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를 이해하는 방법
나는 오타쿠인가. 스스로에게 자주 던지는 질문.
지금 나의 덕력은 혼모노에 전혀 비할 바가 아니지만 학창 시절에는 확실히 그런 기질이 있었다.
당시 나는 '오나의여신님'의 열렬한 팬이었고, PC 통신에 눈을 뜬 이후에는 천리안의 OMG(Oh My Goddess) 동호회에서 죽돌이처럼 시간을 보냈다. 당시 OMG 동호회에는 매우 준엄한 규칙이 하나 있었는데, 가입자는 모두 여신님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닉네임을 사용하되, 절대유일인 ‘베르단디’의 이름만큼은 누구에게도 허용되지 않았다. 공지를 제대로 읽지 않은 신입 회원이 베르단디 같은 레어닉이 아직도 남아있음에 의아해하며 ‘[베르단디] 가입 인사 드립니다’ 같은 글을 올렸다가는 올드비들의 성난 지탄이 순식간에 게시판을 뒤덮었다.
당시 신촌 그레이스백화점 앞에서 만났던 첫 번개 모임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사춘기 이후이성과 처음으로 말을 섞어본 날이었다) 볼링을 치고 햄버거를 먹고, 근처에 있던 시삽 형의 집에 놀러갔는데 그 형이 은밀하게 여신님 동인지를 보여주었다. 얇고 조잡한 묶음 제본이었지만 수십 권에 달하는 컬렉션, 그리고 그 농밀함. 와 새로운 세상, 눈에 덜컥 떠졌다. 하지만 동시에 몹시 불결하다고 느껴서 집단 탐독의 틈바구니에서 슬며시 빠져나왔다.
팬심을 드러내는 것에도 주저함이 없었다. 1994년 겨울, 집에 처음으로 컬러 프린터가 생겼고, 그걸로 가장 먼저 한 일은 여신님 OVA의 스틸컷을 출력해서 입학을 앞둔 고등학교 교과서 표지를 싸는 일이었다. 십수권에 달하는 모든 교과서에서 베르단디가 다양한 표정으로 나를 맞아주었고, 그것이 부끄럽기는 커녕, 빨리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어 조바심이 날 정도였다. 입학한 후에는 반 친구들의 소극적인 반응이 무척이나 의외라고 생각했고, 아마도 여신님을 모르기 때문에 부러워하지 않는 것이라 여겼던 것 같다. 그래서 랩실에서 진행하던 일본어 수업 시간에는 선생님을 설득해 여신님 OVA를 다 같이 시청하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베르단디가 특별히 화제가 되진 않았다.
그 때를 생각하면 아마도 나는 덕후가 맞을 것이다. 오타쿠, 즉 ‘당신’ 혹은 ‘댁’이라는 의미의 이인칭은 오타쿠를 정의하는 매우 주요한 특질이다. 비평가인 나카지마 아즈사에 따르면, ‘오타쿠’라는 총칭은 70년대에서 80년대에 걸쳐 오타쿠들이 서로를 ‘오타쿠’라고 불렀던 데에서 비롯되었다. ‘댁’이라는 단어에서 드러나듯, 오타쿠는 개인적인 관계에서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집 단위의 관계, 즉 자신의 영역을 등에 짊어지고 표출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오타쿠들이 “커다란 종이봉투에 산더미 같은 책이나 잡지나 동인지 또는 기사 스크랩 등을 가득 채워소라게의 이동을 방불케 할 만큼 어디나 가지고 다니”는 것은 그들이 항상 ‘자아의 껍데기’, 즉 귀속 집단의 환상 그 자체를 들고 다니지 않으면 정신적으로 안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타쿠’라는 이인칭에는 그와 같은 귀속 집단의 환상을 서로 승인하는 역할이 주어져 있다.
