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있는 이름들
그 공원의 오래된 벤치는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 시간을
고스란히 품은 채 놓여 있었다.
등받이엔 크고 작은 이름들이
칼끝으로, 열쇠로, 혹은 돌멩이로
어설프게 새겨져 있었다.
누군가는 이 벤치에서 사랑을 시작했고,
누군가는 이 벤치에서 이별을 기다렸을 것이다.
누군가는 친구와 장난처럼 쓱쓱 긁어 넣었을 테고,
누군가는 혼자였기에 더 용기 내어
자기 이름을 남겼을지도 모른다.
이름들 사이에는
지워진 흔적과 덧그어진 선들이 뒤엉켜 있었다.
시간이 지나며 색이 바래고 나무결이 벌어졌지만
그 자국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벤치에 몸을 기대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 흔적들을 스쳐 보기만 하고
자기 자리의 편안함만 확인한 뒤 자리를 떠났다.
그러나 햇빛의 각도와 계절의 냄새가 바뀔 때마다
그 이름들은 다시 선명해졌다.
누가 새기고, 누가 지우려 했고
누가 이 자리를 지켜봤는지는
아무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한 가지,
매일 오후 같은 시간에 벤치에 앉는 한 노신사는
등받이에 손바닥을 대고
천천히 굴곡진 자국을 따라가곤 했다.
그는 말이 없었고,
손끝에 닿는 요철만으로 시간을 읽는 듯했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이름들을
마치 낡은 기록물처럼 더듬어 나가는 그의 모습은
조용히 묻어두었던 누군가의 시간을 끄집어내는 듯했다.
그리고 햇빛이 뒤로 넘어가 붉게 기울 때쯤,
그는 매번 같은 속도로 손을 떼고 일어났다.
그의 걸음 뒤에 남겨진 건
말 대신 손끝으로 읽어낸 이야기였다.
오늘도 벤치는 누군가의 이름을
조금 더 깊게 품어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