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소소한 강박증에 관하여
나는 ‘강박’이라는 단어와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이다. 아니, 그런 줄 알고 살아왔다. 적어도 내게는 그런 행동들이 강박이라기보다는, 너무도 평범하고 당연한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강박증’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불안함을 잠재우기 위해 어떤 행동을 반복적으로 하는 것.
현관문을 흔들어대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에게도 이런 몇 가지 증상이 있다. 먼저 네이버 지식백과에 나온 것처럼 현관문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문을 잠그지 않았다면 그로 인하여 발생하게 될 수많은 일들을 상상한다. 나는 상상 속에만 있는 그런 일이 생겨나는 것이 싫다. 도둑이 들어 집안에 있는 물건들을 가져간다거나 혹은 사람을 헤칠 수도 있다는 끔찍한 생각들.
그래서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가며 문단속을 했음에도 잠들기 전 꼭 현관문에 가서 문을 몇 번이고 흔들어 본다. 역시나. 문이 열려 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명절이나 혹은 며칠씩 자리를 비우는 일이 생기게 되면 그 강박은 더해진다. 아무튼 나는 현관문 단속을 열심히 아주 열심히 한다. 반대로 생각해보니 나는 문이 잘 잠겨 있다고 생각하면 그로 인해 안정감을 누린다. '문이 열려 있으면 어떡하지?' 걱정하는 만큼, '문이 잠겨 있구나'하고 느끼는 안도감도 크다.
가스밸브가 열린 건 아닐까?
나를 또 불편하게 만드는 강박 중에 하나는 바로 가스밸브이다. 지금까지 가스로 인한 화재를 경험한 적은 없지만 천에 하나, 만에 하나 그런 일이 발생하기라도 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큰 위험이 있기에 가스밸브에는 괜시리 더 민감해진다.
집에서 내가 자주 요리를 하는 편은 아니어서 가스 밸브를 키는 일이 극히 드물다. 그럼에도 한 번 사용하게 되면 밸브를 잠겄는지 그대로 열어두었는지 자주 깜빡한다. 이런 깜빡이는 불편함을 넘어 불안함까지 선사한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중학생 때인가? 친구와 약속이 있어 집에서 30분 거리의 시내에 버스를 타고 나가는 도중 가스 밸브를 잠겄나 생각이 갑자기 안나는 것이다. 그래서 현장 상황을 계속해서 복기해보고 '나는 분명히 가스를 사용하고 잠갔어'라고 생각을 하며 달래 보았지만, 불안한 마음이 계속 들었다. 그래서 버스가 중간지점을 지났음에도 버스 하차벨을 힘껏 눌렀다. 그리고 집으로 달려가 확인을 해보니. 역시나. 가스밸브가 열려 있을 리는 없었다.
삶의 방향을 살짝 바꿔보다
강박증을 나쁘게 바라보면 삶을 파괴하고 불편하게 만드는, 우리 삶에 없어져야 할 증상으로 바라보게 된다. 강박에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힘의 방향을 살짝 바꾸어 삶의 긍정적인 방향으로 조정해준다면, 뒷정리 그리고 마무리 점검을 하는 데 있어서 큰 힘이 될 것 같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포스트 코로나(post corona)'가 아니라 '위드 코로나(with corona)'인 것처럼, 이 불편함도 끝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지고 간다면 분명 생각지도 못한 좋은 효과를 나타내는 일도 있을 거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