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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부장 Oct 24. 2021

너는 고생 좀 해야 돼

베란다 창을 열어보니 밖에서는 겨울이 가을을 덮치고 있는 중이다. 겨울한테 잡아먹히기 전에 자신을 빨갛게 피 흘리며 나무는 자살을 서두르겠지. 그 단풍을 등산객은 흥분 속에 기다릴 것이다.  


나도 한참 산행을 즐길 때가 있었다. 퇴근해서 야간 산행을 하고 산에서 바로 출근하기도 했었다. 완전하게 깜깜한 산에서 오직 냄새로만 익은 걸 확인하고 집어먹는 삼겹살 맛과 그 장면은 인생에 몇 안 되는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넷플릭스가 없던 시절이고 놀거리가 딱히 없다 보니 등산동호회는 불황이 없었다. 등산을 빙자한 사랑의 작대기가 비일비재한 것은 뭐 우리가 다 안다. 덩달아 등산복이 화려해진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도 본다.


“돈 안 드는 취미로 친목에 등산만 한 게 없다.”

“산 좋아하는 사람 치고 나쁜 사람 없다.”


산에 가면 아저씨들한테 자주 듣는 말이다. 이 명제는 귀납적으로도 연역적으로도 진정 옳은가? 그 아저씨들한테 반박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던 기억이 난다. 친목은커녕 사랑의 작대기가 엉켜서 싸우고 나가는 회원 꽤 많이 봤으니까. 산 아래서 막걸리에 파전에 돈 엄청 든다. 누가 보면 안나푸르나 올라갈 듯 한 고가 등산복 자랑도 봐줘야 한다. 산타는 사람 중에도 성격 이상한 사람, 당연히 있다. 사체를 묻기 위해 산을 구석구석 사랑할 수밖에 없는 연쇄살인범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오서산 갈대밭

동호회 활동을 어느 정도 하다 보면, 이제 그만 혼자 산행이 하고 싶어질 때가 온다. 혼자 등산인은 어느 산이나 있다. 특히 홀로 산을 타는 남자의 터질 듯 한 구릿 빚 근육은 섹시하다. 운동하는 모든 남자는 일단 섹시하다. 물 얻어 마실 요량으로 말 걸기도 참 좋다. 답례로 오이를 건네면 더불어 자연스럽다. 보통 거기서 끝나지만 혹여, 코스와 속도가 비슷해서 한참을 같이 걸으며 이야기라도 나눌 수 있으면, 그날은 참……좋은 날이다.


반투명으로 숲을 감싸는 촉촉한 안개가 등산로를 낭만적이게 만든 어느 날이었다. 경사 오르막이 끝나고 잠깐의 평지가 나왔다. 나무는 말을 하지 않으니 나의 힘든 숨소리만 들렸다. 그때 내 뒤로 한 남자가 머리부터 보이며 올라오는 것이었다. 등산해본 사람은 안다. 힘내라는 뜻으로 “안녕하세요.” ”수고하십니다.”라고 오며 가며 산행인들끼리 인사를 한다. 그 핑계로 말을 걸어볼까 하고 시동을 막 걸던 참이었다.


“아빠. 같이 가요”


꼬마가 올라온다.

‘움. 애가 있을 수도 있지.’


“아들~. 엄마가 뛰지 말랬지.”


잠시 후 여자도 올라왔다. 

‘그래, 움. 그런 거지……’ 


그 가족은 여기에는 아무도 없다는 듯이 쑥 지나가버렸다. 나는 마치 나무처럼 서있었다. 나무와 나를 어루만져준 것은 안개였다.


<여행의 이유>에서 김영하 작가는 ‘집 떠나면 고생’을 알면서도 평생토록 집을 떠나는 것은, 스스로 고통을 부여한 뒤 그 고통이 날 파괴하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하고자 한다고 했다. 내가 결국 버텨냈다는 체험에서 오는 안도감이 너무나도 달콤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달콤함을 얻으려 편안한 집을 떠나 그 고생을 다시 겪으라고 자신 안의 프로그램이 부추긴다고도 했다.  

이제는 속상하다고 산에 가지 않는다.

나는 조금 다르다. 나는 나한테 화나고 속상할 때면 자학하는 이상한 버릇이 있는데 혼자 산행도 일종의 그런 것이었다. 신체에 고통을 주는 가장 원초적 벌로 내가 선택한 것은 산이었다. 성취감이나 건강을 위한 목적이라기보다 '너는 고생 좀 해야 돼’하는, 내 실수나 잘못에 대해 나 스스로 못 견뎌서 나에게 주는 벌이었다. 그래서 말도 없이 즐거움도 없이 체력도 저질이고 산도 못 타면서 힘들게 혼자 극기 훈련하듯이 오르곤 했다.


괜한 고생이 아니라 실수한 대가를 치르는 것뿐이고, 그리고 치렀으니 이제 됐다고, 김영하  작가와는 또 다른 안도감. 왜 나는 나조차 나를 사랑하지 못했을까. 타인에게 관대하고 자신에게 엄격한 나는 진작에 끝냈어야 할 질풍노도를 좀 늦게까지 안고 살았다.


이제는 속상하다고 산에 가지 않는다. 마음도 그런데 몸마저 힘들어 죽겠는 것이 언제부터인가 쓸데없는 짓같이 생각되었다. 무엇보다 지금은 아주 많이 단조로운 삶을 추구하기 때문에 애쓸 일을 많이 만들지 않는다. 애쓰다 실수할 일도, 나를 벌할 일도, 극기(克己)할 일도 그다지 없어졌다.


혹여 애쓰다 실수해도 나에게 화내지 않는 내가 되자, 나를 아끼고 나한테 잘하자고 다짐한다. 그리고 이제는…… 산 근처만 가도 힘들다. 아니 쳐다만 바도 심히 아프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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