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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Mar 26. 2022

인생 최대 몸무게 경신

밀가루랑 설탕을 그렇게 먹는데 안 찌겠냐!

살면서 처음이었다.

몸무게가 단기간에 그렇게 불어난 건.

나는 살이 안 찌는 체질인 줄 알았건만!



중2 때 키와 몸무게가 스무 살 초반까지 똑같았다.

( - 초경과 동시에 성장판이 닫힌 것으로 추정)

(몸무게 - 가족들  살찌는 체질은 아님)


평생 다이어트라는 걸 해본 적도 없었고

먹는 양에 비해 정말 살이 안 찌는 체질이라

신진대사가 높나 보다 하고 오만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한 달 반 만에 7kg가 늘어났다.

살찌는 거 정말 순식간이더라.

무서운 건 살이 찌는 중엔 찌는 줄도 모른다는 거.

단기간에 급격하게 살이 불어나면

몸에 튼살이 생긴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인생 최대 몸무게를 기록한 비결은...

아니, 주범은 식습관이었다.

캐나다에서 지낸 지 반년이 지나니 달라진 생활환경에 따라 식습관도 완전히 바뀌었다.

평소에 먹지 않던 걸 과하게 먹은 게 문제였다.


1. 누텔라

'악마의 잼'이라 불리는 누텔라의 맛을 알아버렸다. 

자꾸자꾸 퍼먹고 싶은 맛! 진짜 심할 때는 밤에 누텔라 뚜껑을 열고 숟가락 채로 퍼먹기도 했다.

식빵이나 바게트 빵에 발라 먹으면 한 봉지 뚝딱.

마트에 갈 때마다 세일은 왜 그렇게 하는지.

뿌리쳐내기 힘든 Buy1 get1 free의 유혹!

룰루랄라 두 통을 사 와서는 쟁여놓고 먹었다.


게다가 풀타임으로 일하던 베이커리에서는 런치 타임에 크레페 메뉴를 직접 자유롭게 만들어 먹을 수 있었다. 초반엔 비교적 건강하게(?) 먹었다. 버섯과 시금치와 참치에 후추와 소금을 뿌리고 아메리칸 치즈를 올려 먹으면 든든한 한 끼가 된다.

하지만 누텔라에 빠져있을 땐 매번 디저트 메뉴로 만들어 먹었다. 밀가루 반죽에 누텔라 초코잼을 원하는 만큼 잔뜩 펴 바르고, 딸기에 바나나까지 야무지게 썰어 넣었다. 그 위에 데코 한답시고 복숭아와 휘핑크림까지 올려서 먹었으니.

마트에선 구하기 힘든 특대형 누텔라를 들고 사진까지 찍을 만큼 누텔라 사랑이 대단했다. jpg


2. 남은 빵들은 내 뱃속으로!

클로징 타임을 맡게 되면, 그날 팔고 남은 빵들을

챙겨갈 수 있었다. 일부 몇 가지 종류만 제외하고는 하루를 넘겨 팔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멀쩡한 빵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게 아깝기도 하고 죄짓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웬만하면 항상 코워커들과 나눠서 챙겨갔다. (그래도 많이 남을 땐 어쩔 수 없이 버려지는 것들도 있었다.)


열 가지 종류가 넘는 <스크럼펫, 머핀, 쿠키>

파티시에가 만드는 지켜봐왔기 때문에

안에 들어가는 설탕의 양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그건 그거고, 맛있는 건 맛있는 거니까!

종이봉지에 두둑하게 싸와서 식탁에 올려두면

룸메이트 친구들도 고맙다며 맛있게 먹었다.

(그들도 뒤로 갈수록 물렸는지 잘 안 먹긴 했지만)


그중 라즈베리 스크럼펫,  바나나 리프, 커피모카 초콜릿칩머핀, 캐럿케이크를 제일 좋아했는데, 그것들을 싸오는 날이면 저녁에 우유와 함께 간식으로 뚝딱 해치우곤 했다. 얼마나 맛있었는지 모른다. 게다가 스크럼펫은 크림치즈랑 같이 먹어야 제 맛이기 때문에 잔뜩 올려 먹기까지 했다.

밀가루와 설탕 범벅에 치즈까지 곁들이니 살이 안 찌는 것도 이상했다. 살이 찌고 있는 줄도 모르고 빵순이는 빵집에서 일하는 게 그저 행복했다.


3. 멕시칸 음식 + 프렌치프라이

주중 멕시칸 푸드 체인점에서 파트타임 캐셔로 일했는데, 여기서도 점심을 내 맘대로 만들어 먹을 수 있었다. 멕시칸 음식을 워낙 좋아해서 재료를 이것저것 조합해 메뉴에 없는 내 맘대로 부리또, 타코, 케사디아를 매일매일 신나게 만들어 먹었다.

거기에 사이드로 갓 튀겨낸 프렌치프라이는 기본값이었다.  


외국에 나와서도 식비를 무시할 수 없는데

일터에서 마음껏 끼니를 즐길 수 있어서 감사했다.


그뿐이랴, 피자와 탄산음료도 엄청 먹었다.

다양한 나라의 문화가 공존하는 캐나다에서는

다운타운 한 골목만 걸어도 이 나라 저 나라

새로운 음식을 쉽게 접하고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다소 과하게 신나게) 섭취한

모든 것들은 내 몸에 살로 붙어버렸다.

돌이켜보니 살이 찌는 동안엔

몸의 움직임이 조금 둔해지는 느낌이었을 뿐

별다른 낌새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와중에 건강 챙긴답시고

아침은 누룽지와 채소를 꼬박 챙겨 먹었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

밀가루 덩어리 + 설탕 범벅 + 기름 범벅

그렇게 먹어댔으니 7kg만 찐 게 다행이었을지도.


그때 생겨버린 영광의 튼살은

지금도 미세하게 엉덩이와 허벅지 쪽에 남아있다.


한국에 돌아왔을 땐, 가족들이 나를 보고 놀랐다.

하지만 다행히도 부지런히 움직이다 보니

세 달쯤 지나 자연스레 예전 몸무게로 돌아갔다.




지금은 나잇살이 붙어 좀 더 나가지만

아직까지 인생 최대 몸무게는 경신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살이 잘 안 찌는 체질'이라는

오만방자한 말도 입에 올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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