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 진단이 제일 위험하다
최근 들어 몸에 이상이 한 번 생기고 난 후 몸의 구석구석을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다. 평소에는 지나칠만한 증상들도 유심히 관찰하며 돌아보게 되는 이상한 버릇이다. 사람이라는게 참 간사하다. 다른 사람의 아픔에는 비교적 무관심하다가도 제 몸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생기면 죽을 둥 살 둥 챙기고 돌아보니 말이다.
인생의 중반을 향해 달려가는 어느 아이의 마음
어쩌면 올 한 해는 머리 끝에서부터 발끝까지 고장난 부분을 찾아 수리하는 정기 검진의 해가 될 것 같다. 이제 한 두 해만 더 지나면 ‘불혹’이라는 마흔에 접어들지만, 거울을 통해 보이는 나의 모습은 불혹과는 거리가 꽤 있어 보인다. 어쨌거나 마음은 아직도 수업을 마치고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흙먼지를 뒤집어써 가며 공을 차고 있는 중학생인데, 희끗희끗 희어져 가는 머리카락을 보노라면 세월이 참 무색하다는 생각이 든다.
돌팔이 의사
지금부터 12년 전 나는 라식 수술을 했다. 그때도 눈이 많이 나쁜 건 아니었지만, 워낙 활동적인 내게 안경은 거추장스러울 뿐이었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수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여전히 괜찮은 시력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오른쪽 눈에 이물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눈동자를 휘휘 돌려보면 무언가 걸리적거리는 부분이 분명히 있었다. 돌팔이 의사처럼 인터넷을 통해 자가 진단을 하고 ‘결막낭종’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워낙 분주하게 시간을 사용하는 탓에 ‘병원에 가야지’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다 결국 병원을 가지 못했다. 이물감은 이내 익숙해져 삶에 그다지 큰 불편을 주지 않았고, 그렇게 하루 이틀 시간은 자연스레 흘러갔다.
그러다 며칠 전부터 오른쪽 눈이 시리고 눈물이 고이는 것이 아닌가? 이물감과 나름대로의 친숙함을 느끼며 지내고 있었는데, 눈이 시린 것은 또 다른 불편함으로 다가왔다. 나는 여느 때처럼 또다시 인터넷을 통해 증상들을 점검해보고 진단을 했다. 이번에는 ‘녹내장’ 증상이 의심이 되었다. 인터넷 블로그에 올라와 있는 몇 개의 글들과 네이버 지식인에 달린 몇몇 의사들의 상담 내용을 보니 갑자기 잘 보이던 눈도 더 안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속으로 녹내장 초기 증상임을 확신했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나의 오른쪽 눈은 여러모로 더욱 불편해졌고, 결국 나는 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생각지도 못한 진단 결과를 받다
안과는 내게 비교적 친숙하지 않기에 병원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약간의 두려움이 엄습했다. 내게 무슨 일로 왔냐는 말에, 속으로 ‘아프니깐 왔지!’라고 큰소리로 외쳤지만, 입 밖으로는 “눈이 불편해서요”라고 말을 했다. 의사 선생님을 만나기 전, 간단한 시력 검사와 더불어 몇 가지 검사를 하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증상을 묻는 선생님께 눈 속에 이물감이 느껴지는 것과 눈이 시리고 눈물이 나는 것을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다시 검사를 진행하시고 충격적인 진단 결과를 말씀해 주셨다.
“아.. 그... 이물감이 느껴지는 이유는, 아래 속눈썹이 긴 게 하나 있어서 그게 눈을 자꾸 찔러서 그렇습니다. 뽑으시죠!”
속눈썹 한 가닥 때문에 결막낭종과 녹내장 의심을 했던 지난 며칠이 참 허무하게 느껴졌다. “위에 보세요”라고 의사 선생님은 한 마디를 던지시더니 곧 자그마한 핀셋으로 불쑥 튀어나온 아랫 속눈썹 하나를 힘껏 뽑아내셨다. 그리고 다른 증상이 있을 때까지 안 와도 된다고 하셨다.
나는 엄살쟁이다
진료를 마치고 병원 밖을 나서니 원래 푸르렀던 여름을 기다리는 나무가 더더욱 푸르르게 바람에 춤을 추고 있었고, 파란 하늘은 더 높고 하얀 구름은 한 주먹 떼어다 입 속에 가득 머금고 싶을 만큼 달콤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다른 큰 병이 아니라는 소식에 마음은 한 결 가벼워졌지만, 작은 증상에도 잔뜩 겁을 먹고 불안해하는 내가 다섯 살 어린아이와 같이 엄살쟁이가 된 것 같아 못마땅했다.
계속해서 엄살쟁이가 되어도 좋으니, 아픈 곳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위로를 한가득 안고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을 주문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