 학부생이었다.
어느 교육학과나 마찬가지겠지만 늦어도 학부의 3, 4학년이 되면 '교생실습'을 나가야 한다. 나 역시도 대학교 3학년 시절에는 선배들의 교생실습을 관찰하며 배우는 인턴 중의 인턴의 교생실습을 했었다. 그리고 4학년이 되어서야 고등학교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생 선생님 명찰을 달 수 있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내가 한국이 아닌 '필리핀'에서 이 대학교를 졸업했다는 데 있다. 영어실력이 탁월하지 않았던 나로서는 필리핀 고등학생들의 수업을 맡아 직접 지도하고 가르쳐야 한다는 부담감이 늘 짓눌렀다. 한 시간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섯여섯 시간 이상의 준비시간이 필요했다. 게다가 기존에 체육 선생님께서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교과 과정에 없는 과목들을 한 학기 동안 가르쳐보라고 권유하기까지 하셨다. 예를 들면 태권도라든지, 농구가 국기인 필리핀에서 생전 해본 적도 없는 축구를 가르쳐보라든지 말이다.
정말 너무도 쉽지 않았다. 운동경기의 규칙들과 경기 내용들은 이야기로 전하는 것보다 직접 몸으로 부딪혀보며 깨닫는 일들이 많은데, 이를 교실 안에서 그것도 더듬더듬 어버버 하는 영어로 가르치는 것은 정말이지 죽을 맛이었다. 도저히 답답함을 견딜 수 없어 이 과목은 밖으로 나가서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웬일인지 선생님이 흔쾌히 허락을 해주셨다. 이유인즉슨 학교 특성상 운동장이 없었기 때문에 '어디 네 마음대로 해봐'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Yes' 였으니 말이다.
결국 나는 학교 옆 작은 공터에서 필리핀 학생들이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축구' 과목을 처음으로 가르치는 첫 외국인 교생 선생님이 되었다. 학생들이 못 알아들을 때는 직접 몸으로 시범을 보이며 행동으로 보여줬다. 바디랭귀지(body language). 신이 우리에게 내려준 최고의 선물인 이 작은 몸뚱이를 흔들어대며 나는 무사히 한 학기를 강의하며 마칠 수 있었다.
말보다 행동이 빠른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데, 나는 말보다 행동이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10여 년이 더 지난 지금, 그때의 학생들이 나와 같은 체육 선생님이 된 사진들을 가끔 페이스북을 통해 보게 된다. 그때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었을까? 괜시리 미안한 마음이 스치듯 지나 옛 추억의 사진첩을 뒤적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