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결정 뒤에 따라오는 두려움과 끝없는 의문
Destination
퇴직금과 적금을 밑천으로 네덜란드, 독일, 호주 워홀 및 유학 등의 선택지를 거쳐 결국 퇴사 후의 행선지가 정해졌다. 원래 영어단어 어원이나 의미에 대해 그리 심오하게 들여다보는 영문학 소녀는 아니지만 글을 쓸 때마다 단어 하나하나를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어 글 쓰기의 재미가 하나 더 추가된 느낌이다.
내 주관적인 해석으로 이번 행선지(destination)는 나의 운명(destiny)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는데 destination 역시 ‘destined to go’라는 의미에서 파생된 단어라고 하니 이젠 끼워 맞추기의 달인이 되어가나 보다!
어릴 적 감사하게도 짧게나마 뉴질랜드에서 보낸 어학연수의 기억이 너무 좋아 택했던 호주 교환학생 시절, 스무 살이 넘어 다시 가 본 뉴질랜드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사람들의 정겨움, 웃음소리, 여유로운 분위기, 푸른 하늘, 그냥 모든 게 좋았나 보다. 기념품샵에서 집어 든 ‘초록 들판 위 빨간 지붕의 집’이 너무 평화로워 보여 ‘한국에 돌아가면 이걸 책상 위에 두고 언젠가 나도 꼭 이런 집을 짓고 이런 곳에서 살아야지!’라며 이곳에 다시 돌아오려는 다짐을 잊지 않게끔 나 자신을 채찍질해보자고 혼자 생각했었다.
그때 했던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려 했던 것인지, 무언가 미련이 남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오세아니아로 돌아가고 싶은 열망은 계속 내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었나 보다.
독일로의 어학연수를 거의 확정 짓고 있었던 무렵 새벽까지 잘 깨어있는 나는 그날도 새벽 5시까지 이것저것 진로에 대해 고민하다가 우연히 호주 유학 박람회가 당일 개최된다는 걸 알게 되었고 미련으로 남아있던 호주에 다시 한번 삘이 제대로 꽂혀 채 몇 시간 안 자고 박람회에 다녀왔다.
예전에 부쉬 파일럿 오현호 파일럿의 강연을 듣고 와서 “내가 좋아하는 것”과 “내가 잘하는 것”에 대해 일기장에 적어뒀었는데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둘의 교집합에 들어맞는 일이었던 것이다. 해본 적 없기에 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해보고 싶어 졌다.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느낌이 이런 걸까 생각하며 들뜬 마음에 내가 그토록 다시 돌아가고 싶었던 호주, 그리고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호주에서 필요로 한다면 ‘이건 진짜 기회이고 운명!’이라 또 한 번 끼워 맞추기 신공을 발휘했다.
유학 박람회에 다녀온 이후 내가 가려는 과정이 결국 부모님께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는 것임을 알게 되었고, 몇 번을 속으로 되뇌다 새해 첫날 말씀드렸다. 결론은 내가 지금 과한 욕심을 부리는 게 아닌지 다시 생각해보라는 것.
새해 첫날, 어떤 사람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하루라고 생각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새로이 시작하는 하루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든 누구든지 새해에 대한 막연한 기대는 아주 조금은 가지고 있지 않은가. 나는 ‘의미부여’를 많이 하는 사람이기에 새해는 내게 새로운 시작을 의미했고 부모님께 받은 답변은 가히 절망적이었다.
그 날 얼마나 울고불고 뾰로통하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좌절감을 가라 앉히려 시작한 독서와 명상, 일기 쓰기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해주었다. 천천히 일기장에 내가 왜 호주에 가고 싶은지, 왜 이민을 생각하는지 적어보았다. 모든 이유는 하나로 귀결되었다. 현재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없어서. 정말 그랬다. 내가 어디에 있든 감사하는 마음 없이 살면 그곳에 가서도 불행할 텐데,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당연하다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글을 쓰다 보니 수행을 하러 떠나는 사람의 일기가 아닌지 오해받을 만도 하지만, 2018년 새해, ‘감사하는 마음’에 대해 깨우쳤고, 새해는 정말로 내게 큰 전환점이 되어 주었다.
그렇게 마음을 비우니 퇴사 후 한 달은 가히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행선지도 없었지만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그 상태가 좋았다. 오랜만에, 중학교 이후 처음으로 길게 가져보는 부모님과의 시간도 좋았다. 하지만 세 달이 지나자 부모님은 아무 말씀 안 하셔도 나 혼자 눈치가 보였다.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뭐라도 해야 될 것 같은 강박관념에 다시 사로잡혔다.
3월, 매일 줄어드는 통장 잔고를 보다가 못 견디고 영어학원 강사로 알바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 내 몸은 일만 하면 스트레스를 받는 몹쓸 몸이 되어버린 걸까, 두 달 뒤 내 몸은 다시 이상신호를 보내왔고 결국 알바도 못하게 되었다.
그렇게 다시 쉬게 되니 이젠 앞으로의 행선지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방황에 방황을 거듭하던 중, 결정에 도움을 준 좋은 분들을 만났고 덕분에 새로운 분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상주의자인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해야 할 것만 같은 그 분야의 공부를 해보기로 결정했다.
대학원 진학에는 각자의 다양한 이유가 있다. 정말로 그 분야에 뜻이 있어서, 학자의 길을 걷고자 진학한 사람도, 취업이 안돼서 혹은 미루려고 진학한 사람도, 혹은 나처럼 퇴사 후 하고 싶은 공부를 하려는 사람도. 잘 안다. 퇴사 후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이 일종의 도피처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 솔직히 아니라고는 대답 못할 것 같지만,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이제 조금씩 내 인생의 중심을 잡아가고 있다는 것.
이렇게 행선지가 정해진 이후에 딸려오는 두려움, 잘할 수 있을지, 내가 너무 섣불리 결정한 건 아닌지에 대한 끝없는 의문이 아직도 나를 불안하고 흔들리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사람은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고, 그렇기에 우리 인생이 더 굴곡지고 재밌는 게 아닌가 싶다. 경험을 하려면 그게 무엇이 됐든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지만 경험하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 해보고 후회하는 게 좋다는 신조를 가진 나로서는 이미 마음먹은 이상 이제는 열심히 공부하는 것 밖에는 답이 없는 듯하다.
나이만 먹었지 속은 철없는 어린 아이라 아직은 현실에서 겪을 좌절감이 먼저 그려지기보다는 새로운 도전에 대한 설렘이 더 큰 것에 감사해하며 잠을 청해 본다.
행선지가 확실히 정해진 이상, 처음으로 내가 해보고 싶은 일을 스스로 정한 이상, 앞으로는 그 과정 속에서 내가 넘어지고 일어서는 모습을 생생하게 기록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