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문을 박차고 나오면 무언가 달라질 줄 알았다. 적어도 꽤나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당시 대학을 자퇴하고 당당할 수 있는 건 몇몇에게만 허락된 특권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고 차가웠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관심 가져주지 않는 얼음장 같은 시간들이 그렇게 차갑게 흘러갔다.
그 이후 나는 동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기분 좋게 매장을 청소하고 밝은 인사로 편의점을 찾는 손님들에게 물건을 건네는 내 모습이 무척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그 일도 잠시. 나는 사회복지학과라는 전혀 연관이 없는 학과에 대한 소식을 접하게 되고, 아직은 쓸만했던 고등학교 성적으로 다른 대학교를 지원할 수 있었다.
새롭게 학교를 다닐 수 있다면 그리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만 앞선채 나는 원서를 제출했고, 무엇이 맞고 틀린 지 분간도 하기 전에 덜컥 합격을 했다. 내 나이 스물넷. 새로운 대학생활을 시작하기에는 조금 늦은 나이일지 모르지만, 나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군 복무도 마쳤겠다. 오히려 휴학을 할 일도 없으니 앞으로 열심히 공부만 하면 됐다.
그렇게 나는 스물넷의 두 번째 대학교를 다니게 되었고, 함께 입학한 동기들은 나를 '웅삼촌'이라고 부르며 새내기 생활을 다시 한번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 접해보는 사회복지학부의 공부는 꽤나 흥미로웠다. 게다가 군대까지 전역한 이후의 정신상태로 수업에 임하니 집중력이 배가 됐다.
나는 동아리 활동에도 꽤나 열심이었다. 나이가 있어서인지 매사에 적극적이고 책임감 있게 뛰어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고, 그 부담감이 나의 무거웠던 손과 발을 움직였다. 2학년이 되자 학교 축구 동아리의 회장이 되어 전국대회에 참여하기도 하였고, 기독교 신앙 동아리를 만들어 교수님과 함께 마음이 어려운 친구들을 위로하며 학교생활을 좀 더 편안하게 할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전달했다.
나에게는 모든 것 상황이 완벽하다고 느껴질 만큼 안정적이었다.
어머니의 건강은 회복되어 가고 있었고, 학교에서는 근로장학생으로 소정의 용돈을, 성적은 전과목 A+로 전액 장학금까지. 함께 하는 동생들과 좋은 관계까지 유지하며 나는 더할 나위 없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2학년 1학기가 끝나갈 무렵, 나에게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또 다른 관문이 놓여 있었다.
워낙 영어를 배우고 싶고 잘하고 싶었던 욕심이 있었지만 그게 필리핀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는 주춧돌이 될 줄이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물론 나는 신앙심에 의한 '선교'라는 타이틀로 필리핀을 가게 되었지만, 어쨌든 나는 모든 것이 안정적이라 생각했던 나의 두 번째 대학에서 또다시 자퇴서를 제출해야 하는 순간을 맞았다.
이번에는 정말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나의 마음과는 다르게 진행되어 가는 나의 인생의 순리들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 '순응'하는 일이 전부였다.
돌아오는 여름, 나는 그렇게 두 번째 대학교를 원하듯 원치 않는 마음으로 그만두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