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노을 Mar 27. 2021

상대적 박탈감으로부터의 자유

삶의 집중력: 바라보아야 할 것과 외면해야 할 것들에 대하여

사람은 저마다 각기 다른 삶의 양식을 가지고 살아가기에 무엇이 인생의 정답이라고 슬며시 내어 놓기가 참으로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에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몇 가지 들이 있으니, 잘 기억하고 자신의 삶으로 당겨 가져 올 수만 있다면 큰 유익이 되리라 확신한다.


고도로 발달된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원하는 것을 원하는 곳에서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 침대 구석에 누워 핸드폰을 몇 번 만지작 거리기만 하면,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정보도 손쉽게 얻을 수 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할지라도 미국에 있는 그 어느 누가 사용하는 제품이 마음에 들어 구매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얻을 수 있기도 하다. 이처럼 우리는 수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불필요한 사생활들까지도 원하지 않게 접하며 살아가게 된다.


인간인지라 자연스레 타인의 삶을 바라보게 되면 나도 모르는 사이 ‘비교의식’이 생겨나게 된다. 오늘 정말 맛있는 수제버거를 먹어 행복에 겨운 나머지 SNS에 포스팅을 하는 순간, 서울 시내의 아름다운 야경을 담아내는 고층 빌딩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친구의 사진을 보고 부럽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출처: 네이버 "제주도읽어주는남자" 포스트>


상대적 박탈감

내가 이미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해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지고 있는 것보다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한 허전함과 공허함이 나를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끼게 한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의 심각한 문제 중에 하나이다. ‘상대적 박탈감’


상대로 인하여 박탈감을 느끼는 것. 애초에 나에게 박탈감을 던져줄 상대가 없었더라면 느끼지 못했을 감정. 그러나 이것이 어디 말처럼 쉬운가? 박탈감을 느끼지 않도록 상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 정상적이던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더 비상식적인 이해를 요구하는 일이다. 


정말 중요한 문제는 나에게 박탈감을 주는 상대가 아니라, 상대를 보고 박탈감을 느끼는 나 자신에게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일들에 대하여 ‘바라보아야 할 것들과 외면해야 할 것들’이라고 부제를 붙여 보았다.


경마장에 있는 말들에게는 한 가지 희한한 부착물이 붙어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바로 ‘눈가리개’. 어찌나 시야가 넓은지, 앞만 바라보고 온전히 직진으로만 달려야 하는 경주마는 주변의 사물들이 자꾸만 시야에 들어와 달리는데 방해가 된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그가 똑바로 달릴 수 있도록 해놓은 장치가 바로 양 눈 옆을 가린 눈가리개를 붙이는 일이었다. 덕분에 말은 양 옆의 모든 시선을 의도적으로 차단된 채 온전히 앞만 바라보고 달릴 수 있게 된다.


성경에서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인류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어떠한 도움 없이 물 위를 걸었던 베드로는 풍랑이는 바다를 보자 두려운 마음이 들어 바다에 빠지게 되었다. 물 위를 걷게 하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걸어갈 때는 자신이 파도가 출렁이는 바다를 걷는다는 생각도 못하다가, 눈을 돌려 좌우를 살펴보니 자신이 걷고 있는 바다의 파도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이내 두려운 나머지 바닷속에 풍덩 빠지고 말았다는 내용이다.


삶의 집중력을 높이라

어쩌면 우리도 저마다 인생의 풍랑이는 바다 위를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똑바로 앞만 보고 걸어도 집중력이 부족할지 모르는데, 옆 사람은 어떻게 걷는지, 어떠한 방법들을 사용하는지 관심이 온통 앞뒤 좌우 양 옆으로 쏠려 있다.


그래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며 각 자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된다. 끝내는 남들과 같지 않은 ‘나’의 모습에 심각한 괴로움을 느낀 채 불행을 벗 삼아 살아간다. 바라봐야 할 것과 외면해야 할 것에 대한 명확한 기준 없이 그저 살아가는 대로 생각하다 보니 나타나게 된 결과이다.


나 혼자만 잘 먹고 잘 살라는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남을 돕고 유익하게 하는 영향력이 있는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걷는 이 길을 온전히 잘 가다듬어 가고 이 길에 대한 집중력이 필요한 것이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 남을 바라보어야 할 때 바라보지 못함도 결국은 이기적인 삶의 온상이 되어 자기 파멸에 이르는 것처럼, 돌아보아야 할 것과 신경 쓰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한 객관적이고도 명확한 기준이 필요한 시대이다.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 그러려면 남이 가진 것에 대한 시기와 질투, 부러움이 우선시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먼저 내게 주어진 길에 대한 집중과 한 발 한 발 내딛을 수 있는 용기를 구하는 것. 이것이 바로 ‘사람다움의 집중력’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