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리틀 포레스트

고향에서의 요양 그리고 '아주심기.'

by uncommon jerry
아주심기

선배 언니가 안부를 물으며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는데 고향에 내려가 심신안정을 취하고 있는 내가 생각났다며 영화를 추천해주었다.

예전부터 보고 싶긴 했는데 명목이 생긴 것 같아 잠 안 오는 새벽에 누가 깰세라 조용히 거실에서 영화를 틀었다. 사실 아무 방해도 받고 싶지 않아서 새벽을 택한 것이기도 했다.


분명 호불호가 갈릴 영화였다. 보다가 잠이 드는 사람도 있을 테고, 잔잔함이 좋아 영화 속 풍경, 음식, 소리만으로도 힐링이 된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법한 영화였다.

본래 잔잔하고 조용한 영화나 독립영화를 즐겨 보는 나로서는 보기 편했고, 퇴사 후 고향에 잠시 내려와 쉬고 있는 내 상황에서는 더욱 공감이 될 수밖에 없는 영화였다.

물론 나는 영화 속 김태리(극 중 혜원)처럼 직접 과일이나 채소를 기르고, 정성스레 요리를 하는 삶을 살고 있지도 않고, 대리만족을 하기엔 현실과 거리가 멀다는 한계점이 있지만 그래도 지금 내 상황에서는 대사 하나하나가 절절히 다가왔다.


그중, 인상 깊었던 대사를 적어본다. 기록을 위해서도, 나처럼 퇴사를 하지는 않았어도 순간순간 퇴사 욕구가 불타오르거나 하루하루 고단한 삶에 치이는 독자들이 있을 테니까. 아마 나와 똑같이 대사 하나에 작은 위안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영화 '리틀 포레스트'

"이렇게 아무렇게나 던져 놓아도 다시 싹을 틔울 수 있으려면 노지에서 햇볕을 듬뿍 받고 완숙에서 딴 토마토여야 한다. 토마토는 비에 너무 약하다. 계속해서 비를 맞으면 성장점이 갈색으로 변하고, 그대로 쭈글쭈글해서 시들어 버린다. 토마토는 노지재배가 쉽지 않아 늘 복불복이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토마토

"양파는 모종심기에서 시작된다. 아주심기. 더 이상 옮겨 심지 않고 완전하게 심는다는 의미이다.

아주심기를 하고 난 다음에 뿌리가 자랄 때까지 보살펴주면 겨울 서리 밭에 뿌리가 들떠 말라죽을 일도 없을뿐더러 겨울에 심은 양파는 봄에 심은 양파보다 몇 배나 달고 단단하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아주심기

"회사 생활이라는 게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게 그렇게 많지 않더라구. 생각할 여유도 없이, 왜 사는지도 모르겠고. 어느 날인가 문득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터질 거 같더라고. 적어도 농사에는 사기, 잔머리 이런 건 없잖아.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편하다야"


"그렇게 바쁘게 산다고 문제가 해결이 돼?"


"실패할 수도 있고, 또 너무 늦은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있지만 엄마는 이제 이 대문을 걸어나가 나만의 시간을 만들어갈 거야. 모든 것은 타이밍이라고 엄마가 늘 말했었지. 지금이 바로 그때인 것 같아. 엄마가 서울로 돌아가지 않은 이유는 너를 이곳에 심고, 뿌리내리게 하고 싶어서였어. 네가 힘들 때마다 이곳의 흙냄새와 바람과 햇볕을 기억한다면 언제든 다시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거라는 걸 엄마는 믿어.

지금 우리 두 사람, 잘 돌아오기 위한 긴 여행의 출발선에 서있다고 생각하자.

그동안 엄마는 자연과 요리, 나에 대한 사랑이라는 숲 속에 있었다. 나도 나만의 작은 숲을 찾아야겠다."



이 영화에 대한 분석은 전문가들께서 이미 해주셨을 테고, 나는 그냥 내 생각을 언제나 그랬듯 의식의 흐름대로 담아본다.


너무 감정이입을 하고 봐서일까, 극 중 혜원이 말한 '토마토'도 나 같았고, '양파'도 나 같았다.

부모님이든 친구든 연인이든 나 자신으로부터든 사랑을 듬뿍 받은, 자존감이 높은 '완숙'의 토마토는 어디에서든 잘 살아남을 수 있다.

하지만, 자존감이란 것은 풍선처럼 어쩔 땐 부풀어 올라 있다가도 순식간에 김이 빠져버리기도 한다. 상처, 아픈 말, 아픈 사건, 분노, 좌절, 실패와 같은 '비'에 토마토가 약한 이유다.

