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로봇청소기는 최첨단을 달린다. 카메라와 인공지능이 결합되었고 음성인식에다가 어플의 원격제어 기능을 자랑한다. 직접 청소하는 것 말고는 썩 맘에 드는 대안이 없다는 내 친구가 본다면 아마 구한말 지구본을 처음 본 개화파의 눈처럼 경천동지 할 것이다.
나의 시작은 초기의 중소기업 중고 제품이었다. 신제품의 그 경이로운 기능들은 모두 장착하지 못했으며 탱크 소리가 이러지 않을까라는, 전쟁 안 겪은 나도 예상가능 할 정도의 데시벨을 자랑하는 녀석이 왔다. 그 고막을 긁는 굉음에 우리 고양이들은 편히 식빵 자세 한 번을 못하였고 놀라서 피해 다니기 바빴다. 나도 설거지 말고는 뭘 편히 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좋았다. ‘내가 내 손으로 청소하지 않는 게 어디야’
어느 날, 지인 집에서 책상에 앉아있는데 소리도 없이 내 발을 살짝 건드리는 것이 있었다. 내려다보니 우리 것보다 몇 세대는 진보한 고품격 녀석이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어서 와, 저소음은 처음이지?”
그날의 터치는 우리 것은 아마 탱크일지도 모른다는 심증이 옳았다는 결정적 증거였다. 제품에 홀리긴 처음이었다. 비싼 모델료 줘가며 제작한 너무나도 길어서 지겨운 20초짜리 TV광고가 필요 없었다. 미안하지만 우리 집 탱크랑은 이별할 때가 왔다는 걸 직감했다.
클래스가 다르니 아무래도 비쌀 거라 예상은 했다. 나쁘게 말하면 궁상, 좋게 말하면 알뜰. 궁상과 알뜰 그 사이 어디쯤이 항상 나의 딜레마였음에도 관성의 법칙이 거의 승리했다. 중고였지만 너무 조용해서 라디오를 듣거나 차를 마시는 것도 가능해졌다.
고양이에게도 조용했다. 고양이의 그루밍에 몰입을 가져다주는 ASMR, 우리 고양이와 로봇청소기의 악연은 그 화이트 노이즈, 그때부터였다. 고양이는 로봇청소기가 다가오는 줄도 모르다가 거의 자기 몸에 닿아서야 놀라 일어서곤 했다. 장모종이라 털끝이 감각이 있을 리가 있나. 여하튼 이 무던한 집사는 고양이가 그렇게 알아서 계속 잘 피할 줄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고양이의 꼬챙이 같은 비명소리와 우당탕탕 소리가 났다. 뒤돌아보니 처참한 광경이 눈앞에 벌어졌다. 로봇청소기에 고양이 꼬리가 빨려 들어가는 중이었고 고양이는 전력질주로 도망가고 있었다. 비극은 로봇청소기의 모터가 더 세다는 것이다. 고양이 꼬리를 가운데 두고 서로 줄다리기를 하는 초현실적인 장면이었다.
‘뭘 먼저 잡아야 저 사태가 잘 해결될까’ 작전을 짤 틈도 없이 그대로 용수철처럼 튀어나가 고양이를 잡아당겼다. 소용없었다. 모터만 센 것이 아니었다. 로봇청소기 내부의 브러시와 고양이 꼬리털이 이미 야무지게 감겨있었다. 머리빗에 머리카락이 엉켜본 사람은 안다. 잡아당겨서 될 일이 아니었다. 로봇청소기는 오래간만에 대어를 낚았는지 엄청난 기세로 고양이를 말아 삼킬 것 같았다. 하기야 저 풍성한 꼬리를 얼마나 호시탐탐 노려왔던가.
고양이를 바닥에 내려놓고 이번엔 반대로 청소기를 들었다. 바퀴가 바닥에서 들리면 전원이 꺼진다는 것을 매뉴얼에서 보았던 생각이 번개처럼 났기 때문이다. 젠장, 청소기를 들자마자 전원이 꺼지는 건 아니었다. 청소기가 바닥에서 들리고도 공중에서 5초정도는 그냥 모터가 돌아가는 게 아닌가? 그다음엔 웬 멜로디? 띠리리리~띠리리리리~ 그때까지도 작동이 계속되고 있었다.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말할 줄 아는 이 로봇청소기는 비상사태인데도 고지식하게 매뉴얼대로였다. 게다가 이 재난에 풍악까지 울리다니. 정말 제품에 아니 기업에 감정이 생길 판이었다. 묵직하고 강한 바디를 자랑하는 로봇청소기는 두 손으로 들어야 하기 때문에 고양이 꼬리를 잡아 뺄 손은 나에게 없었다. 고양이는 꼬리가 연실 감기는 채로 대롱대롱 매달리는 형국이었다. 자지러지는 고양이 울음소리가 아침부터 아파트에 울려 퍼졌다.
“바퀴가 바닥에 닿지 않았습니다. 청소기를 평평한 바닥에 옮겨 주세요”
명품 배우의 그 명품 목소리가 나오면서 그제야 청소기는 멈추었다. 고양이는 허공에서 발버둥 치다 머리부터 떨어졌고 순간의 힘을 모아 줄행랑을 쳐버렸다. 느긋하고 온순한 성격과 귀족의 풍모를 자랑하는 페르시안 고양이가 저렇게 냅따 뛰는 것은 처음 봤다. 다행히 다친 데는 없지만 트라우마는 컸다. 이틀을 숨어서 나오지 못했다. 청소기가 움직이기라도 하면 공포에 떠는 모습이 얼마나 안쓰럽던지 나는 며칠을 청소를 하지 않았다.
혹시 나와 비슷한 사고를 겪은 사람이 있나 싶어 검색해보았으나 죄다가 자기네 고양이가 로봇청소기 위에 ‘올라타나’ ‘못 올라타나’라는 이야기뿐이었다. 나 같은 사람이, 아니 우리 고양이 같은 고양이가 더 있어선 안되니 내가 알려야겠다는 소명 같은 게 생겼다. ‘업체에 제보나 컴플레인을 넣어볼까’ 그것도 귀찮아졌다. 그냥 널리 널리 내 글이 회자되어 모든 집사들과 청소기 회사에까지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 정도랄까.
시간이 지나 근자에 제품 검색을 해보다 깜짝 놀랐다. 우리 것보다 신제품은 ‘털 엉킴 방지 브러시’를 장착한 것이 아닌가. “그래, 저거였다면 우리 고양이 꼬리털이 안 감겼을 텐데 진작 좀 개선하지”하고 아쉬워해봤자 이미 지난 일. 내가 얼리어답터 집사가 아니라는 것이 통탄스러울 뿐이었다. 냥이야. 엄마가 Sorry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