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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부장 Jan 15. 2021

누구슈?

밭고랑 사이로 겨울이 내려 앉았다. 일단 별 탈 없이 한 해 농사가 마무리되어서 다행이다. 이 밭에서 우리 손을 거쳐 나고 자란 감사한 농작물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고구마, 콩, 배추, 무까지. 내 친구들에게도 나누어 주고 식탁에도 올라오기까지 그간의 사계절 풍경들이 함께 떠올랐다. 


그중 으뜸은 원두막 점심과 새참 시간이었다. 맛있고 힘나는 찬을 준비하는 것이 나의 사명이었다. 여름에는 얼음 띄운 콩국수에 냉커피, 가끔은 엄마가 좋아하는 반찬 많은 가정식으로, 바람 끝이 선선해지면 각종 부글부글 찌개를 끓였고, 고기반찬은 내가 먹고 싶어서라도 꼭 마련한다. 새참으로는 단팥빵, 호빵과 사철 과일들. 나도 참 부지런히 해 날랐다.


양파와 마늘을 심어놓고 고구마 수확을 하고 김장 배추를 뽑고 나면 사실상 밭농사는 할 일이 없다. 못 먹을 배추들만 나뒹굴고 땅은 꽁꽁 얼었다. 농한기 농부는 따듯한 아랫목 구들장에서 한 해 뭉친 근육을 겨우내 잘 풀어줘야 한다. 한의원 침도 맞으며 다음 농사를 위해 몸뚱이를 어지간히 고쳐놓아야 한다. 다시 쉬지 않고 몸을 써야 할 날이 두세 달 남짓이라는 것을 아니까. 한 해가 다르게 몸이 전 같지 않다는 것을 아니까. 

인건비 안 들이려고 우리 식구끼리 직접 지었다.

딸 퇴직금으로 장만한 밭이니 아빠는 이만한 금싸라기가 없다. 겨울이라고 놀리기는 아까우셨나 보다.  “고구마 다 캐면 이 자리에다 비닐하우스를 지을겨” 돈 아끼시려고 자재를 고물상에서 아름아름 싸게 모으신 데다 인건비 안 들이려고 우리 식구끼리 직접 지었다. 사실 거의 엄마 아빠 둘이 다 지었다. 비닐하우스 짓는 과정을 처음 보았다. 비닐하우스가 생긴 것은 심플하니 철재 파이프를 꽂아 세우고 비닐 씌우면 되는 거 아닌가했는데 모양새와는 다르게 품과 자재가 많이 든다는 걸 알았다.  몇 날 며칠 동안 작업을 했고 드디어  문을 달고 모든 작업이 끝났다. 


아빠는 평생 땅에서 지어지는 모든 농사일은 물론이고 가축 농장에다 공장일에도 잔뼈가 굵은 베테랑이다. 여전히 각종 장비를 잘 다루고 기운도 젊은 남자 못지않아서 아빠한테 감탄도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아빠의 부지런함으로 늙은 엄마의 수고로움도 같이 늘어나는 것이라 엄마는 나에게 이따금 아빠 흉을 본다. “당최, 네 아부지는 가만히 있지를 않아. 내가 어떨 땐 너무 힘들고 귀찮아” “엄마는 힘들다고 하고 좀 셔. 엄마가 중요하지.”  “어떻게 가만히 있니? 그래. 네 아부지 혼자 저렇게 일하는 데 말이다”

모양새와는 다르게 품과 자재가 많이 든다는 걸 알았다.



화분에 있던 귤나무 6그루를 비닐하우스 가운데에 한 줄로 옮겨 심었다 비닐만 씌워도 아늑한데 과일 나무가 있으니 마치 설국열차 온실 칸 같다. 준공식 기념으로 흰 면장갑 끼고 오색 테이프 커팅을 하고 싶었지만 대신 삼겹살 파티를 했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구워 먹는 삼겹살 맛은 이 세상 맛이라고 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계획대로 이사했더라면 엄마 아빠가 사는 동네가 되었을 이 낯선 마을에 드나든 지도 한 해가 지나간다. 원두막 짓느라 첫 삽을 뜨던 때가 생각났다. 처음 보는 이방인에게 마을 어르신이라면 누구나 가던 길을 멈추고 똑같은 말을 하던 그날 말이다.


