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피디의 편지_4
오랜만에 쓰는 답장이네. 어느새 양력으로도, 음력으로도 완벽히 2021년이 되고 말았지 뭐야. 우리가 '편'에 관한 이야기를 했는데 확실한 건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야. 너무 빨라.
기사 제목을 달 때 '편'에 관한 고민은 더 하겠다 싶네. 이건 단순히 제목을 어떻게 짓냐의 문제가 아니라 객관성과 공정성, 더 나아가서는 사실과 진실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니까. 편집기자가 꼭 취재를 하진 않더라도, 그 표현하는 형식은 결국 기사와 제목이잖아. 기자가 근본적으로 안고 있는 고민이 계속되는 셈이지.
예로 든 '여당의 멈추지 않는 폭주에 야당 못 버티고 결국 장외투쟁'으로 제목의 경우에도 '멈추지 않는', '폭주', '못', '버티고', '결국', '장외', '투쟁' 이 모든 말에 가치 판단이 들어가 있듯이 말야. 펜을 잡은 사람에겐 그 어느 것 하나 쉬운 마침표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에서도 비슷한 고민은 있어. 팟캐스트가 인기를 끌고 나서, 그리고 그 이후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의 인기 구도를 보면서 방향성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많이들 고민했었어.
팟캐스트처럼 나아가는 게 맞는 길인지, 철저한 균형감을 갖추는 게 맞는 길인지를 말야. 기사 제목을 두고 하는 고민이랑 비슷하지? 뭔가 언론학개론에서 배우듯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면 사회적 공기로서 언론의 균형이 맞는 건데, 요즘 세상에선 이게 네 맛도 내 맛도 아니게 되어버리잖아? 아닌가?
그러면 시사 프로그램이 아닌 라디오 디제이는 편하게 자신의 일상을 편파적으로 드러낼 수 있느냐, 하면 또 그것도 아니더라구. 나조차 내 옆의 사람을 어렵게 믿고 시간이 꽤 지나서야 내 이야기를 털어놓는데 불특정 다수와 대화해야 하는 디제이도 고충이 클 것 같아. 헤르만 헤세가 '데미안'에서 언급한 알이라는 세계를 떠올려보는 거지. 알을 깨기가 어려운데 말야, 경계를 깨는 순간! 경계를 넘는 순간! 디제이는 청취자를 향해 날아가게 돼.
이렇게 몇 주 만에 답장을 쓰는 사이에 오디오 업계 쪽에선 <클럽 하우스>라는 어플리케이션으로 분주하네. 사람들은 어디서고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고 또 그걸 들으면서 또 다른 '내 이야기'를 꺼내고 싶어하는구나 싶어. 도대체 이 시대에 발설과 공감과 소통에의 욕구는 어느 정도인거야? 그러니까 얼마나 우린 외로운 거야?
레거시 미디어에 종사하는 입장으로서 이기적으로 그리고 게으르게 말해보자면 또 이렇게 라디오의 기능을 내어주는구나 싶어. "자, 여기로 오시면 외롭지 않게 말벗이 되어드릴게요. 심지어 텍스트로 우리는 대화할 수 있어요"라면서 라디오는 등대처럼 제법 호젓하게 서 있었단 말이지.
그런데 이젠 "자, 이제 저기로 가시면 외롭지 않게 말동무가 서로 될 수 있어요. 심지어 음성으로 바로요"라고 하는 클럽 하우스가 곳곳에서 나타난 손전등처럼 등장한 거야. 아직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구경하는 중이라 잘은 모르겠지만 신문물의 등장이라서 일단 기록해둬. 초대장 필요하면 얘기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