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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노을 May 21. 2020

뒤돌아 보니 제자리였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그대를 위해

삶은 치열하다. 그 어느 누구에게도 ‘오늘’이라는 하루는, 쉽게 흘려보낼 수 있는 사치품이나 액세서리는 결코 아니다.


당신이 무심코 흘려보내는 오늘 하루는 어제 죽어가던 누군가가 간절히 바랬던 내일이라는 말로 우리에게 삶의 동기를 부여하기에는, 우리의 삶은 너무 고되다.




스펙?! 나는 스토리로 간다


사람들은 저마다 ‘인생 목표’를 가지고 살아간다. 몇 살이 되면 무엇을 해야 하고, 몇 살에는 무엇을 하려는 그 계획과 목표를 이루기 위해 오늘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전쟁터로 뛰쳐 들어가 구르고 또 넘어진다.


스펙(spec)은 어느새 우리가 얼마나 잘 살아왔는지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 버렸다. 경력을 위해서라면 필요하지 않다 할지라도 내 이력서에 한 줄 한 줄 채워야 했고, 그렇게 쉴틈 없이 이리저리 주변만 돌아보다 뒤늦게야 홀로 쓸쓸히 서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여전히 '스펙' 중심의 세상 속에 살아간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모든 것을 다 설명하기에는 어렵다. 오죽하면 이제는 스펙보다 스토리 중심의 세대라고 하겠는가? 모두가 다 스펙에 치중할 때, 한 사람의 감동적인 인생 스토리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하듯 타들어 가는 우리의 목마름을 해갈해 줄 수 있는 선물과도 같다.



목표보다는 목적을


사람들은 목표와 목적을 특별히 구분하여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어떤 상황에서는 목표라 말하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목적이라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목표는 언제든 변할 수 있는, 수정이 가능한 ‘일시적’ 지점이다. 예를 들면, ‘삼성’이라는 기업에 취업을 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상황을 보니 여간 어려운 게 아닌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취업의 ‘목표’를 하향으로 조정하여 조금 더 작은 중소기업으로 수정하는 것이다. 목표는 상황과 환경, 조건에 따라서 얼마든지 조정이 가능하다.


그러나 목적은 일시적이지 않다. 목적은 방향성이고, 종착지이다. 목표는 수정이 가능하지만, 목적은 수정이 되지 않는다. 만약 목적에 손을 대어 수정하려 한다면, 그 프로젝트 자체를 다 뒤집는 꼴이 된다.

운전을 하다 보면 도착지를 입력하는 것이 바로 ‘목적’이다. 가는 길에 도로가 막히고, 길을 잘못 들고 하면 우리는 도착지로 가는 ‘방법’을 다양하게 바꿀 수 있다. 그러나 도착지 자체를 바꾸지는 않는다.



뒤돌아 보니 제자리였다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그에 합당한 보상이나 결과가 뒤따라야 ‘살맛이 난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를 돌아보면 ‘합당’하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쳇바퀴를 돌고 있는 우리 자신을 보게 된다.

몇 발 앞서가던 친구 녀석도 언젠가는 내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고, 내 뒤에 한참 쳐지는 낙오자와 같은 친구들도 어느샌가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며 걷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인생 자체의 허무함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공’이라는 하나의 목표만 바라보고 달렸던 우리의 인생에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말해주고 싶었다.

홀로 성공하여 부귀영화를 누리는 잠시 잠깐의 쾌락적인 삶보다는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살이의 참맛이 더 낫다. 오르막길에서 나의 등을 힘껏 밀어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 내가 손 내밀어 일으켜줄 ‘나를 필요로 하는누군가가 또 옆에 있다는 것.


이렇게 밀어주고 당겨주며 함께 살아가는 우리네의 삶이 비록 제자리인 것 같지만 훨씬 더 진하고 풍미 있는 인생의 에스프레소(또 다시 찾게 되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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