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저녁(秋夕)
수줍은 햇님
한바탕 발그레 붉히고 나면
늠름한 가을 달 빛
연한 구름 옷 입고
노오란 불 밝혀준다.
선선한 밤공기
한 움큼 들이마시면
마음속 실타래
봄 만난 눈처럼
사르르 녹아져 간다.
달 빛 속에
숨바꼭질하던 그림자는
밤이 깊어 가는 줄 모르고
나무 뒤에 숨었다,
바위 밑에 기대어 잠든다.
담장을 넘는
웃음소리는 그칠 줄을 모르고
여름내 연습했던
귀뚜라미 가을 노래에
너나 할 것 없이 흥겹지만
올 수 없는 아들자식 마음에 담아
마을 밖 어귀를 서성이는
애닳던 할머니 마음은
뾰족한 산 봉우리만큼 깊게 저려온다.
누구에게나 아름다웠던 가을 저녁(秋夕)이
유독 그에게는 추석(醜夕)이 되어 그리움에 사무친다.
*秋夕-추석,명절 *醜夕-추할 추. 저녁 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