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잃어버린 건지, 네가 나를 떠난건지
몇 달 전에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반지가 있었다. 왼쪽 엄지손가락에 늘 끼고 다니던 것이 없으니 허전했다. 아쉽긴 했지만 다른 반지는 맘에 드는 것이 없을 것 같아서 굳이 새 걸 찾아나서진 않았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날, 옷장 구석에서 옷 위에 정갈하게 자리한 그녀석을 찾았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만나니 반가웠다. 하지만 이미 난 다른 반지를 구매했고, 내 왼쪽 손의 엄지는 그 친구와는 전혀 다른 생김새의 비즈반지가 자리를 차지했다. 비즈반지는 은색의 실반지였던 것과 달리 아기자기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고 억지로 어른스러워 보이려 하지 않아서 마음이 갔다.
은색의 실반지는 어린 티가 나는 나를 감추기 위해 끼기 시작했었다. 내가 생각하는 성숙한 어른들은 보통 멋있는 은색 실반지 하나쯤을 끼고 있길래 나도 그런 걸 끼면 좀 어른스러워보일까 싶어서 말이다.
사실 잘 안 어울렸다. 나쁘지 않았지만, 흔히들 '착붙'이라고들 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반지의 착용감이 그리 좋은 편도 아니었고, 없는 것보단 낫다는 생각으로 가지고 다녔다. 그래서 구매한 지 그리 오래 지나지도 않았는데 내곁을 떠났던 걸까
내게 어울리는 것을 찾아가기가 힘들다. 결국 억지스럽게 끼워맞춘 조각은 언젠가 떨어져나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억지를 마냥 미련하게만 보고 싶진 않다. 억지를 부려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을 터니까.
남은 퍼즐조각이 없었거나, 마지막으로 남은 빈 공간이 흉해보였다거나, 오늘만큼은 완성을 하고 싶었다거나 여러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들은 꽤나 그 순간에 간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그렇게 큰 일도 아닌데 왜 목을 멨을까. 빈 공간이 그렇게나 보기 싫어 필사적으로 가리고 싶었다면 색칠을 했어도 될텐데.. 다른 그림을 끼워넣었어도 됐을 텐데.. 아니면 다른 재료를 넣어도 채워지긴 했을텐데 말이다. 전체적인 모습은 이질적이라도 다른 방법이 없지 않았을텐데.. 왜 꼭 그 퍼즐조각이어야만 했을까? 한 순간의 집착은 사람을 괴롭게 만들곤 한다.
나는 반지를 수없이 많이 잃어버렸다. 이 아이들도 결국 나를 떠나야만 하는 나름의 이유들이 있었을까. 그렇다면 마음이 조금 편해진다. 그동안 나에게만 초점을 맞춰 자책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나는 반지를 쉽게 잃어버리는 사람이라고,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늘 책임을 물었는데, 만약 그들이 나를 떠난거라면? 맞지 않는 곳에서 벗어나기 위한 그들의 필사적 노력이자 자연의 순리였다면 나는 나를 덜 미워하게 된다.
그러니 나와 맞지 않는 이들은 나를 떠나가도 좋다. 서로의 안녕을 비는 고귀한 작별일테니 말이다. 아무에게도 책임을 묻지 말고 그저 그렇게 인사하는 것은 이질적이더라도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