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쫓기다 시간을 쫓는다
나는 시간을 소중히 생각하며 살아간다. 시간을 아낄 수 있다면 그에 합당한 비용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기꺼이 아깝지 않게 지불할 의사가 있다. 예를 들면 어느 지역으로의 이동에 있어서 돈을 아낄 수 있는 대신 시간을 오래 소비해야 한다면, 나는 비용이 드는 수단을 사용해서라도 시간을 사고 그 시간을 보다 알차게 보내겠다는 주의다.
그러다 보니 나의 생활패턴이나 시간 사용은 언제나 숨이 막힐 정도로 타이트하고 계산적이다. 직면해야 하는 일들에 대한 시간적 계산과 분석은 매일 매 순간마다 자연스레 일어난다. 나를 바라보는 주변에서는 ‘뭐 그리 갑갑하게 사냐?’느니 혹은 ‘너 인생 참 피곤하게 산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사는 것이 좋다. 아니 편하다고 말하는 것이 더 맞는지도 모르겠다. 오랜 시간 동안 그렇게 시간이라는 녀석에 쫓겨 숨 가쁘게 살다 보니, 이제는 내가 시간에 쫓긴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함께 살아간다.
최근 들어 한 모임에서 나의 이러한 시간관념에 대해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표정에서 놀라움, 불편함 그리고 경악스러움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마도 ‘워라밸’(work life balance)이 중시되는 세대 속에서 아직도 경제성장에 초점을 맞추며 앞만 보고 달려갔던 갑갑한 어느 꼰대의 모습을 발견했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최근 들어 연속적으로 내가 컨트롤할 수 았다고 생각했던 시간들에 대한 주도권이 무너지는 것을 경험하고 나니, 열심히 쫓아오는 시간들을 잘 따돌릴 수 있다 생각했던 나의 얄팍함 교만함도 함께 박살이 나버렸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시간에 쫓기지 않는다. 시간은 이미 나를 따라잡아 내가 범접할 수 없는 그 자리에 서있다.
시관관리를 잘할 때에는 느끼지 못했던 삶의 숨 고르기의 여유를, 시간 관리에 실패하자 바라볼 수 있는 역설의 배움 앞에 서 있다.
‘나는 오늘 눈 앞에서 몇 초 차이로 버스를 놓쳤다. 그래서 계획되어 있던 다음 대중교통들도 연속적으로 놓치게 되었다’
버스 하나 제시간에 타지 못하는 바보 같은 녀석이라는 압박감에서 헤어 나와 꽁꽁 얼어붙은 날 하염없이 마른 나뭇가지에 앉아 먼 하늘을 바라보는 작은 새를 보며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