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관하여
죽음을 알리는 소식
'부고'라는 문자를 받을 때마다 마음이 덜컥 내려앉는다. 추운 겨울이 가고 따스한 봄이 살며시 다가올 때쯤이면 심심치 않게 전해 듣는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소식이다. 가까운 지인일수록 그리고 그 지인에게 있어서 소중한 사람일수록 삶의 마지막을 알리는 연락들은 더욱 무겁기 마련이다.
얼마 전에도 직장 동료의 모친상 소식을 듣고 늦은 밤 차를 운전해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입구에서부터 무겁게 내리 앉는 장례식장의 공기는 탁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장례식 그리고 죽음. 누군가에게는 치열한 삶의 전쟁터를 떠나는 마지막 이별의 장소이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는 사랑하는 이의 작별의 장소이다.
죽음을 대하는 태도
그러고 보니 우리는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매우 수동적이다. 죽음에 있어서 수동적이라는 말은, 죽음이 보낸 초대장이 나에게로 올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의미이다. 죽음은 나와 전혀 관계없는 누군가에게 벌어진 애처로운 일 정도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지병이 있거나 죽음에 대한 선고를 받고 시간을 기다리는 이들 이외에는 우리 모두가 다 골목길 코너를 돌 때 생각지도 못하게 만나는 어두움의 그림자와 같이 불현듯 맞이할 수 있는 현실이다. 조금 더 적나라하게 말을 하자면,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와 읽고 있는 당신에게 내일이 허락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김완 작가의 '죽은 자의 집 청소'라는 책이 얼마 전 방송을 타면서 큰 인기를 누렸다. 책을 잘 들여다보면 다양한 연유로 죽음을 맞이한 이들과 그들이 허망하게 떠난 자리를 정리하고 청소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이의 시간과 공간을 둔 보이지 않는 밀당의 모습이 그려진다. 버려둔 자와 정리하는 자. 같은 시간 같은 공간이었다면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두 행동자가 시간과 공간을 다르게 가지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매우 불편하고 무거운 감정을 우리에게 선물한다.
천하를 호령했던 알렉산더 대왕은 죽을 때 자신의 빈 손이 관 밖을 향하여 나오도록 부탁했다고 한다. 죽음을 목전에 둔 그가 남아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말하고 싶었던 한 가지. '가난한 자도 부한 자도, 힘이 있는 자도 힘이 없는 자도 사람은 결국 죽는다는 사실과 죽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비참한 현실'이었다.
오늘 당신의 하루가 삶의 마지막 순간이라면, 당신은 무슨 말을 남기고 싶은가? 그리고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 그리 거창하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불현듯 다가올 수 있는 우리의 준비된 죽음들 앞에 마주 설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장례식장은 먼 길을 떠난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곧 뒤따라야 할 준비를 다시금 되새기게 하는 장소가 아닐까 싶다. 어디로 갈지 몰라 방황하고 헤매이는 우리게 '이 길'이라고 알려주는 이들의 짙고 호소력 있는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기를.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자들이 건네주는 말들
모친상을 당해 슬퍼하던 그가 내게 건넨 한 마디가 마음 한 켠에 깊게 자리 잡는다.
"길웅씨, 부모님께 전화 자주 하세요."
"....네..."
"어젯밤에도 전화를 드렸지만 그게 마지막인지 몰랐네요. 평소에 더 자주 전화드리지 못하고, 찾아뵙지 못한 게 너무 후회가 돼요."
전화 자주 해 드리라는 인생 선배의 조언은, 그리 어렵지도 불편하지도 않은 지극히 평범하고 보통적인 일이었다. 자주 전화하는 것. 그리고 자주 찾아뵙는 것. 어차피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낼 때에는 후련함보다는 후회가 더 크겠지만, 주어지는 그 후회마저도 잔잔히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은 우리에게 주어진 일상에서의 '잦은 만남'이다.
뒤로 미루지 말고, 오늘 아니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당신의 스마트폰을 꺼내어 사랑하는 이들에게 가벼이 안부 인사를 하자.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흘러가는 오늘을 조금이라도 붙잡아 두고 싶은 마음을 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