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을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약속이 깨지다
오래전부터 잡아 놨던 약속이 가는 도중 취소되었다. 한껏 단장을 하고 나선 길에 푸르른 나무들이 무색할 만큼 약속이 펑크가 나는 변수를 만나게 되었지만 기분이 꽤 나쁘지는 않았다. 모든 사람마다 사정이 있고, 그 사정마다 이유가 있을 테니, 나는 원망과 불평보다는 ‘이해’를 택하기로 했다.
취소된 약속은 점심 약속이었다. 생각지 못한 변수에 점심식사를 함께 할 친구를 잃어버리게 되었고, 함께 먹기로 했던 파스타는 언젠가 만나게 될 기약 없는 약속 가운데 멀어져만 갔다. 약속 장소로 가는 도중 한 번도 내려보지 않은 정류장 근처에서 버스 ‘벨’을 눌렀다. 낯선 주변 환경만큼이나 최대한 기분이 상하지 않게 ‘혼밥’을 즐길 수 있는 밥집을 찾아 나서는 발걸음이 신남과 걱정 사이를 오고 가며 뚜벅뚜벅 걸음을 걸어내었다.
뜻하지 않은 골목길에서 중국집을 만나다
순간 눈에 들어온 중국집. 24시간 언제든 먹을 수 있다는 간판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24시간 동안 영업하는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점은 많이 봤지만, 짜장면을 무려 24시간 동안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다는 것은 말 그대로 내게는 ‘혜자스러움’이었다. 혼자 앉기에 불편하지 않을 자리를 찾아 털썩 주저앉았다. 여느 때와 같았으면 자신 있게 주문했던 ‘짜장면’. 얼마 전 아내로부터 밀가루를 줄이라는 말이 왜 이럴 때 저 깊게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먹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에 중국집으로 오지 않았던가? 나는 망설임 없이 주문을 했다.
“아저씨, 여기 ‘볶음밥’ 하나요”
나는 용기 없는 자다. 먹고 싶은 짜장면을 목구멍까지 차오르게 하고선, 입 밖으로는 ‘볶음밥’을 외쳤다. 가엾은 녀석.
둘이 먹을 파스타 대신 홀로 중국집에 온 것도 오늘 내게 주어진 하루의 변수이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짜장면 대신 볶음밥을 주문한 것도 내게는 또 다른 변수였다.
삶은 계획표에 충실하지 않는다
삶은 언제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주저앉고 원망할 것이 아니라, 변수 위에 변수를 더할 줄 아는 삶의 여유로움을 가지고 싶다. 삶이 제멋대로 흘러간다면 원래대로 돌리기 위해 애쓰지 말고, 여유로움의 서핑보드를 타고 인생의 파도를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