“누구슈?”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 가족은 누구누구이며를 매번 똑같이 미래의 이웃들에게 설명하는 일도 나의 몫이었다. 여기에 집 짓고 이 마을로 이사 올 거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우리 소개가 끝나면 나는 특유의 친화력과 싹싹함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대화라고 할 것도 없다. 어르신들의 호구조사 하나만 여쭤봐도 언제 낯설었냐는 듯이 그저 세상 기쁜 표정으로 자녀분들 이야기를 하셨다. 나의 맞장구에 경계심도 풀어졌다. 묻지 않은 마을 이야기까지 하시는 게 시골 어르신들 특징이다. 이렇게 낯을 익혀놓으면 삭막하지 않아서 나는 그게 좋다. 물론 다음번에도 “누구슈?” 하고 지난번처럼 처음 본다는 표정의 할머니도 계셨다.

마지막으로 문을 달고 비닐하우스 준공 기념으로 삼겹살 파티를 했다.

어디나 그렇듯 이 마을도 두 종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농사일할 수 있는 노인 그리고 농사일할 수 없는 노인이다. 고령화도 아니고 초고령화 시대를 실감했다. “아이고, 늙고 힘들어서 농사 못 헌다고 시골마다 땅을 내논다는데, 시상에…… 팔순 너머에 농사를 한다고 그걸 또 사는 사람이 있네. 아부지한테 늙어 편하게 사시라구랴. 머더러 힘들게 농사를……쯧쯧. 농사 지긋지긋혀” 아빠의 흰머리만 봐도 혀가 찰 노릇인데 나이까지 알고 나면 저절로 나오는 진심된 걱정이었다. 이 마을은 공기 좋고 조용하니 살기 좋다는 모두 똑같은 말씀에 나도 공감이 되었다. 이장님과는 인사를 했지만 마을 집집마다 인사할 수는 없고 만날 수 있는 마을분이라도 친해져야지 하는 생각에 바나나를 여유 있게 가져간 것은 잘한 것 같다. 

산짐승이 우리보다 먼저 다녀간 것을 발자국으로 알 수 있었다

눈이 내리고 나서 밭에 갔을 때는 고라니가 우리보다 먼저 다녀간 것을 발자국으로 알 수 있었다. 산 쪽으로만 쳐놓은 울타리를 돌고 돌아 우리 원두막까지 찾아온 것이다. 기웃거리다 먹을 게 없어서 지었을 그 표정에는 슬픔이, 돌아가는 외 줄 발자국에는 설움이 묻어있는 것 같았다. 보리 싹은 이미 지난번에 얼추 뜯어먹었다. 아빠는 울타리를 더 쳐야겠다고 말했다. 고라니에 감정이입이 된 나는 그냥 못 들은 척 했다. 엄마가 아빠 험담하듯 나도 속삭이며 엄마에게만 말했다. 


“엄마, 얘네도 먹구 살어야지. 굶어 죽으면 불쌍하잖아. 산짐승이라도 잘 뜯어먹었으면 됐지 뭐.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욕하려나?” “저거 저렇게 싹을 뜯어 없애놔서 안 자라믄 으쩐다니. 어찌할 수 없지만서도”

공존과 개입이라는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는 얼마큼 어디까지가 아름다운 선일까? 요 며칠 강력 한파에 그 고라니가 문득 생각난다. 귤나무를 피해서 비닐하우스 안에 로터리 작업을 했다. 여기에다 다음에 시금치를 심을 것이다. 겨울 시금치가 맛있다.

보리 싹은 이미 지난번에 얼추 뜯어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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