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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노을 Jan 24. 2022

바리스타 2급 자격증에 떨어졌습니다

아, 쉽지 않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 보겠다고 부리나케 접수를 했다. 지인을 통해 흔히 말하는 '속성(?!) 코스'로 몇 시간의 수업을 듣고 호기롭게 자격증 시험에 도전하였다. 사실 바리스타 2급 실기 시험 자체가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다. 충분히 연습하고 시간을 들이면 자연스레 통과할 수 있는 자격증이다. 보통 30시간 이상의 연습을 하고 시험에 도전을 하게 되는데, 그러면 천재지변이 나지 않는 이상 혹은 너무 긴장해서 순서를 까먹지 않는 이상 합격률은 꽤 높은 편이다.


아내와 나는 열 시간이 채 되지 않는 연습을 하고 시험장에 들어섰다. 수험 번호도 달랐기에 한 사람 분량만 준비하여 시험에 임했는데, 감독관이나 시험을 돕는 스텝의 입장에서는 준비되지 않은 어처구니없는 모습으로 보였으리라 이제서야 생각이 든다. 

'저희 부부라서 한 사람씩 돌려 사용하려고요'

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호기롭게 외친 우리 부부가 불쌍해 보였는지 고사장의 스텝들이 친절하게 바리스타용 앞치마와 행주까지 빌려 주셨다. 


시험이 시작되자 나 스스로도 놀랄 만큼 능숙하게 커피를 만들어 냈다. 이대로만 한다면 나도 바리스타 2급 자격증을 손쉽게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웬걸, 카푸치노를 만들기 위해 우유 스팀을 하는데 생각처럼 거품이 나지 않았다. 규정상 두께 1.5cm가 가장 이상적인데, 첫 번째 우유 스팀을 보기 좋게 망쳐버린 탓에 1.5cm는커녕 1.5mm도 안 나온 것 같다. 앞전에 어떤 분도 우유 스팀이 안돼서 중간에 포기하고 나가셨다고 했다. '으휴, 그럼 좀 어때! 그래도 끝까지 버티지. 참 쉽게 포기하는 사람이네'라고 속으로 앞사람을 나무랐던 내 모습이 너무도 가소로웠다. 엉망진창인 내 카푸치노를 보고 있노라니, 나 역시도 앞사람이 뛰쳐나간 이유와 심정을 너무도 뼈저리게 느꼈다. 순간 '죄송합니다'를 외치고 밖으로 나갈까 싶었지만, 실기 시험 비용인 5만 원이 너무 아까워 끝까지 자리는 지켰다.


주어진 15분의 시험을 위해 5만 원이라는 비싼 비용을 들였지만, 그것보다 능숙히 일을 처리해내지 못한 나 자신이 너무 미웠다. (심지어 긴장한 나머지 뜨거운 스팀에 손가락까지 데었다.)


당분간 우유가 들어간 라떼종류의 커피는 좀 멀리해야겠다. 모든 일들이 시간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연습하며 흘린 땀은 결코 배신하지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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