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피디의 편지_3
기자들 옆에는 항상 노트북, 마이크, 녹음기 이런 게 있어서 기계와 친할 것 같았는데 의외네? 당연히 편집툴 같은 게 있어서 컴퓨터로 신문 지면 편집을 진행할 거라고 생각했거든. 의외라고 놀라는 나 자신도 우리가 썼던 글을 종이로 인쇄해서 읽고나서야 이렇게 답장을 쓰고 있다는 건 안 비밀.
라디오 피디와 편집 기자. 사실 그렇지도 않지만 왠지 첨단을 달릴 것 같은 언론계에서 동떨어져 슬로우 시티에 사는 듯한 두 직군이지. 좀 더 냉소적으로 군다면 아직 없어지진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계속 '없어지진 않았지만…'을 되뇔 것 같은 자리. 정수가 말한 "여긴 원래 이런 곳"이라는 핑계는 라디오 쪽에도 댈 수 있을 것 같아. 하지만 이번 편지에선 냉소를 뒤로 하고 분위기를 좀 바꿔볼까 해.
MBC 라디오에선 10년차 DJ에게 브론즈 마우스를, 20년차 DJ에겐 골든 마우스를 시상해. 수상하는 DJ들의 노고를 높이 사면서 그들의 입을 금속으로 본 떠 스튜디오에 장식까지 하지. 그건 그만큼 매일 매일 함께해야 하는 라디오의 의미가 간단치 않기 때문일 거야.
매일을 지켜야 하는 일이 고되기도 한 만큼 성실함의 끝판왕인 DJ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이기도 하고. 라디오의 호흡이 그만큼 느리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기도 해. 옛날 개그인데, '개그콘서트-봉숭아 학당'에 연변 소년이라는 캐릭터가 있었거든? 그 캐릭터식대로 표현하면 "고저~ 우리 라디오에선 1년차 DJ가 방귀는커녕 콧방귀도 못 뀝네다" 하는 식이지.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 낙수가 바위를 뚫는다는 말처럼 라디오가 쌓는 시간이 되게 무섭다? 하루 중 1, 2시간 바로 그 자리에서 청취자들의 일상의 일부로 스며드니깐 그 힘을 무시 못하는 것 같아. 그런 과정에서 청취자들은 DJ의 팬이 아니라 점점 편이 되어가.
MBC 라디오에서 '푸른 밤', '음악도시' DJ를 했던 가수 성시경씨가 최근에(2020.10.7) '김이나의 별이 빛나는 밤에'에 나와서 이런 말을 했어.
"두 시간 동안 저를 완벽하게 알아줄 수 있는 내 사람들을 사귀었던 시간인 것 같"다고 말야.
청취자들과 같은 속도로 호흡하면서 이런 이야기했다가, 저런 이야기했다가, 매일 두 시간씩 보여준 나라는 사람의 맥락을 공유하게 되는 거야. DJ 역시 청취자들 일상의 조각을 매일 알게 되는 거고. 사람으로서 교감과 이해가 이뤄지는 시간이라고 하면 거창할까?
취업 준비생 시절에 KBS 라디오 '유희열의 라디오천국'을 곧잘 들었었어. 유독 고요하던 밤의 하숙방을 덕분에 사람 목소리로 채웠었지. 그러던 어느 날 DJ가 마지막 방송을 했고 나는 그날 엄청 울었다? 어두운 터널의 시간을 묵묵히 함께해주던 목소리가 사라진다니까 이제 이 밤을 누구에게 의지하나 싶더라구. 나에게도 그 목소리는 편이었는데 말이지. 오바 같지? 라디오라서 그래. 여기선 그러니까, 괜찮아.