계속해서 그 비를 맞으면 토마토가 시들어 버리는 것처럼 반복되는 상처가 깊어질수록 우리의 자존감도 밑바닥을 치게 되어있다. 토마토는 노지재배가 쉽지 않아 늘 복불복이라고 했다. 우리 삶도 늘 복불복이다.


극 중 혜원이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떨어진 후, 서울에서 내려온 것처럼 나도 어떻게 보면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듯 떠나왔다. 혜원은 "긴 겨울을 뚫고 봄의 정령이 나올 때까지 있으면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라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물러터지기 직전의 토마토 같았던 나는 터져버리기 전에 고향으로 내려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도망칠 수 있는 고향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물론 고향에 있다고 해서 마음이 편한 것만은 아니었다. 언젠가 내가 '그냥 고향에 정착해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평화롭고, 조용하고, 바쁘게 살지 않아도 되고. 치여 살지 않아도 되잖아.'라고 말했더니 아빠는 그래도 큰 물에서 놀아야 한다고 하셨다.

딸이 광화문 한복판에서 일하는 게 자랑스러워 내가 일하는 빌딩을 보며 웃음을 감추지 못하셨던 아빠였으니까, 도망치듯 내려온 내가 충분히 루저 같아 보였을지도 모른다.


'겨울이 지나면 좀 더 단단해질 수 있을까?' 의문을 품으며 고향에서 반년을 지낸 지금, 다행히 나는 이제 그 물음에 자신 있게 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겨울을 지내며 단단해졌으니까.

하지만, 그게 고향에서 지냈기 때문은 아니라는 걸 확실히 알고 있다.

도피처가 있는 것은 다행이지만, 도피처가 영원한 쉼터가 될 수 없는 것처럼.


내가 도전해 보고 싶은 일이 생겼고, 새로운 목표가 생겼고, 설령 아무런 목표가 생기지 않았다고 해도 무엇보다 겨우내 내 자존감을 회복하는 일을 최우선으로 삼았기에 단단해질 수 있었다.

고향에 내려오기 전 퇴사로 인한 스트레스와 우울함이 극에 달해 있었고, 긴급처방이 필요했다.


긴급처방에는 워홀도 있었고, 짧은 여행도 있었고 다양한 방법이 있었다. 그런데 긴급처방은 말 그대로 긴급처방일 뿐이라는 걸 알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다. 내가 세계 어디에 가서도 살아남을 수 있으려면 뿌리 깊은 자존감이 전제되어야 하니까. 약한 뿌리를 가지고서는 어차피 어딜 가든 흔들리고 뽑혀버리기 마련이니까.


조금은 단단해졌다고 말하는 지금도 여전히 상처받으면 눈물이 나고 때로는 자존감이 약해졌다가 강해 졌다가를 반복한다.

그래도 이제 하나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내 무너진 자존감은 어떻게든, 반드시 꼭 회복시켜야 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내가 아닌 그 누구도 회복시켜줄 수 없다는 것을. 우울한 감정에 사로잡혀 내가 영화 속 비련의 주인공인 것처럼 슬퍼하고 나 자신을 동정하며 때론 그런 감정에 중독되기 까지 하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을 망치는 일이라는 것을.

사실은 나 외롭다고, 나를 좀 더 봐달라는 표시를 하고 싶어서, 그냥 내 세상 안에 갇혀서 남들이 먼저 나를 끌어내 주기를 기다리는 것은 토마토를 망치는 '산성 비'나 다름없는 것임을.


이 진리를 그간 수많은 책, 조언, 상담 등을 통해 귀가 닳게 듣고 또 들었지만 머리로 이해는 해도, 진정으로 가슴으로 이를 이해해야만 우울감을 극복하고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는 사이클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사람은 흔히 슬픔을 센다. 만약 기쁨을 센다면 훨씬 행복해질 것이다."라고 했다.

삶의 의미가 없다고 느껴 퇴사를 했고, 삶의 의미를 찾으려 방황했다. 그런데 이제서야 그의 명언이 이해된다.

"삶의 의미보다 삶 그 자체를 더 사랑해야 한다."


삶의 의미를 찾기보다 삶 그 자체를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요즘,

나만의 작은 숲을 찾으면서 지냈던 사진들로 오늘을 마무리한다.


20180418_튤립
20180419_여름단풍
20180419_동백
20180421_편백
20180421_녹차밭
20180421_숲
20180421_강진
20180425_분홍 동백
20180426_동백
20180428_청보리밭
20180428_고창 선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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