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작은 숲 '리틀 포레스트(little forest)'
집 값이 천정부지로 솟구쳐 올랐다는 기사가 더 이상 새롭거나 놀랍지 않다.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매일 뉴스와 신문기사를 통해 전해지는 서울의 집 값 상승은 관심을 가질수록 피곤해진다. 어차피 서울에서 '내 집 마련'이란 꿈은 접은 지 오래이니. 아니 꺾였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뭐가 그리 아쉬워 '서울살이'에 그렇게 집착하며 살았을까? 옛말에 '말은 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말처럼, 서울에 살아야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것일까? 치열한 지옥철과 만원 버스 사이에 끼어 옴짝달싹하지 못한 채,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개를 살짝 들어 45도 위를 바라보는 게 전부인 출근길. 조금의 여유와 틈이라도 생긴다면 습관처럼 꺼내 드는 스마트폰. 그리고 전해 듣는 정보와 소식들, 웹툰과 누군가의 sns. 귓가에 꽂혀 있는 이어폰은 세상의 소리와의 단절을 외치며 나만의 소리에 집중하고자 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온전히 그려낸다.
이렇게 여유 없고 각박한 삶이 도대체 무슨 매력이 있길래 다들 그렇게 서울에 살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는 것일까? 서울은 아니지만 비교적 서울에 근접한 수도권에 살고 있는 나는 왜 그리 이렇게 발달된 도시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붙어 있기 위해 애쓰며 살아가는 걸까? 생각건대, 도시가 주는 '편리함' 그리고 시골이 줄 수 없는 발전의 '기회'를 사모하고 있었던 것 같다.
요즘 뉴스의 80-90%를 차지하고 있는 주식, 부동산, 비트코인 등을 하지 않고서야 절대로 서울에 내 집을 마련할 수 없음에도 서울살이에 로망을 가지고 있는 내 자신이 참 한심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영화를 끊어서 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몇 편씩 몰아쳐 보진 않지만, 적어도 한 편을 시작하면 한 번에 쭉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다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리틀 포레스트(Little forest)'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물론 김태리를 위한, 김태리에 의한, 김태리의 영화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지만,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시골스러움과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담긴 영상미에 이 글의 제목처럼, '꼭 서울이 살지 않아도 괜찮잖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가 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귀농생활도 나쁘지 않다'는 것을 어필하고자 했다면, 나는 감독의 의도가 매우 적중했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내 마음속에는 '나도 시골에 내려가서 살고 싶다'라는 생각이 가시질 않았다. 시골살이가 얼마나 불편하고 손이 많이 가는 일인지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이 분주하고 치열한 도시를 떠나 한적한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속에 있는 회귀본능을 그대로 자극했다고 할까? 어릴 적에는 그렇게 바삐 돌아가는 도시의 소음과 자동차의 경적소리, 발 디딜 틈 없이 북적대는 도심 한 복판이 너무도 매력적이었지만 지금은 더 이상 그렇지 않다. 창문을 열면 보이는 푸르른 산등성이가 그리워지고, 아침이면 눈치 없이 기쁜 노래 부르는 새소리가 듣고 싶다.
리틀 포레스트는 '작은 숲'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영화 속에서도 주인공인 혜원이 읊조렸던 '작은 숲'. 지치고 고된 삶 가운데서도 언제고 돌아와 쉴 수 있는 그 '작은 숲'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해 보인다. 특별히 영화 속에서는 요리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가장 최고의 음식은 직접 만들어 먹는 것이라고 말했던 극 중 혜원이의 말처럼 봄에는 꽃잎 튀김을, 여름에는 콩국수와 잘 익은 새빨간 토마토를 한 입 베어 물고, 가을에는 단 밤 조림을, 그리고 겨울에는 오래 기다릴수록 참 맛을 느낄 수 있는 곶감까지. 이 모든 것들이 시멘트 벽으로 담장뿐 아니라 우리의 마음까지 벽을 치게 만든 도심에서는 절대로 맛볼 수 없는 푸른 풀 밭 사이에서 맛보고 경험할 수 있는 자연의 선물이다.
일 년 여의 시간을 시골집에서 보낸 혜원이는 이제 다시 서울로 떠나기로 했다. 시골살이는 그에게 있어서 잠시 잠깐의 휴식을 얻기 위한 그만의 '작은 숲'이었기 때문에. 그러나 그를 떠나보낸 주하는 떠나버린 혜원이 '아주심기'를 준비하는 중이라 했다. '아주심기'는 양파를 기르는 재배과정에서 적용되는 작업 과정인데, 처음에 씨를 뿌리고 가마로 열흘 정도 덮어 놓았다 씨가 싹을 틔우고 자라면, 앞으로 뿌리내릴 좋은 땅에 거름을 뿌리고 그 땅에 옮겨 심는 것을 말한다. 아주심기를 하면 다시는 뽑거나 옮길 필요가 없다. 그곳에 완전히 뿌리내려 정착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주심기를 통해 겨울을 난 양파는 봄에 심은 양파보다 맛도 좋고 위기를 견디는 능력 또한 훨씬 탁월하다. 이처럼 서울에 다시 올라간 혜원이를 주하는 '아주심기'의 한 과정이라 표현했다.
한 편의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아주심기는 아니더라도 씨앗이라도 뿌릴 수 있는 그 첫 발걸음을 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무엇을 해서 먹고 사는가에 대한 실질적인 고민과 걱정이 제일 앞서겠지만, '굶어 죽기야 하겠어?'라는 젊은이의 패기와 더불어 '정말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공존한다.
이번 여름, 휴가를 떠나게 된다면 다른 곳이 아니라 인적이 드문 시골에서 며칠간 시간을 보내며 자연의 체취를 그대로 느껴보고 싶다. 인생의 작은 씨앗이라도 그곳에 뿌려 보고 싶다. 처마 끝자락에 앉아 새차게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푸르게 젖어가는 먼 산을 바라보기도 하고, 하릴없이 대청마루에 앉아 여름의 녹내음을 마음껏 느껴보고 싶다.
수많은 고민과 결단이 필요한 결정이겠지만, 오늘도 조심스레 자신에게 되물어 보곤 한다.
"꼭 서울에 살지 않아도 괜찮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