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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부장 Jul 31. 2021

오직 빵과 떡이 필요할 뿐

“아들이라고 하나 있는 게, 네 오빠는 어째 매번 아무것도 안 사들고 온다니?”

“엄마, 기대했다 실망하지 말고 엄마가 먼저 오빠한테 뭐 사오라고 하면 되잖아, 그리고, 엄마가 그렇게 키워놓고선 뭘~”

“똑같이 키워도 너는 안 그러잖아”


오빠가 부모님 댁에 다녀간 다음날의 나와 엄마의 통화 레퍼토리였다. 


“오빠야. 엄마 아빠한테 갈 때는 좀 빈손으로 가지 말고 뭐라도 사 가지고 들어가면 좋잖아~”

“엄마 아빠가 뭐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가다가 또 중간에 마트 들리기도 번거롭고”

“오빠야. 그럼 미리 사서 차에 넣어 놓면 되고 뭐 좋아하시는지는 내가 문자로 보내줄게. 저장 좀 해놔”


오래전에는 전화로 저 대화를 돌림노래처럼 했더랬다. 삼각무역도 아니고 왜 엄마와 오빠는 하고 싶은 말과 필요한 말을 서로 직접 할 줄 모르는지 나는 신기하기도 하고 당연히 답답했다. 


“사랑하는 딸. 택배기가 왔다. 네가 갈비 보냈니?”

“엄마. 나 아닌데. 오빠가 보냈나 보네. 그리고 엄마! 택배기가 아니고 택배라니까. 택배기가 뭐야“


어느 날부턴가 오빠도 인터넷 배송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 엄마는 택배로 먹거리를 받는다. 전염병 때문이 아니더라고 엄마가 읍내 마트나 시장을 가는 일은 쉽지 않다. 걸어 나가 버스를 타고 짐을 들고 시장 돌아다니는 일은 팔순 넘은 엄마는 이제 힘에 부쳤다. 아빠가 다정하게 엄마를 옆에 태우고 같이 장도 보고 짜장면도 먹고 그러면 좋으련만. 무뚝뚝한 아빠와 사는 엄마의 이번 생에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간혹 아빠가 이발하러 시내로 나갈 때면 엄마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따라가 보았지만, 항상 아빠 이발 시간보다 길게 장을 보니 아빠의 눈치가 여간 아니었다. 차에서 기다리는 아버지는 역정을 냈고, 그래서 엄마는 맘대로 시장 한 번을 못 간다. 그 고립된 일상이 길어지면 어쩌다 쌀, 김치 말고 먹을 게 없게 되기도 했었다. 


그래서 장보기는 나의 의무이자 엄마와의 데이트가 된 지 오래되었다. 볼거리가 많아서 가끔 5일 장을 다닌다. 엄마는 오이를 살라치면 시장 입구부터 마지막 오이까지 “얼마에요?”를 다 물어본다. 결과는 우리가 다 아는 그대로였다. 시장 입구 쪽으로 되돌아가서 세 번째 오이를 샀다. 내가 보기엔 그 오이가 그 오이인데 말이다.


요즘은 오빠와 내가 연실 먹거리를 배송해드려서 엄마 아빠가 너무 좋아하신다. 이번 배송된 과자는 눅눅하지는 않은지? 고등어는 몇 도막 남았는지? 과일은 떨어질 때 안 되었는지? 다 떨어졌거나 다른 먹고 싶은 게 있어도 딸 생각해서 전화 안하는 거를 나도 안다.


그래서 나의 특기이자 취미, 바로 엑셀로 뚝딱 장부를 하나 만들었다. 그건 바로 [엄마 아빠 먹거리 택배 장부]이다. 그러고 보니 내 생활비 총지출 중 엄마 아빠의 먹거리가 20프로 정도를 차지한다. 진작 별도 장부가 있었어야 했다.


지난 두 달치 가계부를 다 뒤져서 과일, 반찬, 생선 등 아이템별로 날짜를 표로 기록해놓고 보니 한눈에 들어왔고 계절 음식도 잊지 않고 챙길 수 있게 되어서 효율적이다. 곳간 열쇠 쥐고 있는 기재부 장관이 대단한 나랏일 하나 한 것 같아 너무 뿌듯했다. 

빵 회사에서는 우리 아빠에게 공로상을 줘야 할 것이다

그렇게 나름 꼼꼼하고 정교하게 아이템을 챙기는 데도 내가 깜짝깜짝 놀랄 정도로 빨리 떨어지는 게 있다. 바로 아빠 빵이다. 빵 회사에서는 우리 아빠에게 공로상을 줘야 할 것이다. 아빠는 손바닥만 한 단팥빵 두세 개를 매일 자기 전에 드신다. 카스테라, 초코빵, 샌드위치, 크림빵, 꽈배기 다 사드려봤어도 단팥빵만 못하다고 하신다. 아마 아빠 위는 팥으로 물들어 시커멀 것이라고 엄마랑 농담도 했다.


빵이 떨어지면 아빠는 자식 돈 쓰게 하지 말라며 엄마에게 전화 금지령을 내린다. 그것은 또한 자기 전 엄마의 부엌일이 다시 시작되는 것이기도 하다. 퇴근했는데 회사 다시 가봐야 하는 상황처럼 말이다. 저녁상 다 치워놓고 드라마도 끝났는데 아빠의 야식을 위해 다시 부엌으로 가 밀가루 반죽하고 뭘 만들어내야 하는 일은 정말이지 얼마나 귀찮을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봉지빵을 내가 사 보내드리기 전에는 늘 그리하셨다.


아빠는 평생을 반찬투정 없으시고 김치 말고는 찾는 반찬이 없다. 한편으로는 엄마의 음식 솜씨가 없는 게 그 때문이라고들 말한다. 아빠는 오직 야식으로 과일도 밥도 아닌 빵과 떡이 필요할 뿐이다. 봉지만 뜯으면 되니까 빵이 엄마에게도 천국이다. 그래서 내가 더 이 장부에 공을 들이는 이유이다. 


어느 날엔가 단팥빵 한 가지면 물리지 않을까 하여 팥으로 된 간식거리를 검색해보니 여러 가지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나름 [팥 기획]을 했다, 여름엔 얼려먹을 수 있는 바람떡과 찹쌀떡, 겨울엔 뜨겁고 푸짐한 호빵, 봄가을에는 단팥빵과 팥떡으로 정해보았다. 엄마네 김치냉장고의 반은 떡과 빵이다. 

요즘 같이 더운 날, 냉동 찹쌀떡

요즘 같이 더운 날, 냉동 찹쌀떡을 살짝 녹여서 먹으면 팥은 더 달고 떡도 더 쫄깃쫄깃하다. 아이스크림처럼 시원해서 여름 간식으로 안성맞춤이다. 날이 더워서 입맛이 없으신지 아빠는 아침까지 밥 대신 떡으로 드신다니 나는 오늘도 냉동실로 들어갈 아빠의 사랑을 주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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