(p58)
오타쿠의 이인칭은 귀속 집단의 환상을 서로 승인하는 역할에서 비롯되었다니, 이렇게 비수와 같은 통찰은 본 적이 없다. 같은 캐릭터를 좋아하더라도 연적의 적대감보다는 동료의 연대감이 느껴졌던 것은 이 때문인가. 네가 있기에 내가 있을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로망인 것이냐!
이 책은 포스트모던의 맥락에서 오타쿠를 분석하고 그들의 사회문화적 특질을 연구한다. 오카다 도시오, 나카지마 아즈사와 같은 오타쿠학의 선구자들을 자주 인용하기도 하며, 오타쿠에 대한 비수와 같은 통찰이 번득인다. 2005년에 쓰여진 책이라 레퍼런스들이 꽤 철지난 것들이긴 하지만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
몇 가지 흥미로운 내용을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다.
오타쿠계 문화는 미국산 재료로 만들어진 fake(의사) 일본이다.
무라카미 다카시는 7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의 화면 구성이나 90년대의 피규어 조형이 일본 전통 문화의 특징을 상당히 차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논의가 아니더라도 오타쿠계 작품들과 일본적인 이미지는 매우 친화적이다. <시끌별 녀석들>에서 드러나는 민속학적 아이템, 많은 작품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무녀의 이미지 등이 그러하다. 그러나 오타쿠계 문화의 일본에 대한 집착은 전통을 바탕으로 성립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전통이 소멸된 뒤에 성립된 것이다. 패전으로 인한 주체성을 상실하지만, 이로 인해 충분히 근대화되지 않았기에 오히려 거꾸로 가장 쉽게 포스트모던에 적응한 것이다. 즉 요약하자면 전통(에도) – 근대(서구) – 포스트모던(일본)의 흐름이다.
그러나 오타쿠들이 만들어낸 일본적인 표현이나 주제는 모두 미국에서 수입된 서브컬쳐에서 시작된 것들로, 미국산 재료로 만들어진 이차적이고 기형적인 것들이다. 동시에 80년대의 내셔널리즘과 연결되어 세계의 최첨단에 선 일본이라는 환상을 가져다주는 페티시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오타쿠들이 만들어낸 의사 일본적인 독특한 상상력은 미국산 재료로 출발해 지금은 그 영향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독립된 문화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문화적인 전통은 메이지 유신과 패전으로 두 번 단절되었다. 따라서 80년대의 내셔널리스틱한 일본이 만약 패전의 영향을 잊고 미국의 영향을 잊으려고 한다면 에도 시대의 이미지로까지 되돌아가는 것이 가장 손쉽다. 그러나 거기서 나타나는 ‘에도’도 현실의 에도가 아니라 일종의 허구인 경우가 많다.
시뮬라르크의 증식
보드리야르는 포스트모던 사회에서는 작품이나 상품의 오리지널과 복제의 구별이 약해져 그 어느 쪽도 아닌 ‘시뮬라르크’라는 중간 형태가 지배적이 된다고 예측했다. 2차 창작을 통해 원작과 패러디를 동일한 가치로 소비하는 오타쿠계 문화는 확실히 시뮬라르크의 수준에서 작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 뿐만 아니라 생산자까지도 오리지널과 복제의 구별이 사라져 있으며, 선행 작품의 모방과 인용이 많기에 시뮬라르크의 시뮬라르크가 동인 활동에 의해 증식되고 소비되어 간다.
커다란 이야기의 조락
오타쿠들은 확실히 사회적 현실보다 허구를 중요시한다. 그러나 이것이 현실과 허구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이 취미의 공동체에 갇히는 것은 사회성을 거부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적인 가치 규범이 잘 기능하지 않아 다른 가치규범을 만들 필요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있어 신문을 들고 카페에 가는 것보다 애니메 잡지를 들고 코미케에 가는 것이 또래 집단과의 커뮤니케이션에 더 유효성이 검증된 방법인 것이다. 이렇게 커다란 사회적 규범이 유효성을 잃고 무수히 작은 규범의 밀림으로 교체되는 과정이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가 지적한 ‘커다란 이야기의 조락’에 대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