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월 Aug 19. 2022

벚꽃 필 무렵, 달리기 대회

The Vancouver SUN RUN

진분홍 연분홍 빛깔의 벚꽃이 만개하는 밴쿠버의 4월. 다운타운에서는 선 런(SUN RUN) 마라톤 대회가 열린다.

밴쿠버 로컬 신문사 The Vancouver Sun에서 1985년부터 매년 4월 셋째 주 일요일에 개최하는 대규모 행사이다. 일주일 전에 동료로부터 마라톤 발룬티어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솔깃했다. 여행 중에는 평소에 잘하지 못했던 것들을 자진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캐나다에 있을 때 해볼 수 있는 것들은 다양하게 경험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바로 신청했다.

마침 쉬는 날이 발룬티어 데이였다. BC 플레이스 스타디움으로 갔다. 당시 화이트캡스에서 뛰고 있던 이영표 선수 경기를 보러 가야지 하면서 못 가고 있었는데, 발룬티어로 경기장 내부에 처음 들어가 보게 됐다. 과연 오늘 어떤 일을 돕게 될까. 기대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직 언어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잘할 수 있을지 떨리기도 했다. 체크인 표지판을 따라 들어가니 선수들의 라커룸이 나왔다.

자원봉사도 식후경! 봉사자들을 위해 챙겨준 치킨 샌드위치와 커피. 디저트로 과일과 에너지바까지 알찬 구성의 런치박스였다. 발룬티어들은 대부분 청소년과 대학생 또래들이었는데 입구에서 나눠준 노란 형광색 크루 티셔츠를 다 같이 입고 대기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드디어 발룬티어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마라톤 참가 신청자들이 하나둘씩 스타디움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가 오늘 맡게 된 업무는 참가 신청자들에게 '번호표'를 나눠주는 것! 참가자들이 자신의 이름과 온라인에서 확인하고 온 'BIB 넘버'를 말하면, 번호표를 찾아주면 끝이다. 번호표를 받아서 Chip Check까지 마쳐야만 마라톤을 치를 수 있다. 참가자들은 각자의 기록 측정용 넘버칩으로 스타트 지점을 통과하는 순간부터 끝 지점에 도착하는 시간이 기록이 되는 것이다. 보통 한국에서는 티셔츠나 용품을 집으로 배송해주는데, 모든 참가자가 직접 두발로 와서 수령해가는 시스템이었다.

나는 그린 넘버 라인을 맡았다. 반나절 동안 발룬티어 활동을 하면서 얻게 된 뜻밖의 재미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번호표를 나눠주며 온갖 영어 이름을 듣는 재미였다.

스포츠 관련 각종 의류, 식품류, 드링크류 브랜드 페어도 경기장 내부에서 열렸다. 참가자들은 번호표와 공식 티셔츠뿐만 아니라, 에너지바와 음료를 양손 가득 받아가지고 간다.




마라톤 대회 당일, 오전 8시.

나는 비록 대회 신청은 안 했지만 현장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었다. 바로 집 앞이라 크루 티셔츠를 입고 아침 일찍 나섰다. 그랜빌 스트릿 런던 드럭스 앞부터 시끌벅적 활기찼다. 조지아 스트릿은 전면 차량이 통제됐다. 이곳에서부터 시작해서 스탠리 파크를 한 바퀴 도는 10km 코스의 레이스. 일 년에 한 번뿐인 달리기 축제를 즐기기 위해 가족 단위부터 친구, 연인, 직장 동료들과 함께 온 러닝 크루들의 구성이 다양했다. 왕복 8차선 도로가 러너들과 구경하러 나온 사람들로 가득 매워졌다.


조지아 스트릿 위의 오색 빛깔 풍선들. 풍선 색이 곧 번호표 색깔이라 색깔별로 각자의 출발지점을 찾아간다. 연중 행사인 만큼, 방송사에서도 촬영을 나왔다. 모두의 시선을 이끈 슈퍼우먼 복장의 단체 참가자들. 인터뷰 현장은 보는 사람들에게도 대회를 앞두고 유쾌한 에너지를 줬다.  


SUN RUN  마라톤 코스 (10km)

참가자들은 다음날 월요일에 발간되는 The Vancouver Sun 신문 지면에서 본인의 이름과 달리기 기록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10km 코스를 완주하면 달린 보람도 있겠지만, 밴쿠버 구석구석의 봄 풍경을 감상하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한다. 발룬티어 활동만 하고 직접 달리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다. 4월에 밴쿠버에 방문할 기회가 또 있다면 그땐 마라톤에도 한 번 도전해보고 싶다.


밴쿠버에 살면서 행복했던 기억 중 하나는 스탠리 파크라는 대자연을 품은 도심 속 sea wall을 따라 맑은 공기 마시면서 걷던 시간들이다. 아침저녁으로 부지런히 달릴 수밖에 없는 환경. 자연의 품안에서 달릴 수 있는 일상의 축복. 밴쿠버에 오래 머물고 싶었다.



9시 정각. 마라톤 스타트 소리와 함께 어느 순간 인파들이 다운타운을 벗어나면서 휑 해졌다. 그들을 응원하며 아무 일 없었단 듯이 아침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 5월에는 BMO은행에서 주최하는 'BMO 마라톤 대회'도 열린다. 이 때도 발룬티어 활동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계절 내내 잔잔한 축제처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