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덜 불편한 일상을 위해서
불편함을 편안하게 받아들인다는 말 자체에서 이미 모순됨이 드러난다. 불편한 상황을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더 불편할 것 같아, 이제 그만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의미로써의 표현이다. 우리의 삶에는 예기치 않은 불편함들이 쉬지 않고 찾아온다. 굳이 나서서 불편한 상황들을 만들려 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쉽게 마주할 수 있다. 불청객과 같이 그 누구도 반기지 않음에도 이 녀석은 결코 뒷걸음질 치거나 타이밍을 보다 다음에 찾아오는 법이 없다.
무슨 복을 받아서인지 내 전화기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꾸준하게 전화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 번 수화기를 잡으면 족히 30-40분. 이야기가 조금 길어지면 한 시간이 훌쩍 넘어버리는 전화에 내 시간을 종종 빼앗기고는 한다. 전화 연결이 되기 전, 이미 전화기 화면 너머로 보이는 그 사람들의 이름이 엿보일 때면, 전화를 받기 전인데도 불구하고 숨이 턱 막힐 때도 있다. 스스로에게 참 미련하게도 부재중 전화가 찍히면 미안한 마음에 상대에게 다시 꼭 전화를 건다. 그러니 그렇게 마음 조릴 바에는 차라리 받고 만다. 이렇게 시시로 때때로 일상을 파고드는 전화들은 말 그대로 내게 ‘불편함’을 준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지만, 내게는 불편함 너머에 미안함이 언제나 앞자리를 차지한다.
이런 상황들에서 조금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스스로 바꿀 수 없는 상황과 현실이라면 조금 더 부드럽고 편안하게 인정하는 것. 내게는 그것이 바로 불편함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방법인듯 하다. 내일, 또 비슷한 시간에 전화가 걸려온다면, ‘왜 또 전화야’하고 속을 삭히는 마음가짐이 아니라, ‘그래, 그럴 줄 알았다. 얼른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렴’ 하고 받아들여야겠다. 누군가는 이를 단념했다 말할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포기했다 말할 수 있지만, 나는 그저 ‘불편함을 편안하게 받아들인 것’이라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